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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인 E.H.카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들의 지속적 상호작용의 과정이자,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규정한다. 모든 역사들이 과거의 기록을 토대로 재구성된다고 할 때, 그것을 해석하는 역사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역사, 말의 의미, 일반적 편견 등에 관한 많은 책을 저술’한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 책에서는 세계사의 주요 사건 28개를 추려, 그것이 ‘사실’과는 다른 편견에 기초한 통설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책에는 ‘세상을 뒤흔든 역사 속 28가지 스캔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으며, 그 사건들을 일컬어 <미스터리 세계사>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다. 이미 통설로 자리를 잡은 다양한 사건의 경과나 의미 등에 대해서, 전혀 다른 각도에서 기술된 기록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해석을 던져주고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자신이 ‘이 책을 집필하며 가장 주의한 것은 혹시라도 편파적인 출처에 의존하게 되는 함정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역사에서 기록자의 주관적인 관점이 통설로 자리를 잡아 왜곡된 경우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지금, 저자의 관점이 자신의 해석만이 옳다는 일종의 ‘확증편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매우 흥미로운 내용들이지만, 과연 저자의 입장과 다른 기록들을 교차해서 검토했을 때도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인가는 자신하기가 힘들었다.
모두 5부로 구성된 목차에서, 1부는 ‘허위와 날조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잔 다르크’를 비롯한 7개의 사건들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확인한 기록에 의하면 ‘잔 다르크의 신화’가 탄생한 오를레앙은 전쟁터도 아니었으며, ‘애국심을 고취할 목적에서 19세기 프랑스에서 창작된 인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확인한 19세기 이전의 기록들에서는 잔 다르크의 영웅적인 활약상은 좀처럼 보이지 않으며, 여전히 ‘잔 다르크의 이야기는 그 진위성에 대한 숱한 의혹을 받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밖에도 드라큘라 백작의 부인이 피를 마셨다는 괴담을 포함하여, 의적으로 추앙받는 로빈 후드의 이야기 등은 ‘사실’이 아닌 누군가에 의해서 ‘꾸며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합리적 의심에는 충분히 근거가 있으며, 그에 대한 상반된 기록을 통해서 진위를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허위와 날조의 역사’인지, 아니면 후대의 누군가에 의해 꾸며진 ‘설화적 윤색’인가에 대한 평가는 충분히 엇갈릴 수 있다고 하겠다. 예컨대 우리의 고전소설인 <홍길동전>이나 홍명희에 의해 형상화된 <임꺽정>도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들의 이야기이지만, 소설에는 의적으로 미화되어 윤색되었다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가혹한 학정에 시달리던 당대의 민중들은 그러한 존재들을 통해서, 자신들이 그리던 상황을 투영한 것은 아니었을까? 단지 기록만을 근거로 그것을 ‘허위와 날조’라고 단정하기보다 왜 그러한 상황이 만들어졌을까 하는 점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첨가되어야만 할 것이다.
서양사에 대한 내용이나 이론적 기반이 취약하다 보니, 실상 이 책에 소개된 사건들에 대해서 통설은 물론 저자의 새로운 해석조차 낯설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2부의 ‘가짜 항해와 꾸며진 모험담들’의 내용들과 3부의 ‘추악한 살인 사건들의 진상’에 소개된 사건들 대부분은 나에게는 생소하게 여겨졌다. 그 중에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론>이 중국에 관한 소문으로만 집필되었다는 내용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당시 서양 사람들에게는 낯선 중국의 이야기들이 무척이나 흥미롭게 느껴졌겠지만, 저자는 그 책 속에 서술된 내용이 당대 중국의 상황과는 너무도 많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세세하게 제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역사가들은 폴로가 ... 흑해 근해에서 동방국들을 상대로 돈을 벌면서, 거기서 만난 이들에게서 주어들은 이야기를 쓴 것이라고 주장’도 있다고 한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4부의 ‘건축과 종교를 둘러싼 미스터리’에서, 이집트 피라미드의 건축 과정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동안의 통설은 수많은 노예를 부려서 돌을 재단하고, 인력을 동원하여 하나씩 쌓아 거대한 피라미드를 축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노예들을 부릴 수 있었던 이집트의 경제력과 당시의 노예를 부릴 수 있었던 주변국의 상황을 토대로 가능했다는 것이 그 논거를 뒷받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양한 고고학적 답사 기록을 분석하여, 석회암 가루가 강을 따라 녹아서 나일강 근처의 거대한 웅덩이에 쌓여 있었고, 그것들을 마치 벽돌을 만들 듯이 거푸집에 부어서 돌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돌들은 하나씩 옮겨 피라미드를 쌓았다고 한다. 무척 흥미로운 내용이지만, 이 책에는 그것을 20페이지의 짧은 내용으로 너무도 간략하게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근거가 되는 주장들을 보다 상세하게 설명했더라면, 설득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밖에도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거대한 석물인 스톤헨지에 지붕이 있었다는 주장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마지막 5부는 ‘분쟁과 재앙을 둘러싼 미스터리’라는 제목으로, 모두 6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특히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로 잘 알려진 스페인 내전 당시의 게르니카의 폭격에 대해서는, 독일군에 의한 폭격이 아닐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기존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기록의 발굴과 ‘실재했던 현실’을 정확히 밝히는 것은 분명 역사 서술자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잇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합리적인 설명에 대해서 수긍할 내용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해석도 결국 저자의 ‘확증편향’에 의한 일방적 해석의 가능성은 없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수많은 기록들 가운데 어떤 주장을 채택하는가에 따라서 역사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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