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간지 게재 시
빈 화분 / 김정환 / 조선일보
빈 화분 / 김정환
빈 화분이 이미 빈 화분 아니고 비로소 집이다,
식물의, 식물적인 기억의.
바라봄 없는 바라봄의 원형이 있다.
무엇이 원(圓)이고 어디가 원(原)?
질문도 그렇게 시끄러운 운명이 없고
운명도 그렇게 시끄러운 무늬가 없다.
도란도란이 두런두런으로 넘어가는 원형이다,
신대륙의. 공간이 죽음을
품기 위하여 펼쳐지려는 노력이었군.
시간이 저 혼자 간절하게 이어졌어.
그런 수긍도 이제 둘 다 먼저 그러지 않고
너무 많은 시간과 공간의
낭비도 고요한
신대륙이다, 빈 화분.
―김정환(1954~ )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일러스트
가을이고 저녁일 때 내놓아진 '빈 화분' 같은 것을 보게 된다면 그날 저녁은 하는 수 없이 철학자, 물리학자, 탐험가가 되어봅니다. 한때는 틀림없이 예쁜 꽃나무(혹은 식물)가 자랐을 화분입니다만 그것이 죽어 버려지자 '화분'에서 놓여나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봄꽃들이 '도란도란' 살던 화분에 이제 가을 이후의 죽음이 '두런두런' 빠져나갔습니다. 빈 눈동자
처럼 '시끄러운 운명의 무늬'가 되어 둥그렇게[圓] 앉아 있습니다. '빈 화분'도 곧 소멸할 것입니다만 '시간'만이 간절하게 그것을 통과해 이어질 것을 봅니다. 그 시간의 하구에 다시 쌓일 '신대륙'의 연원(淵源) 또한 '빈 화분'임을 시의 직관은 더듬어 갑니다. 스타카토로 이어지는 문장 사이사이의 관절에 '철심(哲心)'을 심어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