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2일, 2년 반 가량 삼무곡에서 배움을 구하던 시원이가 더 큰 배움터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학교 안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다양한 작품 활동들을 이제는 조금 더 본격적으로 경험하려 한답니다.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경험하는 세계를 만나고자 수료를 결정한 시원이는, 지난 6월 잠시동안 학교를 벗어나 바깥 생활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더 깊은 세계와 배움, 그리고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고민들을 진지하게 만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현곡은 수료식 시작에 앞서, 삼무곡에서 명상을 할 때마다 사용하는 종을 꺼내셨습니다.
매일 듣던 익숙한 종소리지만, 이제 바깥 생활을 하게 될 시원이는 앞으로 이 종소리를 쉽게 들을 수 없을테니까요.
"때때로 분주한 일상과 삶을 살다보면,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게 되고,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분주한 일상들을 보낼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때 불현듯 어느 사찰에선가 들려지는 저녁 종소리나, 성당의 종소리나, 아니면 어느 거리에 쇠붙이들이 부딪히면서 내는 그 작은 울림들이 시원이에게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기억나게 할 것입니다."
시원이는 한 글자 한 글자에 진심을 눌러담아 수료의 변을 읽었습니다.
자신이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이야기, 그것을 통해 온 마음으로 스승을 모시는 경험을 하게 된 이야기들을요.
'그렇게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의심을 할 때면 스승님은 더 큰 진심을 보여주시곤 했습니다.'
'저는 상사의 아재개그도 진심으로 웃겼던 알바이자 또다른 삼무곡을 떠났고,
앞서 제 가족이었던 삼무곡을 떠납니다.
저는 또 또 다른 삼무곡을 만나러 갑니다.
아니, 이젠 어딜가든 그냥 삼무곡이 보이기도 합니다.'
수료식 작품으로 ppt를 만든 시원이는
세 가지 목차를 나누어 친구, 사랑, 그리고 스승에 대한 자기 고백을 꺼내놓았습니다.
언젠가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그 전 과는 달리 어떤 '벽'을 세운 채 사람들을 대하게 되었다던 그는,
자신의 잣대로 사람을 나누는 기준을 세우거나, 그들과 자신 사이에 벽을 만드는 일을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아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새 정말로 그런 것들을 하지 않고도 존재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자신을 발견했고요.
시원이의 수료를 축하하려, 교사들을 대표해 바람길이 공연을 준비 했습니다.
짧은 축하의 말과 함께, 시원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인 라디오헤드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시원이가 학교를 나가서도 온전히 스승을 모시며 살 수 있기를 바라지만, 사실 깨지고, 부수어지는 것 마저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모든것을 부정하는것에서부터 진짜 긍정이 시작 되니까요.'
축하 공연 영상은 추후에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학생 대표로는 정민이와 가영이가 나섰습니다.
그간 학교에서 시원이가 만들었던 노래들로 이루어진 '시원 메들리' 또한 업로드 될 영상에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시원이의 노래 가사처럼, 완벽하고 네모난 자신이기를 바랬던 그는 이제 '내가 바라는 나' 를 천천히, 한 겹 한 겹 벗어내리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인정 받기 위해 가득히 쌓아올렸던 무언가들을,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렸습니다. 오롯이 스승의 품에 나를 내어맡길 수 있도록. 온전한 '나'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재학생의 축사는 해준이가 준비했습니다.
사실은 시원이와 가장 많이 부딪혔던 해준이였지만, 그 덕에 시원이도, 해준이도 서로를 통해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겠지요.
해준이는 시원이를 통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며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축사가 끝난 뒤엔 선물 증정식이 있었는데요,
학생 부회장인 현호가 나서 가방과 이름을 전달 해 주었습니다.
'시원이 형이 나가서 많은 일과 부딪히게 되겠지만,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그것들과 어울릴 수 있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부딪칠 突 물결 溭 함께 俱 를 써서 돌직구 라는 이름을 준비 했습니다.'
수료식을 위해 먼 길을 달려오신 시원이의 아버지께서는 시원이의 배움의 여정을 응원하셨습니다.
'우리는 커다란 기계의 부속품처럼, 이 커다란 세계에 자신을 끼워맞춰야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지 않으면, 사회의 '부속품'이 되어버리고 말죠.
