法帖訓讀-孫過庭書譜(2)
考其專擅하면 雖未果於前規로되 摭以兼通이라 故로 無慙於卽事로다 評者云하되 彼之四賢은 古今特絶而今不逮古하니 古質而今姸이라하니 夫質以代興하고 姸因俗易(역)이로다 원본 4.2~4.6
그 專擅함을 살펴보건대 (왕희지가) 비록 前規(前人의 法度, 즉 張芝와 鍾繇)보다 能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해, 행, 초를) 兼하여 通하였다. 그러므로 글씨를 쓰는데 있어서 부끄러움이 없다. 評論家들이 말하기를 “저 四賢(張芝․鍾繇․王羲之․王獻之)은 古今에 특히 뛰어나며, 今人은 古人에 미치지는 못하나 古人은 質朴하고 今人은 姸麗하다.”라고 하니, 대져 質朴함은 時代를 따라서 興하는 것이고 姸麗는 風俗에 因緣하여 바뀌는 것이다.
* 전천(專擅): 오로지 마음대로 함. 專攻이란 뜻으로, 草書면 草書 楷書면 楷書의 한 가지 서체만을 오로지 익히는 것.
* 과(果): 勝. 能의 뜻이 있음.
* 전규(前規): 前人의 規範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張芝와 鍾繇를 말함.
* 즉사(卽事) : 일을 맡긴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글씨를 쓴다는 말이다.
* 고질이금연(古質而今姸): 質은 質朴이고 姸은 姸麗이다. 여기에는 내면적인 質實을 崇尙하고 外面을 粉飾하는 艶麗를 輕蔑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있다.
雖書契之作이 適以記言이나 而醇醨一遷하고 質文三變이로다 馳騖沿革은 物理常然하니 貴能古不乖時하고 今不同弊로다 所謂文質彬彬然後에 君子이니 何必易雕宮於穴處하고 反玉輅於椎輪者乎아 원본 4.6~5.5
비록 太古에 文字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주로 말을 기록하는 데 적합하였으나, 시대의 추이에 따라 그 서체와 서풍도 質樸함과 文飾이 여러 차례 변천해 왔다. 이렇게 질주하듯이 변화하는 것은 物理가 항상 그런 것이니, 고법을 따르면서도 時流에 어그러지지 않고, 시류를 따르면서도 폐단에 동조하지 않는 것이 귀한 일이다. 이른바 文(학식)과 質(인격)이 適切하게 어우러진 然後에 君子가 되니, 어찌 반드시 雕宮을 바꾸어 穴處로 가고 玉輅를 바꾸어 椎輪에 의지하겠는가!
* 서계(書契): (1)중국 태고의 글자로, 나무나 대에 글자를 새겨서 약속의 표적으로 한 것. (2)증거로서 사용하는 문서. 기록의 장부. 契는 새긴다는 뜻이 있다. 甲骨文을 契文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 순리일천 질문삼변(醇醨一遷 質文三變): 醇은 진하고 맛이 좋은 술이고, 醨는 싱겁고 맛이 없는 술. 質文의 文은 華美이고, 三變의 三은 실수가 아닌 다수를 말함. 醇醨와 質文은 같은 개념이므로 이 句는 人文의 質과 文, 人性의 淸과 濁, 人情의 厚薄, 나아가서는 重厚한 書와 華美한 書가 一遷三變하였다는 뜻으로 곧 書體도 書風도 여러 번 변천해 왔다는 뜻.
* 문질(文質): 內面에 숨어 있는 本質과 外面에 나타나는 文彩.
* 빈빈(彬彬): 글의 수식과 내용이 서로 알맞게 갖추어져 있는 모양. 彬: 겸비하다. 아름답고 성하다.
* 조궁(雕宮): 彩色한 그림과 꽃무늬로 장식한 궁전.
* 옥로(玉輅): 古代의 제왕이 타던 수레인데, 玉으로 장식하였다.
* 추륜(椎輪): 옛날의 조잡한 수레.
