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린 시절, 신앙생활을 함께 했던
고향친구들이 떠오르는 밤이다.
내 고향교회의 친구, 김규진, 규진이는
초등학교 시절 내 짝꿍을 오래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규진이와 나는 신앙
동지였고 그때부터 우리는 교회와 신앙
이야기가 전부였고, 그리고 우리는 거의
비숫한 시기에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친구는 서울신학대학(성결교) 나는
대한신학교(장로교)에 입학했다.
내가 입학하고 기숙사에 첫날 밤을 자던 날
나는 밤을 꼬박 새웠다. 감격해서다. 내가
신학대학에 입학해서 소명자들만 있는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것이 너무나 놀라워
나는 밤새도록 돌아보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어떻게 그 밤을 보냈는지
그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규진이는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여
미국으로 가서(내가 유학가던 비슷한 시기)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Golden Gate Seminary
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나는 1981년 8월20일 유학을 하여 샌디에고
엘카혼에 있는 Southern California Semianry
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 후 규진이는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곤
했다. 하지만 미국으로 떠난 이후 한번도
그 친구를 만난 적이 없다. 만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 만남을 미루는 것 같아 만나는 것을
꺼려하는 것 같아 마음 정리를 하느라
힘들었었다. 그런데 지난 여름 고향
교회에 갔다가 규진이 누나(권사님으로
조치원성결교회 고 송인구 목사님의
큰 며느리)를 만났는데 친구 규진이가
3년전 하나님 나라에 갔다고 하셨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섭섭했던지 정말 그리운 내
친구, 신앙의 동지였는데... 우린 어린 시절부터
성경공부를 열심히 했고 기도생활도
정기적인 시간을 갖고 교회바루바닥에 앉아
기도훈련과 함께 기도생활을 했다. 겨울이면 지역
(농한기이용)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는데 우린
멀리 있는 교회를 찾아 부흥회에 참석했다.
규진이는 처음에 청주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을 했다. 그러다 그는 서울신대에
편입을 해서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규진이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골든게잍 세미나리를
졸업하고 남가주 포모나에서 목회를 했는데 다른
분으로 부터 들은 소식은 목회를 열심히
잘하고 있다가 어느 날 교회를 사임하고
사업에 뛰어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유를 지금도 나는 알길이 없다. 그런데
일찍 하나님 나라로 갔다니...
어린 시절 규진네는 부자였다. 규진 어머니는
(고향교회 권사님, 작고) 항상 먹을 것을 준비해
주셨고 규진이는 나보다 공부도 더 잘하고
미술과 음악에도 탁월했다. 교회에서는
항상 규진이가 친구지만 형처럼 나를 리드해
주었고 그리고 그는 내게 남다르게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과 우정을 나눈
친구였다. 우린 형제처럼지냈고 신앙문제에
대해서는 십대시절임에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가 목사로서의 길을 가고 있었는데.,
그리고 나이들어 때가 되면 한번쯤
만날것이라 생각했는데 친구의 천국환송도
해주지 못한 미안함에 몸둘바를 모르겠다.
"규진아, 그립다. 너무 보고 싶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핍박을 받으며 자란 나를 항상
격려해주고 용기를 주고 그리고 나의
장래를 위해서 남다르게 기도해 주던
네가 그립다. 네가 나보다 먼저 신학대학에
갔을 때 나도 서울신대에 가려고 준비를
했지만 낮엔 일을 하고 야간대학에 가야
겠다 해서 대한신학교를 간 것이 결국은
너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같아 마음
한켠에는 미안함이 있다. 그리고 고향
궁평교회에서도 내가 장로교 목사가 된
것에 대해 매우 섭섭해 하시던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아쉬어 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규진아, 너의 누님 규순이 누나를
지난 여름에 만났는데 네가 뭐가 그리 급해
이 땅을 떠나 주님계신 천국에 갔다
고 하는 말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천국에 가면 널 만나 궁평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던 추억이야기를 나누어야지.
그때 함께 신앙생활했던 유병역, 이도영,
김인용, 이규자, 기형순, 임정아, 임정애
박성순, 김경숙 박낙규같은 신앙친구들
그리고 이름이 기억 나지 않는 사랑스런
후배들이 너무 보고 싶다.
규진아, 너와 함께 수재의연금 모금을 위해
하루종일 조치원읍내를 모금통을 들고 다녔는데
우린 그때 이미 사람을 사랑하고 돕는 일에
훈련을 했던 거였어. 우리가 17살 때인데...
나는 그 때가 가장 기억에 남고, 시골교회가 여름
수련회를 가면 우린 나의 일이라 생각하고
방학때 몇일씩 교회에서 준비하느라 집에도
못가고 교회에서 잠을 자고, 교회를 나오지 않는 친구와
후배들을 수련회에 데리고 갔던 그 때 그 시절이
오늘 따라 마음을 사로잡는구나.
그 때 조성근 목사님, 김규오 목사님(너의 형님)
박봉규 목사님, 유순 선생님(이 분들은 당시
주일학교 선생님이셨는데 모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심)들의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을 늘 기억하고 있지.
세월이 흘렀어도 우리의 신앙이야기를
이렇게 글로나마 쓸수 있으니 나는 무척
행복하고 기쁘다. 너무 보고싶은 내 친구,
내 믿음의 친구 규진아! 이렇게 너를 생각하며
글을 쓸 수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좋다.
참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규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