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영혜는 일반적인 견지에서 보면 이상한 인물이다. 어떤 전조도 없이 채식주의자를 선언하고 고기와 생선은 물론 유제품과 달걀까지 모두 결별을 선언한다. 단지 꿈, 그 꿈 때문이란다. 영혜를 괴롭히는 그 꿈은 시뻘건 고기가 주렁주렁 매달린 곳에서 입에 피칠갑을 한 채로 육식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왜 그런 꿈을 꾸고 채식을 선택하고, 종국에는 식물이 되려 하는 가?
이 책은 이제는 너무나 흔하고 당연해서 애써 외면한 세상의 폭력성과 식물의 상태로 저항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소설은 영혜를 대상화하는 형태의 서술 방식을 통해 이기적이고, 동물적인 주변인들을 묘사한다. 그녀는 튀는 것을 원치 않는 남편의 적당한 취향에 맞춰진 여자였고, 동시에 폭압적인 아버지에 의해 만들어진 맏딸이었다.
“아내가 채식을 하기 전까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중략)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먹어라. 애비 말 듣고 먹어. 다 널위해서 하는 말이다.”
남편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위선과 위악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오로지 만만해서 아내를 택했고 끝임 없이 위계를 나누며 영혜를 무시한다. 아버지는 또 어떤가 딸이 보는 앞에서 개를 죽이고 그 개를 먹게 한다. 이것이 우리가 보아 왔고 느꼈던, 보통이라는 일상의 실체였다. 끝없이 남을 짓밟고 생명을 죽여가며 그 고기를 취했던 동물의 세계에서 영혜는 꿈속에서 자신이 죽여서 먹었던 생명들과 마주했던 것이다. 그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저항하려던 영혜의 선택은 식물적 비폭력이었다.
<몽고반점>
영혜는 옷을 벗는다. 그건 짐승으로 살아온 자신의 거피를 거부하는 행위이자, 나무가 되고자 하는 결심의 발로다. 영혜의 탈의는 비폭력적 존재로의 재탄생이자, 옷을 입지 않은 태초로 돌아가는 행위이다. 영혜는 식물이 됨으로써 누구에게도 위해를 가하지 않는 상태가 되려 한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그리고 이런 영혜의 순수로 회고하고자 하는 마음을 예술의 영역으로 해석하는 이는 형부였다. 그녀의 몽고반점, 푸르른 그 흔적에서 동물이 아닌 식물성을 느낀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그는 일상이 가진 포악함으로부터 벗어는 새의 이미지를 작업에 사용한다. 그런 그에게 영혜의 식물성이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평소에 쓰지 않는 원색의 강렬한 색채로 영혜의 몸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 몽고반점 위에 피어난 꽃은 영혜를 완전한 식물로, 형부에겐 예술적 해방이 된다.
<나무 불꽃>
로션을 사러 온 초췌한 남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안쓰러운 동생에게 헌신적인 인혜는 한강의 작품들을 경유하는 주인공들처럼 보인다. 욕망은 어떤 형태로든 인물들의 원하는 바를 이룬다. 그녀의 남편은 완성된 예술을 추구하고, 영혜는 결국 물 만을 갈구하며 광합성을 하는 나무가 되려 한다. 그들의 갈급한 욕망을 온전히 받아내는 건 인혜였다. 영혜와 반대편에 있는 인물이자, 더 나아가고 싶어도 남겨진 아이와 아픈 동생을 위해 삶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서술자이자, 동시에 현재를 견디는 존재다.
결국 이 소설은 영혜로부터 시작해 인혜가 살아남아 이 무거운 짐을 감당하느냐는 거대한 존재론적 질문인 것이다.
<현실로 돌아오는 플롯>
채식주의자에서 영혜에 관한 오해로 시작된 이야기는 몽고반점으로 가서 하나의 꿈이 된다. 오해와 망상을 넘나들며 헤매이던 이야기는 나무 불꽃에 와서 다시 현실을 견딘다. 영혜와 인혜는 동전의 양면같은 존재였다. 두 여성에게 주어진 현실은 부당하고 가혹했으나 소리치는 영혜와 감내하는 인혜를 통해 세상을 익숙한 세상을 낯설게 보도록 한다. 세상은 아픔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이토록 아름다운 이유는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고 타인의 아픔을 껴안으려는 어둠속에 더듬 거림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첫댓글 오~!!!!
영화리뷰가 아닌데도 어렴풋 이미지로 그려지네요~
오래전 생각보다 술술 읽혀졌던 그 때의 감정을 되살려주신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전 몽고반점 챕터가 기억에 마니 남네요~^^
돌아오고 싶다면 당근을 남겨줘요 ㅎㅎ 애프터 다크 믿고 빌렸는데 사라지시고 막.
나도 재밌게 봤음
돌아와 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