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 오기석
조장 / 오기석
히말라야는 죽은 자의 무덤이다
바람이 부는 반대 방향으로 그 무덤이 우뚝우뚝 선다
나는 오직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주목한다
치켜뜨고 고원을 배회하는 그 눈과 내 눈이 부딪칠 때
히말라야는 죽은 자가 산자를 배웅하는
묵직한 항구다
길은 벌써 하늘로 뚫어져 덩그렇게 허공에 매달렸는데
지금 막 망자의 검은 눈을 독수리가 정 조준한다
이곳의 주인은
고원을 만들었다 무너뜨리는 바람이다
그 바람을 타고 독수리는 날아들고 또 그렇게 떠난다
남은 것은 바람의 길을 따라 나는 망자의 영혼 뿐이다
여기서 독수리는 발톱 따윈 쓸모없다
그저 살점을 움켜쥐고 뜯을 수 있는 부리만 튼튼하면 된다
상주도 조문객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목숨은 이미 독수리가 움켜쥐고 있다
그 다음 순서는
모두 바람의 지시에 따라 시간이 알아 할 몫이다
장례의식이 끝나고 죽어서 다시 돌아 올 그 산을 내려간다
이제 남은 것은 망자의 시신과 천장사* 뿐이다
천장사가 도끼로 시신을 난도질한다
그러곤 하늘을 빙빙 도는 독수리에게 살점을 던진다
덥숙덥숙 받아먹는 독수리
그를 바라보는 나도 시신이 되어 던져진다
독수리에게 물고 뜯기는 나의 살점이 나를 바라본다
* 히말라야 고원지대 장례에서 시체의 사지를 분해하여 새에게 던져주는 사람.
[당선소감] 세상을 향해 외칠 시가 있어 행복
나의 그리움이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는 회초리가 된다면 나는 기꺼이 그 회초리로 나의 종아리에 아픔을 남기겠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 큰 소리로 내 사랑의 시를 외치고 싶다.
하늘에 초롱초롱 박힌 별처럼 속삭이고 싶다. 그 속삭임 같은 시를 밤이 새도록 쓰고 싶다.
형광등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웃거리는 나의 고즈넉한 서재, 그 곳에는 내 얼이 비단결 같은 시어로 촘촘히 짜여 있다. 늑골을 박차고 쏟아지는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하여 씨줄과 날줄이 베틀 위에서 찰칵 거린다. 이것이 바로 내 열정이다.
아직 첫눈의 추억은 손에 잡히지 않지만 쉬지 않고 썼다가 찢어버린 원고지의 구겨진 조각처럼 창밖엔 하얀 눈발이 띄엄띄엄 내린다.
시간이 저만치서 엉거주춤 거릴 때, 나의 기쁨은 어느새 눈물의 진주가 되어 벌써 내 시를 사랑하고 내 아내를 사랑하고 외투의 깃을 세우고 포도를 총총히 걸으며 출렁대는 사람과 사람의 뜨거운 입김을 사랑 한다.
사랑이 거기 있기에 오늘의 영광이 더 보람 있고 행복하다.
그동안 부족한 나를 지도하고 격려해 주신 청주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반 임승빈 교수님과 문우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덜 익은 글을 덥석 끌어 안아주신 심사위원님들과 허공을 헤집고 내 이름을 찾아 불러주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정말 감사하다.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싶다.
끝으로 충청지역을 뛰어넘어 우리 한반도 한 복판에서 지역사회 문화 발전에 선구자로 앞서가는 동양일보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 한다.
[심사평]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언어감각 돋보여
응모작(356편)들이 예년(421편)보다 적지만 작품 수준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관념적이고 상투적인 어휘들이 난무하고 난삽한 작품들이 많아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다.
언어와 사물의 불일치라는 숙명적 한계를 극복하고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치열한 도전의식(고뇌)이 엿보이는 작품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작품으로는 이돈형의 ‘아무르강의 늑대’,
김소현의 ‘칼’, 조영민의 ‘그리움을 수선합니다’와, 오기석의 ‘조장’이란 작품이다.
이돈형의 ‘아무르강의 늑대’란 작품에서 아무르강의 겨울은 바람이 누워있던 자리에
서서히 결빙이 시작되고 굶주린 야성의 울음소리 속으로 늑대사냥의 시작은 생사를 가르는
고단한 생의 애환 속에서 벌이는 생존의 속성을 확인시키고 있는 작품이다.
김소현의 ‘칼’이란 작품은 칼을 갈아 냉동고기를 썰 때마다 아들(작자)은 먼 잠 속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네 아버지는 개다’란 어머니의 버릇처럼 외치던 말을 상기한다.
썰리는 고기 속에 손을 넣어 어머니를 만져보고 싶은 충동, 도축장의 소의 혀를 씹으며 짐승의
울음흉내와 겨냥할 수 없는 거리(칼)을 겨냥하는 산자의 일상을 그려내는 솜씨가 돋보인다.
조영민의 ‘그리움을 수선합니다’에선 오랫동안 묵혀둔 아버지의 문서를 정리하다
생존 시 외면했던 아버지의 삶을 아무 가책 없이 허물다 그리움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저 세상으로 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읽어내고 있다.
오기석의 ‘조장’이란 작품은 네팔의 중턱 히말라야에서 성행되고 있는
조장(鳥葬)이란 전래적 장례를 통하여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주목하며 시신을 주거지 보다 더 높은 곳에서 해체하여 독수리에게 먹이는 장례이다.
‘그를 바라보는 나도 시신이 되어 던져진다/ 독수리에게 물고 뜯기는 나의 살점이 나를 바라본다’는
이미지 포착이 돋보인다.
앞으로 시작활동의 핵심은 대상(사물)을 접촉할 때 관념을 배제하고
탈관념의 사물시 쓰기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시단에 큰 재목으로 대성하기를 바라며 오기석의 ‘조장’을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 심사위원 : 정연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