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231)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중년의 그대에게 2-2/ 시인, 중앙대문창과 교수 이승하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중년의 그대에게 2-2
Daum카페 http://cafe.daum.net/jjpoet/시인이 되려면 / 박영대
여러분이 고급독자에 만족하지 않고 시인이 되겠다면 몇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선 자꾸 써보아야 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듯이 이런저런 생각이
시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저는 시를 쓸 때 처음에는 이면지에 대충 시상을 적어놓습니다.
성글게 써놓은 것을 조용한 시간에 컴퓨터를 켜놓고 타이핑을 하면서 1차 퇴고를 하지요.
저장을 해놓고 나서 한참 시간을 보낸 뒤에 2차 퇴고를 합니다.
문예지로부터 청탁을 받으면 그렇게 저축을 해놓은 작품 가운데 몇 개를 골라 3차 퇴고를 합니다.
시를 자주 써보기도 해야 하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필사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시집을 한 권 읽으면 마음에 드는 작품이 대여섯 편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 시를 직접 베껴보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시를 눈으로 보는 것과 필사해보는 것은 느낌도 다르지만
시인의 기법과 정신을 파악하는 데 필사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저는 대학 시절에 마음에 드는 시를 시도 때도 없이 정서했는데 시를 쓰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에야 컴퓨터 없는 사람이 없을 터이니 타이핑하여 A4지로 뽑아서 파일을 만들면
그 파일이 훌륭한 스승이 될 것입니다.
왜 시를 쓰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주체적인 한 명의 인간이 되기 위하여, 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하여,
내 목소리를 내며 살기 위하여, 능동적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깊이 사고하며 살아가기 위하여, 인생의 희로애락에 대한 내 느낌을 표현하기 위하여…….
뭐 이런 이유들로 시를 쓰고 있습니다.
막연히 시인이 되기를 동경할 것이 아니라 창작의 이유를 보다 확실히 정하면 습작에 더욱 매진하게 됩니다.
독서량이 많아야 합니다.
경험의 폭을 넓혀준다는 점에서는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와 다를 바 없지만
책은 특히 우리에게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사고력’과 엉뚱한 생각을 가능케 하는 ‘상상력’을 불어넣어 줍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시집과 소설집은 물론이거니와 세계적인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고교생 백일장 수상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기생 면접이나 대학원 석·박사 면접을 하면서
책 읽은 것을 물어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세계 소설문학의 최고봉이라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요 작품,
우리 소설문학의 대들보라고 할 수 있는 김동리와 황순원의 주요 작품을
읽은 지원자를 만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데는 요령이 있습니다.
서점에 한 달에 한 번은 꼭 가야 합니다.
신문에 신간 안내가 나는 날, 유심히 보아두어야 합니다.
용돈이 생기면 책부터 우선적으로 삽니다.
책을 나의 재산목록으로 삼고 사 모으는 재미를 느껴봅시다.
독서 노트 같은 것을 만들어서 간단한 독후감을 적어놓는 것도 좋습니다.
여러분은 공부하고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냅니까?
텔레비전 시청, 컴퓨터 게임, 스포츠 경기 관람, 컴퓨터로 영화 다운로드해 보기,
음악 감상, 등산, 영화 관람, 장시간의 전화, 친구와의 만남, 맛있는 것 먹기?
우리를 놀게 하는 주변의 유혹은 끊임이 없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려면 이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습관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종교인에게 홀로 기도하는 시간이 없으면 안 되듯이 시를 쓰려는 당신도 홀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명상의 시간이 없으면 시를 쓰고자 하는 자발적인 의사,
즉 창작 의욕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고립된 장소에서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시 쓰기 등
창조적인 예술 행위의 결과물을 얻을 수 없습니다.
물론 집단창작이란 것이 있지만 습작의 기간, 수련의 기간에는 고립을 자처하여 그것을 즐겨야만 합니다.
어떤 대상이나 사물에서 받은 느낌과 떠오른 생각을 시로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집중적인 관찰이 필요합니다.
내 주변의 사물을 잘 보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어디에 가서도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시를 잘 쓰기 위해선 잘 보고 잘 듣고 느끼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또한 나를 가장 매료시킨 사물이 무엇인지, 내가 매료된 까닭이 무엇인지,
내 지금의 심리상태에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텔레비전이든 신문이든 저기에 좋은 글감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선 관찰의 안테나를 늘 세우고 있어야 합니다.
체험에 살을 붙이는 것이 상상력입니다.
시인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이미 알고 있는 상식이나 고정관념의 잣대로 재단하지 말고
난생처음 보는 듯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슈클로프스키나 로만 야콥슨 같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시의 기능은 사물의 낯설게 하기이다”라고 규정했는데.
이는 예술이 실생활의 재현이 아니라 생활의 모습을 일그러뜨려서 낯설게 만들어야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운율도 실상은 무미건조한 생활언어의 억양을 일그러뜨려서 우리의 습관화된 청각을 자극하는 수단입니다.
소설이나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풍성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이고,
시 역시 체험과 상상력의 비교적 짧은 혼화물입니다.
체험에 기반을 두지 않은 상상력은 망상이나 공상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를 잘 쓰기 위해서는 남들이 쓴 좋은 시를 많이 읽어보는 것이 급선무인데
여러분은 지금까지 몇 권의 시집을 읽었습니까?
시인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최소한 50권,
조금 많게는 100권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집을 시리즈로 내고 있는 좋은 출판사의 시집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데,
무심히 읽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눈빛이 종이를 꿰뚫을 정도로 골똘히 읽어야지요.
읽고 쓰는 과정을 충실히 한다면 여러분은 시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또 다른 세상을 꿈꾸고,
색다른 표현을 해보는 습관을 기르는 동안에 어느덧 시인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갖고서 습작하십시오.
그럼 그 언젠가 틀림없이 시인이 되어 있을 겁니다.
< ‘이승하 교수의 시 쓰기 수업, 詩 어떻게 쓸 것인가?(이승하, 도서출판 kim, 2017)’에서 옮겨 적음. (2021. 4.22.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231) 시를 쓰고 싶어 하는 중년의 그대에게 2-2/ 시인, 중앙대문창과 교수 이승하|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