又云하되 子敬之不及逸少는 猶逸少之不及鍾張이라하니 意者는 以爲評得其綱紀나 而未詳其始卒也라 且元常은 專工於隸書하고 百英은 尤精於草體로다 彼之二美나 而逸少兼之하니 擬草則餘眞하고 比眞則長草로다 雖專工小劣이나 而博涉多優하니 惣其終始컨대 匪無乖互로다 원본 5.6~7.1
또 이르기를 “子敬(王獻之)이 逸少(王羲之)에게 미치지 못함은 일소가 鍾繇와 張芝에 미치지 못함과 같다.”라고 하였는데, 그 뜻은 評論이 그 綱紀(綱領, 대체의 줄거리)는 얻었으나 그 처음과 끝을 仔詳하게 파악했다고 할 수는 없다. 또 元常(鍾繇)은 오로지 隸書(현재의 해서)에 能하였고, 百英(張芝)은 草書에 더욱 精密하였다. 저들은 두 사람이 각각 한 서체에 美를 이루었으나, 逸少는 그것들을 兼하였으니, 초서를 헤아려본즉 眞書(楷書)가 남음이 있고, 眞書를 比較한즉 草書가 우수하다. 비록 專攻에는 다소 못하지만, 널리 涉獵하고 優秀함이 많으니, 그 始終을 統括하여서 보면 서로 어그러짐이 없지 않다.
* 총(惣) : 摠(모두 총)과 同字.
謝安은 素善尺櫝(牘)한데 而輕子敬之書라 子敬이 嘗作佳書與之하고 謂必存錄이라한데 安輒題後答之하니 甚以爲恨이라 安이 嘗問敬하되 卿書何如右軍가 答云 故當勝이라 安云 物論은 殊不爾라 子敬 又答하되 時人이 那得知리요 원본 7.1~7.6
謝安은 평소에 尺牘을 좋아하였는데, 子敬의 글씨를 가벼이 여겼다. 자경이 일찍이 아름다운 글씨를 써서 사안에게 주고 반드시 보존할 것이라고 생각 하였으나, 사안이 문득 뒷면에 글을 써서 答하니 甚히 恨스럽게 생각하였다. 謝安이 일찍이 子敬에게 “그대의 글씨와 右軍의 글씨는 어떠합니까?”라고 물으니 子敬은 “제가 優秀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謝安이 “衆論이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니 子敬이 또 대답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겠습니까?”라고 하였다.
* 사안(謝安): 晉나라 사람이다. 字는 安石. 어려서부터 침착하고 총명하였다. 會稽의 東山에서 隱居 하다가 桓溫의 부름을 받고 나가 吏部相書, 中書監이 되었다.
* 척독(尺牘): 길이가 한 자 정도 되는 木簡. 고대에는 서사하는데 사용되었으나, 후에 信札이나 書信을 지칭하게 되었음.
* 고(故): 짐짓 고(固爲之).
* 물론(物論): 세간의 평.
* 수(殊): 다르다.
* 이(爾): 그러하다.
敬이 雖權以此辭로 折安所鑑이라도 自稱勝父는 不亦過乎인져 且立身揚名은 事資尊顯이라 勝母之里에 曾參不入이어늘 以子敬之豪翰으로 紹右軍之筆札하니 雖復(부)粗傳楷則이라도 實恐未克箕裘어늘 況乃假託神仙하여 耻崇家範하니 以斯成學은 孰愈面墻이리요 원본 8.1~9.2
子敬이 비록 이 말로써 임기응변하여 사안의 鑑識한 바를 꺾었으나 자기가 스스로 아버지보다 優秀하다고 말한 것은 또한 지나치지 아니한가! 또 立身揚名하는 일은 (부모를) 섬기고 도와서 높이고 드러내는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勝母라는 이름이 붙은 마을에 曾參은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거늘, 子敬의 豪翰은 右軍의 筆札을 이어받은 것이니 비록 서도의 楷則을 대략 전수 받았다 할지라도, 실제로는 箕裘를 제대로 전수받지 못했음을 두려워해야 하거늘, 하물며 神仙에 假託하여 전해오는 家範 높이기를 부끄러워하였으니, 이런 자세로 學問을 하였다면 학문을 하지 않아 견식이 천박한 사람보다 무엇이 낫겠는가?
* 권(權) : 임기응변하다. 모사할 권(謀也). 권세 권.
* 사자존현(事資尊顯): (부모를) 섬기고 도와서 높이고 드러내는 것.
* 승모지리 증삼불입(勝母之里 曾參不入) : 淮南子 說山訓에 “曾子立孝, 不過勝母之閭.”이라 하였다.
曾參(=曾子): 孔子의 弟子로 孝誠이 지극하였다.
* 기구(箕裘): 《禮記》에 “良工之子, 必學爲箕; 良冶之子, 必學爲裘.”라 하였으니 能히 가정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業을 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 면장(面墻): 학습을 하지 않아서 見識이 淺薄한 사람을 비유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