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25분. 정류장에 도착하면 습관처럼 '버스 도착 알림판'을 보게 된다. 내가 타야하는 921번 버스는 방금 지나갔는지
'921번 버스 8분 후 도착.'이라는 안내 문자가 나온다.
"에휴... 8분이나 언제 기다리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면서 혼자서 중얼거린다. 오늘은 글쓰기 동아리가 시작되는 날이라 좀 일찍 가고 싶었다.
별다른 일도 없이 집에서 주춤거린 것을 살짝 후회하면서 버스를 기다린다. 8분은 너무 길다. 목이 빠져라 버스를
기다리며 도로 맞은 편 정류장을 보니 다른 날보다 조용하다. '그네와 시소'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엄마와 아이들로
늘 북적거렸는데 버스타는 시간이 바뀌었나? 늘 보던 아이들과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던 엄마들이 안 보인다.
순간 내가 다른 곳에 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둘레를 살폈다. 맞는데...
잠시 뒤 921번 버스가 왔다. 버스에 올라 늘 내가 앉는 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에잇, 누군가 벌써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잠시 망설이다가 옆 라인 자리에 가서 앉았다. 버스가 특별히 붐비지 않는 이상 내가 늘 고정석처럼
앉는 자리는 뒷문 바로 앞자리다.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다가 바로 일어나 벨 누르고 버스카드 찍기 편한 자리로
이 만한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알모책방으로 가는 10분이 아주 행복해진다.
언젠가 친구한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친구가 그러더라.
"이제 웬만하면 운전 좀 배우지. 내가 보기엔 뚜벅이의 비애로밖에 안 보이는데..."
"헐."
친구한테 이런 잔소리를 듣는게 속상할 때도 있긴 하지만 나는 버스를 탈 때 얻는 이런 작은 기쁨이 좋다.
그런데 921번 버스는 낡은 차가 많아서인지 냉방이 시원찮고 덜컹덜컹 승차감이 좋지 않다게 흠이다. 타고 가야
하는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서 기분좋게 밖 풍경을 감상하다가도 버스가 너무
덜덜거려 머리가 아플 때가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921번 버스 기사 아저씨한테 부탁할 말이 있다.
"아저씨, 제가 921번을 자주 타는데요, 운전을 좀 살살 하면 안될까요? 그리고 차 안이 너무 더워요.
시원하게 좀 해주세요."
1년 넘게 같은 시간에 버스를 타다 보니까 서로 눈 인사를 나누는 기사 아저씨도 몇 분 계신다. 그러니까 이런 사정을
이야기 하면 들어주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첫댓글 제목이 참 좋았어요.
'921번 버스'.
꽃마리님의 알모책방 오는 길을 가장 뚜렷하게 표현하는 단어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했답니다.
제목만으로도 점수 먹고들어가는 글!!!^^
멋진 제목에 저도 한 표!!
^^
앗 나도 뒷문 바로 뒷자리 좋아합니다.
발을 올려 놓을 수 있어서...
찌찌뽕~~
ㅎㅎㅎ 동네 주민이신 걸 알게 되어서 더 반갑습니다~
울 동네에 분위기 좋은 찻집 몇군데 있어요.
가끔 술은 아니 되고 차만 되는 번개 한 번 해요~
누구실까~~ ㅎㅎ
저는 오키스만 알아요 ㅎㅎ
앗, 이런... 하다하다 이젠 둔갑술까지...
제가 진달래샘 아이디로 댓글을 달았나봐요~
ㅎㅎㅎㅎㅎㅎ마리샘~인간미가 넘쳐요~~~~
저도 한 차 마시는데요~~같이 마시고 싶어요~~
꽃마리샘과 아침 출근시간을 같이 하는 느낌입니다~~샘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셨네요~~^^
님들의 글을 읽는 재미가 솔솔하겠는걸요~~
점점 사람 냄새 짙어지는 알모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