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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마봉춘 가는 길(펌)
* 원작은 황석영 님의 '삼포 가는 길' 입니다!
재석은 어디로 갈 것인가 궁리해 보면서 잠깐 서 있었다. 그가 넉달 전에 이곳 캐백수를 찾았을 때에는 한참 시청률이 절정에 올라있었다. 그러나 곧 가을 개편이 오게 되면 시청률이 어찌될지 모르고, 그러다보면 까딱하여 실직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는 진작부터 예상했던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로 캐백수의 시청률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캐백수 정문을 지나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시계를 보고 있는 재석 쪽을 보면서 왔다. 그는 안경을 쓰지 않았고, 제법 나이가 있어 보였지만 그럼에도 얼굴은 매우 준수하였다. 그는 다가와 재석 앞에서 몇 걸음 남겨 놓고 서더니 쓰고 있던 군밤장수 모자의 챙을 척 올리면서 말했다.
“신씨네 집에 계시던 양반이군.”
그러고보니 재석도 낯이 익은 사내였다. 신사장의 손에 이끌려 해피투게더 녹화를 할 때 자주 보던 얼굴이었다. 그는 자신을 방송 삼사 다니면서 노래일 하던 탁재훈이라 소개하면서, 다시 말을 붙였다.
“어디로 사라지시려고, 짐은 그렇게 잔뜩 들고?”
사내가 물었다. 가까이 얼굴을 맞대고 보니 정말 시원시원하게 잘생긴 얼굴이었고, 그 살가운 태도가 밉지 않았다. 그는 자기보다는 댓살쯤 더 나이 들어 보였고, 이 바람 부는 초가을 방송국 앞에 척 걸터앉아서도 만사 태평인 꼴이었다.
“마봉춘에 갈까 하구요.”
재석은 말했다.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방향 잘못 잡았어. 거기 뭐 이렇다할 예능이 있나?.”
“고향같은 곳이라서.”
“응? 댁 고향은 캐백수 아니었나?”
“아뇨, 다른 사람 고향입니다.”
재석은 멋쩍은 듯 더듬거렸지만, 별 관심없는 듯 재훈은 가방을 들쳐매었다. 그도 어딘가엘 가는 사람 같아 보였다. 이번엔 재석이 물었다.
“탁형은 어딜 가십니까?”
“나이 드니까 댄스가수도 못하겠어서... 예능이나 해볼까 하고.”
“그런가요... 뮤직뱅크는 지겨우신 모양이네요.”
“응, 마흔에 춤추면서 라이브하긴 힘들다고.”
그런 말, 아무렇지 않게 해도 괜찮나... 생각하는 와중에 재훈은 어느새 재석을 따라오고 있었다. 재석이 돌아보자 능글맞은 그 잘생긴 얼굴은, 혼자 갈 거면 심심한데 같이 가자구, 하며 씨익 웃었다. 동행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낫겠지. 그제야 두 사람은 제대로 통성명을 했다. 엠씨일 하던 유재석입니다. 내 소갠 했지? 본명은 따로 있지만... 어쨌든, 탁재훈이야.
그렇게 함께 길을 걷게 된 그들이 캐백수 앞의 작은 상가를 지날 때였다. 상가 안에선 누군가 싸우기라도 하는지 온통 시끄러웠다. 그냥 가려는 재석을 잡아챈 재훈은ㅡ세상에서 제일 재밌는게 싸움구경이랑 불구경이야! 하면서ㅡ상가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 상가는 작지만 제법 그 가게 유지에는 문제가 없는 실적을 올리는, 성질 불같은 이사장이 하는 비디오가게였다. 그는 바락바락 소리쳤다.
“이 어좁이같으니라고! 도망을 칠려면 곱게 칠 것이지 왜 내 비디오 테이프는 가져가는거야!!!”
“뭘 가져갔는데 이 난리세요 대체!”
“내 복수혈전 비디오가 없어졌단 말이야! 하나밖에 없는 건데!”
“뭐에요, 난 또 엄청 대단한 거라도 가져간 줄 알았구만!”
“뭐가 어째! 그런 대작이 없어졌는데 넌 잘도 그런말을! 확 올라오네 진짜!!!”
물끄러미 보고 있던 재훈과, 이 사장의 짜증을 다 받아주고 있던 그 비디오가게 직원 김씨의 눈이 마주친 건 그때였다. 이크 하고 도망치려던 재훈이었지만 어이, 이봐요! 하고 부르는 용만에 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아니 웃긴다, 그러니까 그냥 가자니깐! 투덜거리는 재석은 부록처럼 같이 딸려왔고, 불같이 화를 내던 이사장은 진정이 안돼서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먹어야겠다며 나갔고, 남은 것은 세 사람 뿐이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김씨였다.
