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246) 언어의 배열 - ② 주제의 변주/ 문학박사 전기철
언어의 배열
Daum카페 http://cafe.daum.net/bschildlove/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변주가 존 버닝햄
② 주제의 변주
시의 배열 방식으로 먼저 주제의 반복에 의한 변주가 있다.
우리는 시를 쓸 때 하나의 주제, 즉 모티프에서 출발한다.
하나의 주제는 변형을 통해서 발전한다.
하나의 주제에 약간의 변형만 가하여 반복적으로 배열했을 때 본래의 주제는 변형, 발전해간다.
이것이 패턴이다.
우리 얼굴이라고 했을 때 왜 꼭 사람의 얼굴만을 생각하는가?
사람에게 얼굴이 있다면 다른 모든 것들에도 얼굴이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가?
사람에게 사랑이 있다면 다른 동물이나 사물, 자연이나 관념에는 사랑이 없을까?
적어도 예술뿐만 아니라 수학에서도 이러한 동일성의 인식에 따른 패턴으로 발전해가면서
새로운 수식(數式)이 만들어진다.
실수에서 무리수를 만들어내고, 다시 허수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그것이다. 소리를 귀로만 들을 수 있는가?
입을 가진 것만이 소리를 내는가? 모든 입들은 소리를 낸다.
마찬가지로 모든 귀는 입을 기억한다.
하나의 소리를 다른 위치에 놓으면 그 소리는 변한다.
이것이 변주이다.
소리와 소리를 합성하고, 분절해놓으면 소리에 변화가 일어난다.
변주는 하나의 멜로디나 화성을 다음 소절에서 부분적으로 다른 멜로디나 화성으로 바꿔서 표현하는
배열 방법이다.
음악에는 변주곡이 많다.
브람스의 〈파가니니를 주제로 한 변주곡〉이라든가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 등
음악에서는 기존의 작품에 리듬이나 조성을 달리해 창작한 변주곡이 많다.
이는 그림에서도 나타난다.
밀레와 고흐, 모네와 피카소는 유사 배경의 다른 경향으로 그린 변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크느그와레예의 〈움직이는 선〉이라는 그림은 하나의 그림에 다른 그림을 갖다 붙임으로써
선이 움직이는 것 같은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또한 하나의 화폭 안에서 형상과 선, 면, 색에 변주를 주면 주제는 달라지고 풍성해진다.
하나의 감각이나 모티프는 다른 모든 것들에도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현상은 보편화시킬 수도 있고, 불가능하다고 인식되는 양식에 적용할 수도 있다.
이는 상상력을 통해 주제를 발전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A에서 시작한 모티프는 A→A’→A”→BA→BA’C로 변주,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이러한 변주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유사와 차이는 시행의 발전적 배열에 중요한 요인이다.
헬렌 켈러는 보고 듣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말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나 개인교사였던 설리번은 그 헬렌 켈러에게 만지고 맛보게 하여 그 감촉과 냄새, 맛을 느끼도록 했다.
그런 다음 설리번은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글씨를 써주었다.
설리번은 그것을 ‘낱말의 입맞춤’이라고 했다.
하나의 감각과 낱말을 유사한 모티프로 연결시켜 다른 낱말로 넘어갈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유사한 감각으로 발전해가면서 낱말을 늘려갔다.
생각의 빛과 한낮의 빛의 동일성과 차이, 꽃의 색깔과 향기의 동일성과 차이,
그리고 그때의 기분을 정리하여 꽃의 색깔과 관련한 낱말을 가르쳤다.
이는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둡다는 말이 있으면 그 어둡다는 ‘밤이 어둡다’에서 ‘밤 속의 얼굴이 어둡고’,
‘다시 ’얼굴에 묻힌 이파리들이 어둡다‘로 나아간다.
여기에는 ’어둡다‘는 패턴이 있다.
이는 A→AB→AC→BC로 나아간다.
이는 원래의 모티프 A에 변주를 주어 AB로, 다시 BC로 나아가게 한 A의 패턴이다.
■ 다은 시는 패턴에 의한 변주가 잘 나타나 있다.
