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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에도 꾸준히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학문적 자세는 후학으로서 본받을 면모라고 생각하고 있다. 단지 지속적인 연구 성과를 제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이 국문학 연구에서 매우 긴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더 부각될 필요가 있다. 팔순의 나이에도 개인적 연구는 물론, 후학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공부모임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도 듣고 있다. 평생 저자의 관심이 집중된 분야이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8백 페이지에 달하는 거작이지만 그 내용이나 전체적인 구성이 ‘한국소설사’의 맥락을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 스스로 이 책을 ‘한국소설사에 관한 학문적 관심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전체 6부와 보론까지 7개 항목을 통해서 15~16세기의 전기소설로부터 장편소설과 한문단편은 물론 20세기 이후 근대소설까지 섭렵하여 탁견을 제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한국 소설사의 흐름을 중국문학과의 관련 양상을 고려하여 ‘동아시아 서사’의 문제로 넓혀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예컨대 고전소설인 <구운몽>을 중국소설 <홍루몽>과 비교하고, 염상섭의 <만세전>을 루쉰의 <아Q정전>과 함께 다루면서 한중 양국에서 전통시대의 소설이 근대로의 전환기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를 짚어내는 내용을 첫 번째 항목에서 다루고 있다. ‘동아시아 서사와 그 근대전환’이라는 1부의 제목을 통해서, 고전소설사가 어떻게 근대의 문학사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있다.
‘15~16세기의 전기소설’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비롯해서 당대의 한국과 중국소설의 비교, 그리고 <위경천전>을 통해 ‘한국소설사에서 전기소설’의 위상을 짚어내고 있다. 자연스럽게 저자의 관심은 이후의 소설사로 이어지는데, 이 시기를 대표하는 양식으로서 저자 스스로 제안한 ‘규방소설’을 제목으로 내세워 다루고 있다. ‘17세기 규방소설의 성립과 <창선감의록>’이라는 논문을 통해서, 조선 후기 여성 독자들이 소설의 향유층으로 등장하여 작품의 창작과 유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양상들을 정리하여 보고하고 있다. 한국소설사에서 국문소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지만, 또한 한문으로 기록된 서사물의 광범위한 창작과 향유도 간과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야담.한문단편’이라는 제목의 4부에서는 조선 후기 새롭게 등장한 한문으로 유통되었던 서사물들은 물론, 떠도는 이야기를 한문으로 기록했던 ‘야담’의 존재가 20세기 이후 근대까지 대중들에게 향유되었던 실상을 보고하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소설사에서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들이 대체로 고전소설사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면, 저자는 ‘20세기 전후 소설양식의 변모’라는 제목의 5부를 통해서 고전소설은 물론 신소설이 당대에 끼친 영향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서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6부에서는 ‘근대소설’이라는 제목으로, 홍명희의 <임꺾정>과 염상섭의 <삼대>는 물론 이들과 함께 해방 전후의 ‘단편소설’들의 문학적 성과와 의의까지 짚어주고 있다. 저자의 관점에서 착안하였던 이상의 소설사 전개에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았던 2편의 논문은 ‘보론’에 제시되어 있다. 조선시대 다양한 분야에서 적지 않게 등장하는 ‘군도의 사회사’에 대해서 소설 <홍길동전>을 실록이나 그 밖의 야담 자료에 나타나는 양상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제시한 내용이 그 하나이다. 다른 한편은 조선 후기 ‘화폐’의 유통과 관련된 문제들이 문학작품에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분석한 논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이 ‘한국소설사’를 온전하게 포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흐름을 이해하는데는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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