“무슨 일들이십니까? 비디오라면 지금은 대여가 안 되는데.”
“아니, 별로... 회원증도 없고 말이죠.”
“저기 탁형. 그건 별로 중요한 문제가...”
“그것보다 무슨 일 났습니까? 이사장님 화가 장난 아닌데요.”
“아, 알바생 하나가 도망가는 바람에.”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알바생은 본디 이 가게에서 육개월 정도를 일했는데, 오늘 일어나 출근해보니 이사장이 최고의 역작이라 부르는 복수혈전 비디오와 딱 본인 월급 육개월치를 들고 튀어버렸다 했다. 선불 받은 거네요 뭐. 재훈은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그의 개그에 웃지 않았다. 지못미 탁형. 아무튼 이런저런 얘기를 한 김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보아하니 먼 길들 가는것 같은데, 부탁 하나 합시다. 가다가 서른 서넷쯤 되고, 앞머리는 일자에, 어깨가 유난히 좁은 깡마른 남자 하나 만나면 좀 데리고 와주시오. 저 형님 화는 그러지 않고서야 안 풀릴 것 같으니...”
재석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재훈은 자신 있다는 듯이 기세 좋게 대답했다.
“그러죠, 그 정도 특징이면 금방 찾을 것 같은데.”
“고맙게 됐어요. 암튼 뒷모습이 기집애같고 어깨가 좁아요, 잊지 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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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걸었다. 이제 곧 스브스라는 마을에 도착할 것이고, 그러면 조금만 더 걸어가면 마봉춘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래는 재석과 달리 재훈은 아까부터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렸고, 결국 가위바위보에서 진 재석이 두 사람 몫의 호빵을 사야만 했다. 호빵 껍질을 신나게 까던 재훈이, 뭔가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 재석 뒤편을 가리킨 것은 그때였다.
“어이, 저것 좀 봐요.”
“무얼 말입니까?”
“저쪽 나무 아래 벤치.”
재석의 시선이 재훈의 손가락을 따라가 멈춘 곳에, 벤치에 등을 보이고 앉은 남자의 등이 보였다. 어깨가 유난히 좁고 뒷모습은 여자 같은게, 영락없이 김씨가 말한 그 알바생 같았다. 도대체 언제 그런 별명은 지어 준 건지, 호빵을 뜯다 말고 재훈은 버럭 그 쪽을 향해 불러보았다.
“어이, 어좁이!”
“뭐, 뭐?”
그러자 그 말에 깜짝 놀란 어좁... 남자가 돌아보았고, 눈이 마주쳤다. 호빵을 먹고 있는 삼십 넘은 아저씨 둘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남자는 풋 하고 코웃음을 쳤다. 안심한 것이다. 누구 맘대로 어좁이래? 투덜거리는 남자에게 다가가 재훈은 제법 무섭게 말했다.
잘 만났네 어좁이, 마침 찾고 있었는데.
이사장님이 부탁했겠죠, 찾아오라고.
잘 아네. 그래서 잡으러 온 거지. 돈까지 훔쳐간 건 심했잖아?
흥, 잡아가 보시지 그럼?
어쭈 반말이냐? 머리에 피도 안 마른게!
어깨 좁은 남자는 생각보다 도도한 것 같았다. 그렇다기보단, 다시 잡혀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어쩐지 경계를 못 푸는 닭 같아 보여 측은해진 재석이 불꽃이 튀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자, 다들 진정하시구요. 잡아가고 그런 게 아니니까 일단 마음 놓으세요. 그보다 어좁... 아니, 아무튼.... 제법 정중하지만 호칭을 뭐라 해야할지 몰라 난감한 재석의 말투에 남자는 그래도 그제야 좀 분이 풀린 듯 했다. 여전히 쏘아보는 재훈을 뒤로하고 남자는 걸음을 빨리하며 내쏘았다.
“자기가 뭐라고 잡아가고 말고야, 웃겨 진짜...”
“야, 어좁이!”
이에 열받은 듯한 재훈이 달려가 어좁... 그래, 어좁이의 팔을 잡아챘고, 미처 뿌리치지 못한 그는 휘청거리다 멋대로 돌려세워져서 두 팔을 잡혀버렸다. 뭔가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묘한 자세가 된 두 사람.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얼굴이 잔뜩 붉어진 어좁이가 재훈을 팩 밀어냈다. 어쭈, 하는 듯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재훈은 여전히 그의 팔을 잡은 채였고, 그 손을 놓은 것은 재석이 눈짓으로 열심히 가르쳐준 다음이었다. 어좁이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거 왜 이래? 나 신정환이야, 이래뵈도 이곳저곳 다 다니면서 안 해본 알바 없는 놈이라구. 조용히 비디오가게에서 차비나 벌어 가려던 참인데, 웬... 이보세요 아저씨, 내가 지금은 이래도 예전에 강남 가서 신정환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적당히 입 다물어주면 모를까 그 성질 나쁜 사장 돈 받자고 치사하게 굴면 재미 없을 줄 알어! 그리고 뭐, 훔쳐? 하도 밀린 월급 안 줘서 받아간 게 훔친 겁니까, 예?”
