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선(조선작) 줄거리
조선작의 '고압선'은 중곡동 구획정리지구 위에 드리워져 있다. 몇 만 볼트의 살인적인 전류가 흐른다는 그 고압선은 '고압선'의 화자인 '나'의 집 지붕 위를 지나 아차산 발 밑의 철탑 전주와 아차산 능선으로, 중랑천 제방의 철탑 전주와 중랑천 옆 배봉산으로 길게 내달리고 있다. 고압선은 아슬아슬하다. 그리고 그 고압선 아래에서, 화자와 화자의 가족은 불안하다.
화자는 심지어 꿈을 꾸기도 한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 그의 눈은 천장을 뚫고 지붕의 기와를 뚫고 올라가 뒤숭숭한 모습의 고압선을 바라본다. 급기야 그의 눈은 고압선을 타고 달려 아차산, 혹은 배봉산의 철탑 전주에 이르고, 다시 또 달려 변전소에, 그리고 발전소에 다다른다. 발전소엔 거대한 물이 낙하하는 소리, 발전기가 돌아가는 소리, 굵직굵직한 도선들이 윙윙거리는 소리, 변압기가 불붙어 타는 소리 등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는데, 뒤섞이다 뒤섞이다 그 소리들은 발전소의 울타리를 타넘는다. 그리고 마침내 아차산으로 배봉산으로 중랑천으로 흘러온 후, 화자의 귓속으로 화자의 머릿속으로 스며든다. 다음날 아침, 화자는 머리가 무겁다.
그러나 화자에게 대안은 없다. 주택은행 융자 구십만 원과 곁방의 전세금 사십만 원을 제하고 나면 그의 돈은 겨우 백 삼십만 원이다(주: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다). 작기도 작은 돈이지만, 그가 이 돈을 모으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 무려 십일 년이라고 한다. 그러니 아무리 따져보아도 화자와 화자의 가족이 고압선을 피해 집을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화자는 포기한다. 그리고 세뇌하듯 스스로에게 말한다. 머리 위에 고압선이 지난다고 불편할 건 없잖아. 고압선은 더구나 벼락까지 막아 준다는데. 혹시 알아, 고압선 밑에 사는 덕에 숙명적으로 맞아야할 벼락을 안 맞을 수 있을지. 허나 그 얼마 후, 숙명처럼, 감전사고가 일어난다.
핵심정리
갈래 : 단편 소설, 세태소설
배경 : 1970년대 서울의 중곡동 개발 지구
경향 : 현실 비판적
주제 : 고달프면서도 벗어나기 어려운, 도시 소시민의 삶의 비애. 집에 대한 소시민의 애착과 이를 짓밟는 세태 비판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이해와 감상
월급쟁이 생활 12년 만에 내 집을 마련하려는 가장이 있다. 그는 야박할 만큼 근검하게 살림해 온 아내와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다. 3개월 동안 서울 시내를 돌아다닌 끝에 적당한 집을 물색했다. 마련한 돈은 130만원이고 집 값은 260만원이다. 그러나 집이 90만원의 은행 융자를 끼고 있어, 방 두칸을 전세로 놓는다면 충분히 살 수 있다. 그러나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집 위로 지나가는 고압선이다. 복덕방 영감은 고압선과 함께 피뢰침이 있어 오히려 안전하다고 한다. 아내와 아이들도 흡족해 하고, 지금 있는 셋집이 나가 버려 도리 없이 그 집에 입주한다. 이듬해 봄 감전 사고가 발생했다. 동네 아이가 사층 건물 옥상에서 장대를 휘두르다 감전사한 것이다. 게다가 그 아이는 아들의 친구였다. 식구들의 성화에 결국 집을 내놓기로 작정하지만, 복덕방 영감이 이번에는 고압선 때문에 곤란할 것이라고 한다. 복덕방 영감의 뻔뻔스러움에 ‘나’는 화 낼 기력도 없이 우울해진다. 서울 생활을 하는 전형적인 소시민의 애환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아내’는 극도의 내핍 생활을 해 왔다. 아이들과 함께 목욕탕에 갈 때에도 ‘아내’는 비누를 가지고 가지 않는다. 목욕탕 구석에는 예외 없이 비누 조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아내의 생활에 맞추어 ‘나’도 ‘백조’를 피운다. 담배가게에서는 살 수 없고, 길거리 좌판 행상에서나 살 수 있는 담배이다. 이러한 생활 끝에 집을 장만할 수 있는 돈이 모이고, 집 마련에 나선 ‘나’와 아내는 집 마련에 나선다. 소시민의 생활의 디테일과 집 마련에 나선 그들의 기쁨에 대한 작가의 묘사는 핍진하다. 출근길의 남편을 배웅하며, 의기양양하게, 동네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큰 소리로 짐짓 집 살 동네를 남편에게 소리치는 주부의 모습, 자기가 돌아본 집의 구조와 위치를 서투른 솜씨로 그려 보이는 남편의 모습, 새로 마련한 집에서 마루에 나란히 배를 깔고 누워 숙제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 이 모두가 당대 소시민의 삶에 대한 전형적인 풍속도이다. 고압선 문제를 두고 뻔뻔스러울 만큼 태도를 달리하는 복덕방 영감의 모습은, 그 풍속도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이 소설에 단편 소설의 형식적 완결성을 부여하는 소설적 장치이다.
‘고압선’의 상징성 : 고압선은 감전의 위험이 있으므로 서민들의 삶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지만 서술자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여유가 없기 때문에 이 집을 샀다. 이러한 점은 서민이 도시 소시민의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고압선’이라는 위험한 시설물은 도시 소시민이 얼마나 위태롭게 살아가는가를 효과적으로 설명하면서 동시에 이러한 위험물이 족쇄마냥 그들의 삶을 얽매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