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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작가로서 존 버닝햄은 그 내용은 단순하지만 읽으면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을 즐겼고, 대안학교를 다니는 등 독특한 성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런 성향이 아이들의 입장에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쳐내는 그의 작품세계에 바탕을 이루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작품의 내용을 주요 독자인 어린이들의 시선에 맞춤으로써, 어린이들의 자유로운 놀이와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의 작품에는 교육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자유로운 상황을 즐기는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들이 주로 등장한다. 독자들인 어린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인정하면서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자유분방한 그림과 함께 제시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책 역시 작가가 그동안 출간했던 책들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작품의 처음은 가족들이 모두 물가로 놀러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아빠는 셜리에게 ‘헤엄치기에 너무 쌀쌀한 날씨’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부모들이 앉을 의자를 물가에 설치하고, 그곳에 앉아 단지 말로만 셜리에게 이런저런 참견을 하는 것이다. 셜리에게는 ‘저기 가서 다른 애들이란 같이 놀’라는 말을 하고, 부모들은 이제 뜨개질과 신문을 보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시선은 딸에게 두지 않고 자신들의 일에 집중하면서, 혼자서 놀아야하는 딸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는 척 끊임없이 말을 해대고 있다.
‘예쁜 새 구두에 지저분한 흙탕물이 안 튀게 조심’하라고 하며, ‘어디서 놀다 왔는지도 모’를 개를 쓰다듬지 말라는 등의 말을 건네지만 부모의 시선은 셜리에게 향하지 않는다. 딸에게 시선을 두지 않고 끊임없이 말을 하는 부모들과 달리, 셜리는 상상으로나마 배를 저어서 바다에 떠있는 배로 가서 다른 아이들과 신나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아이에게 무관심한 부모와 상상 속에서 자신만의 놀이에 빠져 즐겁게 노는 설리의 상황이 양면에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그림은 부모의 ‘훈육’이 형식에 그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무엇이든 말로만 해결하려고 하면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어른들의 세계와 역동적인 놀이를 즐기는 어린이들의 세계를 대비하여 보여주고 있다고 이해된다.
그런 가운데 부모들은 준비해온 차를 마시고 낮잠을 자는 등의 모습을 연출하고, 셜리는 상상으로나마 그저 자신만의 놀이를 즐기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질 무렵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의 모습이 마지막 페이지에 그려지고 있다. 특이한 점은 부모의 말만 제시되어 있고, 딸인 셜리의 목소리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자유롭게 놀고 싶어 하는 셜리의 상상만이 그림으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모든 것을 금지하는 부모의 말을 들고 있지만, 그 내용과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부모와 아이의 시선은 절대 일치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그림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이 아이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서 말로 혼내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기보다 혼날 일이 아니라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일방적인 훈육의 대상으로 여기기 이전에, 부모가 아이들의 상황을 관찰하고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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