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KBS 1TV의 주말 사극 <정도전>이 인기를 누리며 방영되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정통 사극이란 평가도 받고 있다. 주요 배역을 중량감 있는 탤런트들이 맡아서 열연하고 있고, 제작비도 많이 투입된 모습이다.
3월 중순 현재 진행되는 내용은 이성계(李成桂)의 위화도회군 전, 우왕(禑王) 때의 이야기이다. 우왕 즉위에 일등공신인 수구파 거두 이인임(李仁任)이 정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최영(崔瑩)도 아직까지는 그 아래에 있고, 이성계도 자기 세력을 든든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다. 극의 주인공인 정도전(鄭道傳)도 권력 핵심부에 근접하지 못한 채 변두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최영과 이성계가 합세하여 이인임, 염흥방, 임견미 등 부패 수구세력을 제거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스토리의 중요한 전개 내용은 <고려사>나 <태조실록> 등 사서에 기록된 바와 큰 차이가 없을 것이고, 사극이니만큼 세부 사항만 다를 것이다. 그런데 이 사극을 보다가 한 가지 상식에 어긋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정몽주(鄭夢周)와 정도전의 관계다. 간단히 말하자면 정도전이 정몽주에게 반말을 한다는 점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설정이다. 아무리 정도전을 재조명하는 사극으로서 정도전이 주인공이고 정몽주는 조연이라고 해도 상식적 사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정몽주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역사소설을 썼기에 이 사극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필자는 이런 점을 보고 놀랐다. 한심한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둘 다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적 성리학적 이념에 충실한 유학자였다. 그런 정도전이 다섯 살이나 많고 과거에도 먼저 급제한 정몽주에게 반말을 해? 게다가 극을 보니 아예 정몽주를 동년배나 하수 대하듯 하지 않는가!
정몽주는 정도전보다 다섯 살이나 많고, 또 과거도 2년 앞서 급제하여 벼슬길에도 먼저 나아갔다. 출신성분도 두 사람은 다르다. 정몽주가 명문가에서 태어난 반면 정도전은 어머니가 당시로서는 천한 서녀였다. 정도전 자신도 서녀에게 장가들었다. 고려시대는 조선시대와 달리 서얼(庶孼)의 과거 응시를 막는 법은 없었으나 그래도 출세에는 지장이 있었다.
정몽주가 성균관 박사로 임명되었을 때 성균관 대사성(大司成)이 바로 목은(牧隱) 이색(李穡)이었다. 이색은 정몽주보다 아홉 살이 위였고, 정몽주의 부친 정운관과는 친근한 사이였다. 그는 당시 판개성부사로 있으면서도 전란으로 피폐한 성균관의 재건을 위해 대사성 직을 겸임했던 것이다. 이색은 공민왕에게 이렇게 건의했다.
“폐하. 그동안 홍건적의 난리로 인하여 모든 교육기관이 피폐해졌사옵니다. 우선 성균관부터 시급히 정비하여 제대로 된 교육기관으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주소서.”
“경의 말이 옳도다. 그렇게 하라.”
이색과 정몽주 등의 노력으로 성균관은 재정비되어 교육기관으로서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정몽주가 성균관 박사로 재직하며 유교의 경전을 강의하자 이색은 찬탄을 금치 못했다.
“정몽주의 논리는 종으로 설명하거나 횡으로 설명하거나 이치에 합당하지 않는 것이 없도다! 마땅히 정몽주를 우리 고려 이학(理學)의 조종(祖宗)으로 받들어 모셔도 족하리라!”
또 이렇게 칭송하기도 했다.
“정몽주의 경전 강의는 주자학에 조예가 깊어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탁월한 데가 있다. 그의 설득력도 남들보다 한결 뛰어나도다!”
그때 이색의 휘하에서 정몽주와 더불어 성균관을 이끌어가던 학관(學官)으로 김구용 ․ 박상충 ․ 박의중 ․ 이숭인 ․ 정도전 등이 있었다.
