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는 신체의 실재에 관해 말할 때와 같은 의미에서 영혼의 실재에 관해 말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다. 그래서 교사는 아무 도움없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 아이들 앞에 섭니다(7-14세 사이의 교육예술, 2022, 14)."
위 문장은 슈타이너 말년 1924년 8월 토키에서 영국 초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슈타이너가 한 말이다. 슈타이너는 이 강의를 마치고 한 달후인 9월 말경에 병상에 들어서 1925년 3월에 눈을 감았다. 따라서 슈타이너가 발도르프 학교(1919년)를 설립하고 5년이 경과한 후 이루어진 강의로 설립시 이론에서 그동안의 경험이 합쳐졌다고 볼수가 있다.
필자가 위 문장을 쓴 이유는, 읽는 순간 필자를 그 순간, 아이들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던 그 순간으로 바로 데려다 주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교대를 졸업하고 처음 아이들 앞에서 섰을 떄의 설레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 서있었던 모습이다. 그 당시 얼마나 참담했으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다. 분명 교대에서 배운대로 했는데, 아이들은 교사(필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떄부터 필자는 아이들을 하나 하나 관찰해서 적용을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온 것이다. 현장에 있는 내내 그렇게 했는데, 그 해명을 지금의 시대도 아닌, 100년 전 슈타이너로 부터 듣게 되니 참 삶이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 기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동안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아서 혼자서 고군분투했는데, 더불어 당시는 필자가 무엇을 모르는 지도 몰랐으므로 누구에게 묻지도 못했고, 또 어디에서도 필자와 같은 의문을 찾지 못했다.
그것은 인간 영혼에 관한 이야기, 인간 영혼이 어떻게 성장하고 발달하는지에 관한 설명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를 어디서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 참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하지만 당시, -지금도 다르지 않다- 에는 영혼에 대한 단어조차도 없었던 시대이므로 그랬을 것이다. 영혼이 성장, 발달하던 시기의 아이들에게 영혼을 빼고 온갖 처방을 다 했으니, 마치 환자가 어떤 병에 결렸는지 관계없이 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필자의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필자가 내린 처방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수업을 재미있게 하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내내 이렇게 해서 그나마 아이들을 가르칠 수는 있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는 알수가 없었다. 왜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지, 또 수업을 재미있게 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질문이다.
다음은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와 수업을 재미있게 해야 하는 이유를 영혼에 기반해서 설명할 것이다. 7-14세 사이 시기 아이들은 학교에서 초등교육을 받는다. 초등 교육 시기는 인간의 정신과학적인 요소 중 하나인 에테르체가 탄생해서 자유로와지는 시기이다. 따라서 이 시기 교육은 에테르체의 속성, 자유로와진 에테르체의 속성에 따라야 한다.
에테르체는 인간으로 하여금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힘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면 호흡과 맥박이 뛰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이 힘이 에테르체의 힘이다. 이 힘은 인간이 탄생할 때 우주 에테르로 부터 편취해 온다. 우주 에테르가 있느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명상, 코끝에 집중해서 호흡을 하면 호흡을 하는 힘에 연결이 된다. 이 힘이 에테르체이다. 그리고 나아가면 자신이 사라지고, 이 힘만 남아서 이 힘의 근원과 하나가 된다. 이 힘의 근원이 우주 에테르인 것이다. 우주 에테르와 하나가 되면 우주 에테르의 힘을 받는다. 이 힘이 삼라만상을 키우는 에너지이다.
그렇다면 삼라만상을 키우는 이 힘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에테르체는 식물, 동물, 인간이 함께 공유한다. 길가에 난 풀이라도 이 힘에 의해서 생명이 유지돤다. 이 힘은 큰 나무에게도 아주 작은 풀에게도 똑 같다. 이를 달리 말하면 '어떤 사항'도 가리지 않고 제공되는 에너지, '사랑'이다. 물질세계에서의 사랑과는 다른 사랑, 무의식 세계에서의 사랑이다. 따라서 이 시기 에테르체를 활성화시키려면, 이런 사랑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식물, 동물과도 이 시기 아이들과 같은 에너지를 공유하므로, 이는 아이들이 동물, 식물에게서도 자신의 에테르체와 같은 에너지를 느낀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 시기 아이들이 식물, 동물에게도 이런 사랑을 저절로 주는 것이다. 나아가 광물도 같은 존재로, 에테르를 자신과 공유하기 떄문에 같은 사랑을 준다. 그래야 에테르체가 성장하는 시기 아이들의 에테르체가 올바르게 성장, 발달하는 것이다.