어떤 모티프가 어떻게 변주되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 밤인데
외로우시다고요
그러면 시를 쓰세요
먼저 비를 내리게 하세요
그리고 비의 목소리를 들여다보세요
집에 소주가 있다면
그 술을 고흐라고 부르고
한쪽 귀만 있는 술잔에 따르세요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고 생각하세요
두려움이어도 좋고 후회도 좋아요
―전기철, 「밤의 카페-자크 프레베르 풍으로」 전문
㉯ 손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굿모닝 굿모닝
손에게 손을 주거나 다른 것을 주지 말아야 한다
손을 없게 하자
침묵의 완전한 몸을 세우기 위해서 어느 순간 손을 높이,
높이 던지겠다
손이 손이 아닌 채로 돌아와 주면 좋을 일
손이 손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면 좋을 것이다 굿모닝 굿모닝
―김기형, 「손의 에세이」 부분
시 ㉮는 프랑스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시풍을 빌려와 자신의 주제로 쓴 시이다.
프레베르의 부드러운 어감을 그대로 차용한 시라고 할 수 있다.
즉 프레베르의 어감을 변주한 시이다.
시 ㉯는 소재의 다양한 변주로 이루어져 있다.
‘손’은 hand의 ‘손’이었다가 손님의 ‘손’으로 변하고,
다시 ‘손실’의 ‘손’으로 발전한다.
이 시에서 ‘손’은 그 발음은 같으나 뜻은 다변화하는 ‘손’이라는 발음 모티프를 뜻으로 변주하여
말은 부챗살처럼 퍼져나간다.
말의 기호와 의미의 차이를 통해 ‘손’은 변주되어 풍성한 느낌을 갖게 한다.
■ 다음 시에서 변주의 양상을 살펴보고 문장이 어떻게 배열되는지를 보자.
㉮ 방 안에는 얼굴로 붐빈다. 낯선 사람인 양 거울 속에 주렁주렁 걸려 있는 얼굴들. 비명 을 지를 듯한 벽시계, 못마땅해 하는 형광등의 눈꼬리, 찢어진 벽지 사이로 내다보는 무 표정한 얼굴, 나를 꼬나보는 사물들
㉯ 시간은 제멋대로다. 책상 위 시계는 늘 지금 바로, 라고 중얼거리지만, 바로 위 벽에 걸 려 있는 시간은 너는 바보야. 천천히 움직여야 해, 라고 어제에서 걸어온다. 거실에서 눈 만 깜박거리는 오래된 그림 아가씨는 난 먼 데서 왔어요. 나는 그날의 초원을 걷고 있어 요. 스와니 강이 나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거든요, 라고 그때를 걷는다. 아, 나는 바로 어 느 때를 걷고 있는가.
위 시 ㉮에서 보면 사람의 얼굴에서 시작하였지만,
그 다음에는 거울 속 얼굴로,
그리고 다시 벽시계의 비명으로,
형광등의 눈꼬리로 나아갔다가 무표정에 이른다.
‘얼굴’이라는 하나의 모티프는 패턴의 변주를 통해서 새로운 상상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에서 시간 혹은 시계는 단순한 시계나 시간에서 말하는 시계,
혹은 어제에서 걸어오는 시간으로 변주되어 그림 아가씨와 그날의 초원, 스와니 강, 그때로 발전해 가면서
상상력은 앞으로 나아간다.
그와 함께 ‘바로’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주제는 풍성해지고 새로워진다.
리듬 또한 변주의 중요한 요인이다.
모티프가 의미의 변주라면 리듬은 형태의 변주이며 배열 방식이다.
우주에 리듬이 있는 것처럼, 모든 생명체에 리듬이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리듬이 있다.
시가 산문과 다른 가장 큰 요소는 리듬이다.
시에서 리듬은 한 행, 혹은 한 연이 음악적으로 구성되도록 하는 형태소이다.
이는 마치 노래에 마디와 소절이 있는 것과 같다.
