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전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백석, '여승' 전문)
이 작품은 아마도 교과서에도 실려있다고 여겨지는데,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시인 백석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 읽었을 때, 작품의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1연의 여승과 2연 이하의 여인이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여승과 그 여인을 함께 묶어 형상화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화자가 마주친 여승은 아마도 절의 법당에서 절을 하고 합장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가지취'와 '쓸쓸한 낯', 그리고 '불경처럼 서러워졌다'라는 표현을 통해, 여승이 출가한 것은 자의가 아닌 어떠한 상황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문득 화자의 시선은 과거의 어느 한 때로 향하고, 어느 금전판(금광)에서 옥수수를 샀던 '파리한 여인'을 떠올리고 있다.
그녀에게는 나이 어린 딸이 있고, 아마도 무언가를 보채는 딸을 어르다 지친 듯 매를 때리며 하염없이 울던 그 여인을 떠올렸던 것이다.
3연의 '섶벌'은 벝통을 수시로 드나드는 벌을 가리키는데, 그렇게 집을 나선 지아비는 10년을 기다려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하여 여인은 어린 딸과 함께 금광을 떠나지 못하고,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 사이 도리지꽃을 좋아하던 딸아이는 죽어 무덤에 묻혔고, 여인은 딸아이가 좋아하던 도라지꽃을 무덤가에 심었을 것이다.
집을 떠난 남편을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 마저 세상을 떠난 여인이 살아가기에는 만만치 않은 세상에서, 끝내 머리를 깎고 여승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선택이 순전히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4연의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졌다는 작품의 분위기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일이 흘러 어느 절에서 화자는, 여승이 되어 '합장하고 절을' 하는 모습을 발견한 것이라 하겠다.
아마도 이 부부는 금광이 호황을 누리던 무렵 돈을 벌기 위해 모여들었던 사람들 중의 하나였을 것이고, 그곳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고 짐작된다.
하지만 생각했던 만큼 재미를 보지 못한 남편은 나이 어린 딸과 부인을 두고, 돈을 벌어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던 모양이다.
십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여인은 옥수수 따위를 팔며 살아야만 했고, 그 사이 병약한 어린 딸은 죽어서 무덤에 묻힌 것이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남편을 기다렸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여인은 자신의 몸을 불교에 의탁했을 것이다.
어느 날 절에서 만난 여승의 모습에서 과거 옥수수 행상의 모습을 떠올렸고, 시인은 그녀의 기구한 삶을 이 작품을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행간을 통해 많은 것을 추론하여 채워야 하는 작품이지만, 백석의 뛰어난 시 세계를 엿볼 수 잇는 작품이라 여겨진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