이 시기 아이들은 이런 사랑을 당연히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에테르체가 자유로와지는 시기이므로 에테르체가 전면에 나와 있기 떄문이다. 따라서 에테르체의 속성대로 아이들은 그 시선으로 사물을 보기 떄문에, 에테르체가 그런 사랑을 가진 존재이기 떄문에 자신도 그런 사랑을 하고, 또 그런 사랑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시기 이런 사랑을 받지 못하면, 아이들의 내부는 혼란스러워진다. 즉 내부에서 요구하는 '사랑'과 다른 환경이 주어지면, 아이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어, 이게 아닌데', '이것이 뭘까'하면서 그리고는 내부를 봉쇄하거나 즉 믿지 않거나 결과는 내부와 괴리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에테르체는 성장, 발달하기가 어려워질 것이고, 후일 성장한 인간이 자신의 에테르체를 활용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비약하면 현재 모든 문제가 여기에서, 에테르체가 온전하게 성장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두 번째, 에테르체의 속성이다. 식물을 가만히 보면, 여기에서 식물을 보는 이유는 동물은 에테르체뿐만 아니라 아스트랄체도 지닌다. 즉 식물만이 인간과 같이 에테르체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식물은 자라는데 누구도 괴롭히지 않고, 그 가운데서도 자신만의 삶을 산다. 그 삶이 아주 자유롭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할 일을 다한다. 예컨대 싹을 튀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다. 아주 열정적이라고 볼수도 있고, 또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 요컨대 에테르체의 속성에 따른 삶이란 다른 사람을 간섭하지 않지만, 자유롭게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이때 에테르체의 에너지를 온전히 받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자신의 에테르체의 에너지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시기 아이들의 에테르체가 온전하게 발달했다면, 이런 삶을 살 것이다. 현재 만약 자신의 삶이 이렇지 않다면, 자신의 에테르체가 손상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을 듯하다.
다음은 재미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영혼의 속성으로 영혼은 재미있어야 그 상황에 몰입하기 때문이다. 몰입이란 자신의 자아, '나'가 상을 벗는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조건으로 몰입을 해야 자아가 상을 벗고 전면에 나선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할때 힘들고 짜증이 나면, 그 일을 점점 더 하기 싫어진다. 이 하기 싫어하는 감정이 영혼(아스트랄체)이다. 영혼이 하기 싫어하면 영혼은 그 일에 몰입을 하지 못하고, 결과는 자아가 나서지 않으므로 어떤 결과도 도출되지 않는 것이다. 반면 그 일이 하기 싫더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 생각이 아니라 마음이다. 을 가지면 마음은 무의식에 내재하는 자아와 연결이 되어있으므로, 즉 자아가 전면에 나서므로 일에 능률이 오른다.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생각과 마음의 차이 때문이다. 생각은 자아가 상속에서 하는 것이고, 마음은 무의식에 연결되어 있기 떄문이다. 이 차이를 뇌가 인지하기 때문에, 뇌를 속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 예를 들어서 죽고싶다는 생각을 할 경우 생각이라면 자아에 연결이 되지 않는다. 반면 이것이 마음에서 일어나면 자아에 연결되므로 뇌가 받아들인다. 뇌가 받아들이면 자아와 연결되기 때문에 실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눈을 뜨는 순간 상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생각이 마음으로 연결되기는 쉽지가 않다. 이렇게 뇌가 받아들이도록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면, 그 일은 실현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 시기 7-14세 사이 중에서 9세무렵이 되면 아이들은 자신의 내부와 외부를 구별하기 시작한다. 이 말은 그 전시기에는 확실하게 구별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이다.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신의 자아가 상속에 있지만, 현실에서 조금은 자아와 연결이 되어있다는 말이다. 즉 이 시기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내용은 자아에 연결이 된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시기 아이들이 감동받은 내용은 아이 평생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만약 이 시기 아이가 재미있어 한다면, 아이의 자아는 그 일에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평생 높다. 하지만 현재 아이들은 이 시기에 학습에 대하여 하기 싫다는 감정을 대부분 지니므로 이 시기 아이들이 재미있다는 감정을 지니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관점에서 아이들이 만약 재미없어 한다면 그 학습은 그만 두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이를 누구나 지식으로는 말할 수가 있지만, 실제 아이들은 교사의 언어를 받아들이지 않고 교사의 내면을 받아들이므로 쉽지 않다. 왜냐하면 교사가 정말 아이들을 사랑해야 하고, 불가능하지만 무의식에서의 사랑이다. 또 교사의 의 에테르체가 그런 속성을 지녔는지를 받아들이기 떄문이다. 정신이 전달될려면 그런 정신을 내가 지녀야 한다. 그러므로 나의 정신을 스스로 성찰해서 그런 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요컨대 이 시기 받은 교육이 평생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 9, 10세에 바로 이 나이에 선하고 훌륭한 인간에 대한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되는게 인간 본질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인생을 인도해야 할 내적 확신이 모두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맙니다(위 책, 72)." 만약 내가 살다가 다른 사람들로 부터 어려움을 겪을 떄 그 사람에 대한 판단이 여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도 있고, 다른 생각도 가능하다. 그랬을 때 어떤 경우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까를 생각해 보면, 자신의 행동에 앞서서 이루어지는 판단이 여기에서 비롯되므로, 이 시기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이런 사실이 무의식에서 형성되므로 현실에서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이 시기 교육에 우리 모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