음악에서 어떤 소절은 빠르게 어떤 소절은 느리게 배치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에서도 짧은 시행은 경쾌하고 감성적인 느낌을 주고,
긴 시행이나 산문시는 사색적이거나 이야기적이어서 무겁고 찐득찐득한 느낌을 준다.
동시(童詩)의 시행은 짤막하고 시의 연 또한 단순하다.
동시는 그만큼 감성적이며 감각적이다.
그에 비해 산문시는 깊이 있는 사식이 있어나 산문 같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
이런 리듬의 기본적 원칙에 음악의 대위법에서처럼 시에서도 변주를 줄 수 있다.
변주는 하나의 리듬 패턴에 변화를 주어 다르게 보이게 한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김소월, 「산유화」 부분
위 시는 기본적으로 3박자이다.
그런데 1~3행까지는 음보별로 행갈이를 하고 4행은 행갈이를 하지 않았다.
3박자의 리듬을 기본으로 하고 그 기본적인 리듬에 변주를 주었다.
3박자의 패턴에 변주를 준 것이다.
1~3행은 짧은 시행으로 감성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면 4행은 길게 배치하여 사색적이다.
시행은 노래의 소절과 같아서,
시행이 짧으면 호흡이 길고 느린 박자를 느끼고 하고,
긴 시행은 빠른 박자로 숨 가쁘게 달려가는 느낌을 준다.
1~3행은 4행보다 감성적으로 느리게 부를 수밖에 없다.
그만큼 4행은 빠르게 지나가는 읽기를 해야 한다.
4행은 사실적이거나 사색적이다.
만일 1행부터 4행까지를 똑같은 형태로 짰다면 시는 밋밋하고 시적 감성은
독자의 충동을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시의 연(聯)도 마찬가지이다.
시의 연은 하나의 방(room)과 같다.
시행(line)이 서까래라면 시의 연은 방이다.
각 방은 각자의 의미나 이미지, 혹은 독자적인 리듬에 의해 구분된다.
그만큼 리듬은 시의 의미까지도 결정한다.
산문시로 써야 할 것인가,
시행을 얼마나 나눌 것인가는 이러한 리듬을 고려하는 데에서 비롯한다.
물론 강조해야 하는 시행도 짧게 끊는다.
또한 문장부호를 찍느냐 찍지 않으냐에 따라 리듬은 달라진다.
한 문장이 서술형 어미로 끝났는데 마침표나 쉼표를 찍지 않는 것은 리듬과 관련이 있다.
서술형 어미에 문장부호를 찍지 않으면 뒤의 낱말이나 시행과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문장부호를 찍는 것과 찍지 않는 행도 리듬이 달라진 데서 비롯한다.
시행의 배열에서도 긴 시행과 짧은 시행을 앞뒤에 배치해놓으면 그 느낌 또한 색다르다.
시의 느낌은 호흡에서 오기 때문이다.
급하게 호흡하다가 갑자기 느린 호흡으로 바뀌면 호흡은 격해진다.
시의 느낌도 그에 따른다.
이는 시의 리듬에서 주제를 드러내는 방법이다.
가령 3음보의 리듬을 주 리듬으로 하는 시에 4음보나 5음보, 혹은 2음보로
변주를 준다면 호흡에 따라 시의 느낌은 달라진다.
그에 따라 시는 진폭을 갖게 되고, 주제 또한 요동을 칠 것이다. 이
것도 패턴의 변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주는 아주 다른 양식을 시로 옮길 때 많이 활용된다.
영화나 연극, 여행기 등의 형식을 차용하여 시에 변주를 준다면 시는 풍성한 형식으로
양식적 확장을 꾀할 수 있다.
형태는 새로운 상상이나 주제를 불러온다.
다른 양식을 끌어들여 작품에 적용하면 시는 새로운 느낌을 준다.
<연습 문제 1~3>과 <과제 8> (생략: 옮긴이)
< ‘언어적 상상력으로 쓰는 시 창작의 실제(전기철, 푸른사상, 2020)’에서 옮겨 적음. (2021. 5.20.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246) 언어의 배열 - ② 주제의 변주/ 문학박사 전기철|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