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혹 언론을 통해서 가출청소년들의 비행을 다루는 기사를 접해본 적이 있지만, 그들의 생활과 의식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를 통해 바라본 그들은 ‘아이’이자 때로는 ‘괴물’로 인식되면서 간혹 ‘희생자’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집을 떠나 거리에서 생활하는 이른바 '가출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통해, 그들을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고자 했던 저자의 경험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은 '가출 청소년'들이 있지만, 그들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지극히 미약한 수준이라고 한다. 곳곳에 그들을 위한 청소년 쉼터가 있으나, 거리의 청소년들은 가급적 그곳을 찾지 않는다고 한다. '시설'을 이용하는 아이들을 '선도 대상'으로만 여기고, 가르치려고만 두는 '어른'들이 대부분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저자의 바람처럼 그들의 상황을 먼저 정확히 인식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살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인터뷰를 통해 여섯 명의 아이들이 거리를 떠돌 수밖에 없는 사연들이 제시되고 있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부모들의 방조는 기본적이고, 때로는 폭력과 성적 학대로 이어지는 일상을 버티지 못하고 아이들은 집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누군가의 '아이'로 태어났지만, 다른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 놓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체로 부모들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싫어하지만 미워하지 않는다고 담담하게 표현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강남의 부유층에 속하면서도 강압적인 집안 분위기 때문에 가끔 '전략적 가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도 자신의 태도에 책임을 느껴야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부모로서의 자격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가족들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거리로 뛰쳐나온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는 장소와 경제력이었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마련된 쉼터도 그러한 역할을 하지만, 미성년자인 그들에게는 반드시 법적인 보호자의 역할을 요구하기도 한다. 쉼터에서 안정을 취하던 한 아이는 '아빠'에게 연락했다는 시설 관계자의 말을 듣고, 자신에게 성적 학대를 하던 기억을 떠울리며 무작정 시설을 뛰어나왔다고 한다. 아이를 보호해야 할 역할을 맡은 부모가 오히려 학대의 대상이기 때문에 가출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관계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하겠다. 그러면서 결국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찾다보니 '성매매'에 빠져들게 되고, 그로 인해 소년원에 수감되는 일이 반복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거리의 아이들은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괴물'로 변해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가슴이 아팠던 내용은 처음 청소년 쉼터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아이들이, 시설 책임자가 부모들에게 연락을 하면서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현실이다. 시설 책임자로서는 심리적인 안정을 취한 후에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어떤 아이들에게는 가족들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이 공포로 다가올 수도 있음을 전제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만난 아이들이 대부분 그러했고, 쉼터를 떠난 아이들은 일상을 버티기 위해서 범죄의 세계에 몸담고 다시 '괴물'로 변해간다고 한다. 저자와의 인터뷰 과정에서도 자신의 생활이 그릇되었음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단지 마땅한 대안이 없어 그러한 현실을 벗어날 수 없음을 토로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이들을 '우리 곁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로 표현했을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룬 여섯 아이들의 현재는 비극적이다. 누군가는 범죄에 연루되어 교도소 혹은 소년원에 갇히고, 여전히 어두운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의 삶을 포기한 아이들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만나는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지만, 그들의 삶을 바꿀 수는 없었다고 자책을 하고 있다. 아마도 오랫동안의 만남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저자가 느꼈던 심정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하여 저자는 '그들은 나에게 무시무시한 괴물보다는 가혹한 운명의 희생자로 보일 때가 더 많다'고 말한다. 탄생 자체를, 아니 부모 자체를 선택할 수가 없었던 아이들이 마주쳤던 가혹한 현실의 탓이라 하겠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