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241) 시각적 이미지의 이모저모 - ④ 비유적 이미지와 묘사적 이미지/ 시인 이형기
시각적 이미지의 이모저모
티스토리 http://fran8813.tistory.com/466/ 시각적으로 명확히 드러난다
④ 비유적 이미지와 묘사적 이미지
그러나 이 시 〈피의 사냥개〉는 여태까지 우리가 언급하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사냥개의 이미지가 제 자신을 보여주기만 하고 해석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독자도 그렇게 해석하기를 요구하는 어떤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의미란 앞에서 말한 대로 화자의 생명의 수호자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처음부터 어떤 의미를 등에 지고 나온 이미지를 ‘비유적 이미지’라고 하고,
해석은 독자에게 맡긴 채 그 자체를 보여주기만 하는 이미지는 ‘묘사적 이미지’라고 한다.
당신의 불꽃 속으로
나의 눈송이가
뛰어듭니다.
당신의 불꽃은
나의 눈송이를
자취도 없이 품어줍니다.
―김현승, 〈절대신앙〉 전문
이 시에는 보시다시피 ‘불꽃’과 ‘눈송이’란 두 개의 시각적 이미지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냥 불꽃, 그냥 눈송이가 아니다.
〈절대신앙〉이란 제목을 통해 쉽게 유추할 수 있듯이,
‘불꽃’은 신앙의 대상인 절대자의 비유이고,
‘눈송이’는 화자 자신의 비유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시를 읽을 때는 먼저 ‘불꽃’과 ‘눈송이’란 이미지가 갖는 비유적 의미부터 이해해야 한다.
그러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만 우리는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절대신앙〉의 내용에 보다 깊이 있게 접근할 수 있다.
시인은 눈송이처럼 불꽃 같은 절대자의 속에 떨어져 자취 없이 사라져도 후회는커녕
오히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자신,
그리고 또 자신의 사라짐이 절대자의 품에 안겨 구원받음을 뜻하는 신앙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절대신앙의 세계도 산문으로 설명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불꽃’과 ‘눈송이’라는 두 개의 이미지를 통해 독자들이 스스로 유추할 수 있게
암시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비유적 이미지라고 하더라도 설명적 태도는 역시 금물이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 〈깃발〉 전문
유치환의 시 〈깃발〉의 중심 이미지는 제목에 나와 있고, 그것은 시각적 대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깃발 이미지는 시의 본문에 밝혀져 있는 그대로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나타낸다.
그러니까 이것이 저것을 의미하는 비유적 의미인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깃발’과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이 그런 등식 관계를 이루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나 ‘백로처럼 날개를 펴는 애수’ 등
다른 이미지를 동원해서 그것이 그렇게 되는 이유를 스스로 유추하게 한다.
< ‘누구나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이형기 시인의 시쓰기 강의(이형기, 문학사상, 2020)’에서 옮겨 적음. (2021. 5.15.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241) 시각적 이미지의 이모저모 - ④ 비유적 이미지와 묘사적 이미지/ 시인 이형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