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의 안식년(연구년) in 1992-3
나의 전공은 실천신학(Practical Theology)이다. 이 학문은 범위가 넓다. 설교학, 목회학, 상담학, 교육학,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사역들이 다 실천신학에 포함된다. 더 세분화 하면
교회개척론, 사회문제참여, 크리스천 비지네스, 구제와 섬김, 사회사업, 교회건축등이 다 여기에 포함된다. 그래서 이 가운데 한 두가지를 가지고 전공을 하게 된다. 나는 설교학과 예배학을 전공했고, 전공외로 교의학분야로 칼빈주의를 공부했다. 그러기에 나는 이 학문을 하면서 교회와 직간접관련된 일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기에 나는 교수를 하면서도 교회사역을 놓아본 적이 별로 없다. 미국 유학 시절에도 두 교회를 섬겼고 안식년을 갔을 때에도 나는 주일마다 교회에서 설교를 했고 목회를 했다.
안식년을 보내면서 나성빌립보 교회 설교목사로 섬기면서 나는 참 많은 분들과 교제했다. 작은 교회였지만 나는 내 평생 처음으로 우리 가족(아내와 두아이)이 함께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교회여서 추억이 남다르다. 그때 교우중에 어느 여성도가 암으로 투병하시던 분이 계셨다. 그분은 늘 웃음을 잊지 않으신 분이다. 자녀도 없는 이 부부는 주일마다 반찬을 해오셨고 항암을 하실 때인데도 여전히 교회에 오시면 웃음으로 나와 우리 교우들을 대해주셨다. 33년전의 일이다. 우리는 예배가 끝나면 친교 시간에 서로 만나 얼싸안고 한 주간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최소한 매 주일 반찬이 5가지가 넘는 그야말로 매주일 잔치였다. 그 때 교우들이 130-150명이 출석할 때이다. 뉴욕제과 사장인 안수집사님은 매주일 대형 사각형 케잌을 준비해 오셨고 주일 예배가 기다려지는 날들이었다.
어느 날 그 여성도가 머리를 짧게 깎고 오셨다. 자꾸 머리카락이 빠져서 깎으셨다고 했다. “목사님, 씩씩해지려고요!” 그분은 유방암이었다. 남편은 집수리 기술자로 부유한 삶은 아니었다. 당시 나이를 보면 나보다 15살은 더 많은 분들이었다. 당시 내 나이가 40이었으니 50대 중반이었을 것이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엔 확신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듯 보였다. 착하고 착한 집사님, 언제나 변함없는 얼굴, 그리고 무엇이든 조용히 교회를 섬기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서울에 돌아온 이후 들은 이야기인데 많이 힘들다는 소식이었다. 주변에 암 투병 소식을 들을 때마다 생각이 많아진다. 속이 상한다. 화도 난다. 왜 그런 일들이 평범하게, 신실하게 착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지. 인생의 삶을 밝게 해주는 철학이나 수 없는 신학서적과 저술이 나왔어도 그리고 심지어 고도(高度)의 신학조차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저 슬퍼하고 애통할 뿐이다. 애통도 기도가 아니겠는가?
나의 목회 스승이셨던 박기풍목사님도 폐암으로 삶의 시간을 초월하지 못했다. 어느 날 요양하시면서 지내는 곳을 찾아가서 뵙고 얼굴을 보시더니 내 손을 만지면서 식사하러 나가기 어려우니 배달을 시키라고 하시고는 국그릇에 있는 고기 한 점 더 내 국그릇에 넣어주셨다. 사랑이 확 느껴진 순간이었다. 고기 한 점에.... 그리고 그 해 무더운 여름, 스승님은 하나님 나라로 가셨다. 나도 무력한 존재라는 것을 깊이 깨닫는다. 내 주위에 왜 이리 암 투병하는 분들이 많은지. 오늘 새벽에는 미국에 계신 나의 사돈(딸 혜진의 시아버지)께서 폐렴으로 입원하시더니 불과 4일만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갑작스런 소식에 먼 미국에 가기도 쉽지 않고... 산다는 게 뭔지, 헷갈린다.
나이를 들면 들수록 부질없는 일에 목숨 걸듯이 말하고 다투고 미워하고 싸웠던 젊은 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살면서 제일 중한 것이 있다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인 듯하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진정성 있게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나눌 것이 있으면 정성을 다해 나누어야 한다. 한때 서운한 감정이나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하던 사람도 세월이 지나면 풀어지고(믿는 자는 반드시 풀어지고 품고 만나고 화해하고 새로운 관계 모도) 모든 사람을 사랑하되, “지구에 유일하게 남은 사람처럼 각 사람을 사랑하라”는 누군가의 말(아마도 어거스틴)이 눈앞에 자꾸 어른거린다. 그 아픔이 어떠한 아픔이든 상관없이 그 아픈 사람과 함께 아파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은 아마 하늘이 내린 최고의 선물이 아닌가 한다. 내일 토요일 새벽예배와 주일예배를 준비하고 기다리며 목양실에 홀로 앉아 주변에 아픈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한다. 내일 새벽에 그런 기도를 해야겠다.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낸 슬픈이들을 위해, 그리고 투병하는 성도들과 친지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