정도전은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개경에 올라왔다. 아버지는 예전에 안동향교에서 이색의 아버지 이곡(李穀)과 함께 공부한 인연이 있었다. 그런 인연에 따라 정도전은 이색의 문하에서 이숭인· 이존오· 김구용· 김제안· 박의중· 윤소종 등과 함께 유학을 배웠다.
사람들은 흔히 정몽주와 정도전이 모두 목은 이색의 제자로 잘못 알고 있지만 정몽주는 독학으로 대성한 천재였지 이색의 제자는 아니었다. 반면 정도전은 정식으로 이색의 제자였지만 나중에 스승을 배반하고 나라에 반역하여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이 된 것이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여러 가지로 뜻이 잘 통했으나 나중에 정도전이 조준 ․ 윤소종 등과 더불어 이성계의 심복이 되어 조선왕조의 개국공신이 되고, 정몽주는 고려조의 충신이 되어 서로가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정몽주와 정도전이 뒷날 목은 이색의 거취를 두고 조정에서 크게 다투고 결별할 때까지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절친한 사이였다. 또 정치적 입장도 같았다. 개국 초부터 쌓여온 불교의 폐습을 신학문인 유교를 통해 개선하려는 것도 그렇고, 망해가는 원나라를 멀리하고 새로 일어선 명나라와 관계개선을 도모하려는 것도 두 사람은 성향이 같았다.
그래서 이인임의 미움을 받아 귀양도 같이 갔었고, 정몽주는 정도전을 위해 <맹자(孟子)>를 읽어보라고 보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절친한 사이라고 해서 정도전이 정몽주에게 반말을 했다고 그리는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비록 정도전이 이 사극의 주인공이라서 그를 띄우려고 그렇게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일반적인 상식과 순리에 어긋나는 묘사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 아무리 정도전이 주인공이고 정몽주가 조연이라고 해도 두 사람의 관계를 동년배는커녕 아예 정몽주를 후배나 수하처럼 그려놓았으니 이런 망발도 없다.
두 사람이 한두 살 차이도 아니고 무려 다섯 살이나 차이가 났다. 이를테면 정몽주가 고등학교 3학년이라면 정도전은 중학교 1학년, 정몽주가 대학교 3학년이라면 정도전은 고등학교 1학년, 정몽주가 대령이라면 정도전은 소위인 셈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동년배처럼 터놓고 지냈다고?
이것이 지엽적인 문제로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두 사람의 관계, 정몽주의 역사적 비중을 볼 때 그렇게 비상식적으로 그려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 또한 한심하기 그지없는 역사왜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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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몽주와 정도전에 대한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주시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졸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정도전이 나이도 많고 관직에서의 선배뻘이 될 정몽주에게 반말을 했다는 건 분명 어색하게 보일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1년 단위로 선후배/형-동생의 엄격한 관계를 설정하는 건 오늘날의 풍습에 가깝고, 오히려 예전에는 약간의 나이차이가 나도 친구로 지내는 일은 왕왕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가장 친한 친구로 유명한 '오성과 한음'의 경우에도 나이는 5살 차이가 납니다. 오성(이항복)이 한음(이덕형)보다 5살 많았지요. 이처럼 나이가 차이난다고 무조건 '형-아우'로 사귀는 것이 아니라 친구로도 사귈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정도전과 정몽주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이에 대해서는 조선왕조실록의 정도전 졸기(태조 7년 8월 26일 2번째 기사)에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에 도전이 한산(韓山) 이색(李穡)을 스승으로 섬기고 오천(烏川) 정몽주(鄭夢周)와 성산(星山) 이숭인(李崇仁)과 친구가 되어 친밀한 우정이 실제로 깊었는데, 후에 조준(趙浚)과 교제하고자 하여 세 사람을 참소하고 헐뜯어 원수가 되었다"(初道傳師事韓山李穡, 與烏川鄭夢周、星山李崇仁爲友, 情好實深。 後欲納交趙浚, 讒毁三人, 以成仇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