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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는 주로 한 국가를 배경으로 형성된 문학 현상을 역사적으로 정리하여 서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때로는 여러 국가의 문학사를 서로의 관련 양상에 따라 비교하고 정리한 비교문학사가 누군가에 의해 시도되기도 한다. 예컨대 ‘동양문학사’ 혹은 ‘서양문학사’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문학사를 예로 들 수 있는데, 그러나 이 경우도 대개는 단일 국가의 문학사들이 나열되는 것에 머문 경우가 많다. 물론 전통 시대에는 문학에 대한 인식이나 문학사라는 개념이 분명하게 정립되지 않았기에, 문학사는 문학 연구가 본격화된 근대 이후의 산물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서 문학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수 있으며, 저자의 관점과 시각에 따라 동일한 문학 현상이 서로 다른 평가가 내려지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조동일은 한국문학 연구사에서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가 남긴 연구 성과들은 국문학 연구자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체 6권으로 구성된 <한국문학통사>라는 방대한 저술을 통해 한국문학사를 정리한 저자가 그 다음 목표로 설정한 것은 바로 ‘동아시아 문학사’였다. 동아시아에서 한문이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었기에, 공용어인 한문으로된 문학적 성과물과 개별 국가들의 민족어 문학의 특징을 살펴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문학사를 전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결과 그것을 위한 기초 작업으로 펼쳐낸 연구 성과가 바로 <하나이면서 여럿인 동아시아문학>이라는 저작으로 탄생했다.
이 책은 ‘한문’이라는 공통 문어를 사용했던 중국과 한국, 일본 그리고 월남과 유쿠를 아우른 문학사를 염두에 두고 그 전제를 살피고자 한 것이다. 때문에 첫 번째로 수록된 ‘연구방향 설정을 위한 구상’이라는 논문에서는 저자가 구상하고 있는 동아시아문학사를 위한 이론적 논의를 펼치고 있다. 저자는 동아시아문학사의 개별적 현상들이 독특한 면모를 지니고 있지만, 또한 그것은 공통의 사상과 언어적 기반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그러한 측면이 ‘하나이면서 여럿의 기본 논리’를 제공하며, 동아시아문학을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설파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적 기반을 토대로 동아시아 각국에서 새로이 탄생한 ‘시조도래 건국신화’를 비교하여 살피고, 그것이 고대 건국신화와는 다른 동아시아 중세의 특징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으로 유교 국가였던 조선에서 불교의 경전인 ‘대장경’이 일본을 비롯한 각국의 교류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현상과 그 의미를 파헤치고 있다. 이밖에도 공통의 시 형식이었던 ‘한시’가 각국에서 어떤 역할을 했던가를 살피고, 이에 대응한 각국의 민족어 시가의 특징을 비교하여 논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중국 문화권에서 발원한 한문 텍스트를 각 나라가 어떻게 번역했는가를 살펴, 동아시아 문학의 ‘하나이면서 여럿인’ 특질을 짚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아마도 저자는 이러한 구상을 통해서 한문 문화권의 동아시아문학사를 집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듯이, 한국문학사만 하더라도 저자에 의해서 6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출간된 바 있다. 그리고 ‘한시’와 ‘번역’ 등의 특정한 표지를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다보니, 실상 각국의 문학 작품들 가운데 유사하거나 뚜렷한 차이가 발생하는 작품들만이 논의 대상으로 오르게 된 것이다. 때문에 이것을 통해 각국의 문학사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할지라도, 각국의 문학사에서 주변적인 문제들만 다루어지고 있다는 혐의를 떨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저자의 논의가 더 이상 깊이 있게 진행되지 못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동아시아 문학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며, 다만 저자의 의욕적인 시도에 걸맞지 않은 성과가 도출되었음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새로운 시각이 시도되지 않는 한, 당분간은 이러한 비교문학사가 실제로 출간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이해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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