재훈은 팔을 여전히 두 사람 분 손을 잡은 마냥 든 채, 멍하니, 정환의 일장 연설을 듣고 있었다. 재석은 웃음을 참느라고 키득거리며 애꿎은 호빵만 만지작거렸다. 쩝. 입맛을 다시며 재훈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아무래도 말이 너무 심했다고 생각한 모양. 이내, 미안했는지 씩씩대며 앞서 걷는 정환의 목을 슬쩍 감았다. 야아 어좁이, 미안해. 알았으면 그런 말 안했지. 아 됐어요, 목에 감긴 팔을 풀려고 노력하면서 정환은 투덜거렸지만,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재석은 그런 두 사람을 따라가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스브스엔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대강 둘러본 재석이 그제야 정환에게 다시 물었다.
“그것보다 정환씨. 어딜 가실 생각인데 그래요?”
“집에요.”
“집?”
“우리집, 스브스라는 방송국 옆 동에 있어서.”
"아 잘됐네, 우리도 그 쪽으로 가는데. 목적지가 거기는 아니지만."
살갑게 말하며 능글맞게 웃는 꼴이, 그렇게 밉지는 않은지 픽 웃으며 걸음을 빨리하는 정환이었다. 어쩐지 저 둘, 좋은 사이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재석은 웃었다. 뭐, 동행은 많을 수록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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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스에 도착했지만, 정환의 집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걷다가, 약해보이는 외모 만큼이나 정말 허약한 듯한 정환이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일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심하게 넘어졌는지 발목이 금방 부었다. 가뜩이나 여자 다리처럼 가는 다리에 발목까지 그리되니 그 위화감은 상당했다. 그때, 의외로 선뜻 재훈이 나서 등을 내어 주었던 것이다. 처음엔 얼굴이 벌개져서 절대 안 업히겠다고 난리치던 그도 재훈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는지, 조심조심 그 널찍한 등에 업혔다. 사내놈이 뭐 이렇게 가벼워? 가볍게 핀잔을 주면서도 재훈은 조심조심 정환을 업어갔고, 정환은 정환 나름으로 말이 없었다. 저기요. 작게 하는 말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그는 말을 잇는다.
“아저씨 괜찮은 사람이네요, 처음엔 건달인 줄 알았는데.”
“이거 왜 이래. 난 이래뵈도 매너 빼면 시체라구.”
“ㅡ무겁죠?”
"저언혀."
“어깨가 참 넓으네요. 한 세 사람쯤 업겠어.”
“니가 좁은 거... 아야야! 알았어, 알았어.”
그렇게 투닥대며 얼마나 걸었을까. 그들은 저녁 일곱 시쯤에 정환의 집 앞 놀이터에 도착했다. 아직 다리가 다 낫지 않았는지 절뚝거리던 그는 그네에 올라앉아 삔 다리를 곧게 폈다. 이제 스브스니, 마봉춘까지는 못 가도 30분. 어쩐지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끼며 재석은 정환의 다리를 살펴보았지만, 처음보다는 많이 가라앉은 것 같았다.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인지 멀뚱멀뚱 보고 있던 재훈도, 정환이 고개를 들어 그를 보자 슬쩍 눈을 피했다. 아닌 척 하기는, 은근히 부끄럼 탄다니까. 속으로만 웃으며 재석은 정환에게 말했다.
“병원에 꼭 가봐요, 그냥 두면 더 나빠질 것 같으니까."
"고맙습니다. 그쪽은 참 좋은 사람 같네요."
"뭐야, 그럼 난 아니라는 거?"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어쩐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종알거린 정환이, 잠깐 주저하는 듯 하다가 고개를 들어 재훈을 불렀다. 왜 어좁이? 대답하는 말에 왠일로 화를 내지 않으며, 오히려 아까보다 더 붉어진 얼굴로 그는 말했다.
"저 분은 능력이 있으니까 어딜 가도 잘 할테지만... 아저씨는 어쩐지 무지 걱정되는데."
"헹, 어좁이가 걱정해 줄 건 아니네요."
"저기. 꼭, 마봉춘에 가야 되는게 아니면... 여기, 안 있을래요?"
