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올림픽의 아쉬운 은메달에도 불구하고 김연아 선수의 감동은 금빛으로 빛난다. 나는 그 놀라운 회전 점프를 보면서 항상 궁금했다. 어떻게 저렇게 돌고도 어지럽지 않을까? 선수들은 원래 저런 몸일까? 그러나 아니었다. 그것은 지독한 훈련 덕분이었다. 피겨선수들은 어려서부터 하도 열심히 훈련을 하다보니 회전에 대한 몸의 어지러움이 둔해진다고 한다. ‘그랬구나. 회전을 잘할 수 있는 몸이라서 회전을 잘하는 게 아니라, 회전을 잘하고 싶은 그 욕망이 회전을 잘할 수 있는 몸을 만들었구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또 어떠한가? 그들의 허벅지는 놀라움 그 자체이다. 이번에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도 정말 엄청나다. 그들은 원래 그렇게 뛰어난 허벅지였을까? 그래서 빠르게 달릴 수 있을까? 아니다. 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굵은 허벅지라서 빨리 달릴 수 있는 게 아니라, 빨리 달리고 싶은 욕망이 그런 허벅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언젠가 TV 다큐에서 마라톤 선수들에 관한 내용을 보았다.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아프리카 선수들, 그들이 어떻게 빨리 달릴 수 있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이었는데 신체조건을 검사하던 미국 박사가 깜짝 놀랐다. 그들의 심장 크기가 엄청났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보다 거의 절반 정도는 더 컸다. 그리고 심폐기능도 대단하고, 적혈구 크기는 작아서 혈액 흐름이 무척 원활할 수 있었다. 그들은 원래 그런 몸으로 태어났을까? 아니다. 그 또한 엄청난 훈련의 결과였다. 오직 마라톤만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간절한 일념으로, 고산지대와 맨발이라는 척박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달리고 또 달리는 선수들.. 빨리 달리고 싶다는 욕망이 그런 몸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특별한 신체구조라서 잘 달리는 게 아니라 잘 달리고 싶다는 욕망이 특별한 신체구조를 만든다. 이것은 마치 빠른 자동차가 있어서 빠른 이동을 하는 게 아니라, 빠른 이동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빠른 자동차를 만든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말이 잘 달리는 것은 말발굽과 힘찬 근육이 있어서 잘 달리는가? 아니면 잘 달리고 싶다는 욕망이 발모양과 근육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눈이 있어서 세상을 보는가? 아니면 세상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눈을 만들었을까? 분명히 후자일 것이다. 수행을 오래한 사람은 뇌구조도 바뀐다고 한다. 뇌구조가 그래서 수행을 잘 하는 게 아니라 수행을 잘 하다보니 뇌구조가 그렇게 바뀌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내 몸은 내 마음이 만든 것이고, 우주는 우주의 마음이 만든 것이 아닐까? 이 또한 '일체유심조'가 아닐까? 그리고 마음이 물질적인 것에만 영향을 줄까? 아니면 상호관계 즉 인연에도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나'의 일부분인 뇌의 정신작용이 나를 이루고 있는 것 즉 몸을 변화시키고 만들어가듯, 세상의 일부분인 '나'의 정신작용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들을 변화시키고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우리는 그것을 '인연'이라 부른다. 세상의 모든 물질과 모든 일은 인연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그에 걸맞은 인연이 다가온다는 말이 결코 허황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을 기도 가피의 원리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것을 'The Secret'의 핵심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전세계를 강타했던 '끌어당김의 법칙'.. 결국은 우리 불교의 가르침 일체유심조가 아니겠는가? 달라이라마 존자께 누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사홍서원처럼 일체중생을 다 제도할 수 있겠습니까?” 존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런 원(願)으로 마음을 꽉 채우면, 길은 저절로 열릴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무엇을 원하고 있나?’ 진지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 마음이 인연을 불러 내 인생을 만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한 마음이 이렇게 중요하고 엄중함을 알아야 한다. 내 인생의 즐거움과 괴로움은 물론, 길흉화복의 인연들이 모두 다 내 마음으로부터 비롯되고 만들어져 가고 있음을 안다면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수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