저는 시원이가, 그리고 여러분들이 자신이 선택한 삶 속에서 많은 경험들을 하며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수료식의 막바지에는 시원이가 성인식을 할 때 까지 사용하게 될 이름을 받는 '새 이름 모시기' 시간이 있었습니다.
"시원이가 학교에서 '양치기 소년' 이라는 아이디를 사용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양 치는 사람,목자가 하는 일은 가장 앞에서 양들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물이 어디에 있는지, 풀이 어디에 있는지는 양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죠.
목자는 그저 맨 뒤에서 양들을 몰며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길을 이끄는건 목자가 아니라 양입니다."
"사실 무언가를 잘 해보겠다고 나서는 사람 중 정말로 잘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신의 의도가 앞서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지식, 노하우, 연륜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 양이 이끌어가는 길을 그저 따라가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는 무능한 상태,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니다 라는 온전한 자기 부정을 경험했을때,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하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스승의 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내려놓고 무능할 대로 무능해진 나를 보았을 때, 비로소 가짜가 아닌 진짜 내가 되는 것이지요. 시원이가 일찍 걸음을 내딛으며, 나름대로 처절히 무너지는 과정을 진심으로 겪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하려 애를 쓸 수록 처절히 무너지는 자신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그 무너짐, 그 절망의 끝에서 비로소 자기 안의 참 존재를 만나는 과정이 시원이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하려하면 경험하게 되는것은 처절한 자기좌절일것입니다.
나는 간데없고, 내 안에 계시는 참 존재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슨 일을 해도, 그 일이 다 신의 일이 될 것입니다. 어딜가도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나무 토막 하나가, 불 때는 사람에게 잡히면 화목이 되고 말지만, 목자가 양을 모는 막대기로 쓰면 이것은 양 치는 막대기가 됩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만이 존재합니다. 진짜 나로 사는 사람과, 가짜로 사는 사람. 진짜 나로 사는 사람은 눈치를 보지도, 경쟁을 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 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죠. 진짜로 사는 사람의 손에 시원이가 잡히게 된다면 시원이는 덩달아 진짜가 될것입니다. 시원이에게 나무 木, 막대기 梃. 나무 막대기 하나 라는 목정이라는 이름을 전합니다. 기왕이면 참 존재의 손에 붙잡혀진 막대기가 되길 바랍니다. 시원이가 참 존재를 만나는 것이 진짜 시원이가 되는 길임을 온전히 체험하길 바랍니다."
시원이의 수료식을 보면서, 저는 제가 성인식 과정에 있었던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나를 내려놓고 온전한 당신의 사람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선언, 내 안에 내가 많지 않아 당신의 작은 바람에도 춤을 출 수 있는 가벼운 사람이 되고싶다던 선언이 기억났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제가 그 선언들로부터 많이 멀어져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나는, 내 안에 자꾸만 무언가를 집어넣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나를 가득 채우려 애쓰고 있습니다.
뭐라도 채워넣지 않으면, 뭐라도 붙들고 있지 않으면 내가 사라져버릴까봐, 내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까봐요.
당신은 간데없고, 무거울대로 무거워진, 부풀대로 부풀어오른 나만이 존재합니다.
수료식을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전제부터가 틀렸다는것을요.
채워넣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라지지 않으려 버둥이는게 아니라 사라져야 하는 거였습니다.
내 안에 가득찬 나를 비워내야, 진짜 내가 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쓸리는 낙엽.
당신의 휘파람이나 한숨에도 괜찮다는 양 여리고도 짙게 움짓거리는 그런 낙엽이 되겠다는 시원이의 선언이 나를 깨우쳤습니다.
'가짜' 가 아닌 '진짜' 나로 사는게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시원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홀로 노를 젓게 되더라도, 엉금엉금 기어가더라도, 완벽하지 않은 둥그런 양일지라도,
꾸며낸 내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의 품에 안겨, 함께 춤을 출 수 있도록.
잠시 긴 시간의 떠남에 있어, 인사하겠습니다.
또 만나요. 안녕
첫댓글 안녕히, 그리고 어느날 안녕 하기.
그리고 언제랄 것 없이, 고마운
너 라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