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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의 <달팽이 안단테>(김병순 옮김/돌베개)를 읽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해 겨울, 아침에 몸을 일으키려다 비명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허리와 한 쪽 다리에 극심한 통증이 왔기 때문입니다. 비명소리에 놀라 달려온 부모님은 대체 이 일을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굴렸습니다. 바로 어제까지 수선스레 뛰어다니던 딸이 주저앉아서 운신을 하지 못한데 놀란 데다 집안에 그렇게 아팠던 사람이 없었던 터라 이럴 때는 어떤 병원을 가야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아버지의 등에 업혀 병원으로 갔고 류머티즘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늙수그레한 의사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쯧쯧, 어쩌다 이런 병에…. 앞으로 평생 조심해서 살아야 해요, 학생. 그런데 이 병은 마님병이야, 마님병. 집안에 일할 사람 여럿 거느리고 호령하며 살아야 할 병이라는 게지.”
의사의 측은한 표정에 아직 살아보지도 못한 내 인생이 파투가 났음을 직감하고 가슴 철렁했고, 하지만 내가 부잣집 귀부인으로 살 운명이 되었다는 사실에 뭔가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것만 같아 야릇하게 서글퍼졌습니다.
그 후 함박눈을 맞으며 뛰노는 동생들을 이부자리 속에서 지켜보던 겨울 한 철을 시작으로, 고등학생이 되어서 체육시간 마다 그늘에 앉아 운동장을 뛰노는 친구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달라졌습니다. 세상이라는 무대의 정중앙에서 밀려나 비스듬한 각도로 인생을 바라보게 된 것이지요.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라는 여성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만해도 참 행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병에 걸려서 집으로 돌아오고 이후 그녀는 20년을 병석에 누워 지내게 되었습니다. 간병인의 절대적인 도움을 받으며 무료하고 고통스런 나날을 지내던 엘리자베스에게 창 너머로 펼쳐지는 세상은 손을 내밀어도 닿지 않고, 소리 질러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다른 차원이었을 뿐입니다.
“세상은 나를 버렸어.”
“나는 이제 쓸모가 없어졌어.”
병상을 차지한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심각한 자기진단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친구가 숲에서 가져온 달팽이 한 마리가 그녀의 삶에 우연히 놓이게 되면서 그녀는 눈을 뜹니다. 게다가 모두가 잠든 밤에 야생 달팽이 한 마리가 시든 장미 꽃잎 한 장을 갉아 먹는 소리를 한 시간이나 들었다는 건 대단한 ‘사건’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제비꽃 화분 받침에다 시든 꽃 몇 송이를 얹어놓았다. 달팽이가 잠에서 깼다. 달팽이는 화분 벽면을 따라 아래로 내려와서는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시든 꽃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꽃 한 송이를 먹기 시작했다. 먹는 건지 안 먹는 건지 모르는 속도로 꽃잎 하나가 서서히 사라져갔다. 귀를 바싹 기울였다. 달팽이가 먹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가 셀러리를 매우 잘게 끊임없이 씹어 먹을 대 나는 아주 작은 소리였다. 나는 달팽이가 보라색 꽃잎 하나를 저녁밥으로 꼼꼼히 다 먹어치우는 한 시간 동안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았다.(26~27쪽)
그 녀석도 뭔가를 먹어야 사는 생명체이니 아마 틀림없이 뭔가 나름 할 일이 있고, 분명 개성이 있는 존재이겠지요. 야생달팽이가 장미꽃잎을 갉아먹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녀에게 세상의 중심은 ‘병들고 소외된 나(엘리자베스)’에서 낯선 ‘달팽이 한 마리’로 바뀝니다. 그리고 우중충하게 드리워 있던 세상의 그늘이 차츰 걷히고 푸른 생명을 뿜어내는 거대한 녹색자연이 그녀의 병상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나의 달팽이’에게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낀 엘리자베스는 ‘달팽이’가 궁금해졌고, 그 궁금증은 ‘달팽이’라는 낯선 존재가 생명을 시작하고 영위하는 역사를 알아보게 만듭니다.
암수한몸에 오감(五感)이 아닌, 후각과 미각과 촉각만을 지니고, ‘배로 기어다니는 발’이라는 의미의 고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개스트러포드(gastropod, 腹足類, 한 개의 근육 발을 가진 연체동물)’에 속하며, 2600개가 넘는 이빨(齒舌)을 가졌고, 환경에 따라 체온이 달라지는 냉혈동물이며, 더듬이에 달려 있는 ‘눈’은 어둠과 빛으로 대강의 방향을 찾아내는 역할만을 하며, 달팽이들은 껍데기의 나선 무늬가 서로 비슷한 종들 가운데서 짝을 찾고, 주변환경이 여의치 않으면 몸을 말아서 무한정의 잠에 빠져 들어가 약한 자신을 보호하며, 이런 달팽이는 지구를 책임지고 있다고 허풍을 치는 호모사피엔스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5억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 온 복족류라는 사실을 알아갑니다.
그런 걸 보면, 인간이란 녀석, 참 볼품없지요?
그리고 인간의 몸뚱이, 세포 하나하나는 저 혼자만의 철옹성이 아니라, 바로 이런 길고도 먼 진화의 선율에 섞여서 울려 퍼지는 하나의 음절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내게 닥친 불행에도 조금은 의연해져서 그 질식할 것만 같던 짓눌림에서 숨쉬기가 가벼워집니다. 20년을 병상에 누워 지내던 엘리자베스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차가운 첫 봄비가 내리고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그녀는 달팽이를 풀어주러 숲으로 갑니다. 그리고 담당의사에게 이런 구절이 담긴 편지를 씁니다.
오늘 또 비가 내렸습니다. 병에 안 걸렸다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싶을까 생각하면서 하루 종일 침대 맡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달팽이를 풀어주기에 아주 좋은 날입니다.(177쪽)
병에서 회복된 엘리자베스는 1년 동안 달팽이를 지켜보며 써내려간 메모와 도서관에서 빌려본 자료들을 모아 책으로 냈고, 그 책은 <월든>에 버금간다는 평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런 영광이야 쏟아지려면 쏟아지라고 하지요. 엘리자베스는 “비록 물리적인 세계에서 인간보다 훨씬 더 느리게 이동하지만 진화라는 차원에서 보면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른”(171쪽) 달팽이를 지켜보면서 그의 “타고난 느린 걸음걸이와 고독한 삶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의 시간 속에서 헤매던 나를 인간세계를 넘어선 더 큰 세계로 이끌어 준 진정한 스승”(181쪽)이라고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일기에 씁니다.
나만의 속도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 달팽이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돼. 녀석을 언제고 마음속에 담아둘 테야.(181쪽)
자, 그렇다면 류머티즘이라는 진단을 받은 나는 그 후에 어찌되었냐고요? 보시다시피 아주 펄펄 나는 새처럼 세상을 누비고 다닙니다. 어쩌면 오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주자주 아파서 드러눕는 걸 보면 내 몸이 그리 건강체가 아닌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무럭무럭 자랄 일만 기다리고 있던 그 시절에 세상의 무대 중앙에서 밀려나 비스듬한 각도로 인간과 사물을 지켜봐야 했던 경험은 내게 아주 소중합니다. 늙은 의사의 ‘마님병 류머티즘’이라는 진단이 나의 달팽이였습니다.
(이미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