순간 아무 말이 없었다. 재훈은 잠깐 머뭇거리다, 재석을 바라보았다. 그는 핸드폰을 확인하는 척 하면서 은근슬쩍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본인 결정대로 하라는 소리인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같이 온 길동무고, 같이 마봉춘까지 가기로 약속했는데. 그럼에도 이 당돌한 어좁이의 제안을 쉽게 뿌리칠 수가 없는 그였다. 그런 맘을 읽기라도 했는지, 탁 소리를 내며 핸드폰을 접은 재석이 웃었다. 그렇게 하세요, 스브스는 곧 예능프로도 많이 들어온다던데. 마봉춘까지 30분밖에 안 남았는데, 어린애도 아니니까 잘 찾아갈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웠다. 재훈은 고개를 끄덕이고, 어좁이를 한번 보았다. 민망한지 그네를 삐걱거리며 하늘만 보는 녀석이 귀여운걸 보니, 그새 콩깍지가 씌인 모양.
고마웠어 메뚜기, 조심해서 가.
알고 계셨네요 제 별명.
응. 그보다 너, 누구 고향인데 그렇게 가려는거야?
아... 옛날 친구 고향이에요. 거기 가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해서.
헤에. 보통 친구같지는 않은데.
놀리듯 키득키득 웃는 재훈에 재석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슬슬 더 어둡기 전에 떠나자 싶어 짐을 챙기는 재석을 보며, 정환이 미안한 듯 물었다.
“늦었는데, 하룻밤 지내고 가시잖구요.”
“아뇨아뇨, 한시라도 빨리 가서 찾아보고 싶어서요. 고마워요.”
“메뚜기, 그 친구 찾으면 꼭 데려와... 아 참!”
손을 흔들려던 재석은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재훈을 보았고, 재훈은 씨익 웃으며 조금 부끄러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이름, 탁재훈이 아니야. 본명은 배성우... 뭐, 그냥 알아두라구.”
상당히 이미지가 다른 이름이네요.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못하고 재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어둠 속으로 스브스와 두 사람은 멀어져 갔다. 예능이건 가요프로건, 두 사람이 함께라면 왠지 뭐든 잘 해낼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재석이었다. 잘 됐으면 좋겠네요,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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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금 더 걸어 버스정류장에서 마봉춘으로 직행하는 버스를 탔다. 짐을 대충 정리해 놓고 자리를 차고 앉은 재석의 옆에 앉은 이름모를 남자가 그의 행색과 무릎 위의 배낭을 눈 여겨 살피더니 말을 걸어 왔다.
“어디를 가시나?”
“누구, 찾을 사람이 있어서요. 방송국에 갑니다.”
“마봉춘 말인가? 거기는 내가 15년 동안 충성을 맹세한 방송국이야.”
“아, 그렇군요.”
“그럼! 내가 요즘 유행어로 또 빅재미를 빵빵 터뜨리고 있지. 이봐, 안녕하셨쎄요?"
"안녕하셨쎄요? 이렇게 하는 건가요?"
"야야야, 너 뭐야, 뭔데 나보다 더 맛깔나게 해, 앙!"
그냥 따라해봤을 뿐인데 불같이 화를 내는 이 남자는 보아하니 방송국으로 출근하는 듯 했다. 그러면 혹시, 알지도 모르겠다. 기대를 가지고 뭔가 물어볼 참으로 입을 여는 순간, 남자가 넋두리처럼 창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오늘 촬영은 참 걱정이란 말야. 이휘재가 옆에 있으면 내 얼굴이 죽는데..."
응? 방금, 뭐라고 했지?
"네? 방금, 이휘재라고 하셨..."
"뭐야, 왜 남의 말을 엿들어! 멍충아!"
"죄, 죄송합니다... 아니 것보다, 휘재가 아직 마봉춘에 있나요?"
"뭐야. 아는 사이야?"
"네. 그, 잘 생기고, 피부 장난없고, 키도 크고 몸매도 좋은 그 이휘재 맞죠?"
"그래! 근데 너 뭐야, 휘재 끄나풀이야? 왜 내 앞에서 자랑질이야, 앙!"
순간 재석은 심장이 백미터 달리기를 몇번이나 한 것처럼 뛰는 것을 느꼈다. 옆에 앉은 남자의 말에 따르면 그는 요 몇년 마봉춘을 떠나 있다가, 무슨 연유인지 모르게 다시 고향인 마봉춘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재석은 꿈만 같아서 다시 버스의 이정표를 확인했다. MBC. 마봉춘이라고 또렷이 새겨진 글자를 보고 난 뒤에도 재석의 심장은 진정이 되질 않고 자꾸만 뛰었다. 십사년만에 만나는거야, 휘재야. 약속 지키러 가는 거라구 나. 이상하다는 듯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거성과 재석을 태운 버스는, 아침햇살을 뚫고 활기차게 마봉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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