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이동진이 <기생충>에 붙인 한줄평이다. 영화만큼이나 한줄평도 화제가 됐다. ‘명징’과 ‘직조’가 어려운 말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평론가가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평론에는 고유한 언어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뒤따랐다. 나홍진의 <호프>에 대한 이동진의 호평이 논란이 됐을 때는 말이 아니라 판단이 문제가 됐다. 4점을 두고 왜 그렇게 높게 평가했는지 그 평가는 타당한지 커넥션에 관한 불쾌한 루머도 돌았다. 한 평론가의 취향이 집단적인 검증의 대상이 됐다. 두 사건은 달라 보인다. 하나는 언어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판단의 문제다. 밑바닥에는 같은 변화가 있다. 평론가의 판단이 더 이상 평론가에게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
이동진에게서 원효대사를 본다. 그는 어려운 불교의 교리를 대중의 언어로 풀어냈다. 거리와 장터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지식을 낮추지 않고 사람에게 가져갔다. 깊은 것을 쉽게 말하는 일은 단순하게 만드는 것과 다르다. 과거의 영화평론은 영화 밖의 언어를 요구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정성일은 영화에서 형식과 미학의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 의미를 생성했다. 허문영은 인간과 삶의 문제를 길어 올렸다. 김영진은 시대의 관계를 살폈다. 오동진은 동시대의 현실과 붙였다. 평론을 읽고 다시 영화를 생각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 간극 자체가 평론의 일부였다. 이동진은 그 거리를 좁혔다. 전문적인 영화의 언어를 일상의 말로 옮겼다. 한줄평과 별점으로 압축했다. 방송과 팟캐스트, 유튜브로 자리를 옮겼다. 말을 건네야 할 사람도 달라졌다. 전문적인 독자만이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막 나온 관객이었다. 평론을 일부 영화광의 영역에 묶어두지 않았다. 평론의 대중화였다.
그것은 분명한 성취였다. 이동진은 평론이 머물던 장소를 바꿨다. 지면에 있던 말을 방송으로, 팟캐스트로, 유튜브로 가져왔다. 그 언어가 대중의 입으로 들어왔다. 이제 누구나 미장센을 이야기하고 편집을 분석한다. 감독의 전작을 비교하고 평론가의 판단을 인용한다. 평론은 일상적인 것이 됐다. 성공은 새로운 문제를 만들었다. 평론가도 같은 공간에 서게 됐다. <기생충>의 한줄평이 그랬다. ‘명징’과 ‘직조’가 어렵다는 이유로 문장이 공격받았다. <호프>에서는 한 평론가의 평가 자체가 논쟁거리가 됐다. 말도 판단도 곧바로 반응 속으로 들어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영화를 보고 자기 생각을 만들기 전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찾는다. 별점을 확인한다. 댓글을 읽는다. 유튜브 해설을 본다. 평론가의 한줄평을 검색한다. 작품과 나 사이에 다른 사람의 판단이 먼저 들어온다. 감상은 작품에서 시작돼야 한다. 지금은 반응을 거쳐 감상에 도착한다. 화면에는 타인의 취향이 숫자로 떠오른다. 좋아요. 조회수. 별점. 댓글.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판단까지 곁에 놓인다. 혼자 보고 혼자 생각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내가 느낀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확신이 필요해서다. 확신과 자기 기준은 다르다. 자기 경험에서 나온 판단은 다른 의견을 만나도 버틴다. 남의 판단을 빌린 확신은 숫자가 바뀌면 흔들린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다. 남의 생각과 내 생각 사이에 잠시 머무는 힘이다.
그 틈에서 읽고 보고 판단한다. 독해도 취향도 그곳에서 생긴다. 많이 읽고 많이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의심할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음악의 경우도 그렇다. 바르톡과 코다이의 음악교육은 아이들에게 자기 귀를 갖게 하는 데서 출발했다. 익숙한 음악에서 다른 음악으로 나아가며 스스로 듣는 힘을 길렀다. 입시교육은 자주 그 반대편에 선다. 좋아하기 전에 시험 본다. 문학을 읽기 전에 문제를 푼다.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기 전에 정답을 찾는다. 점수와 등수가 자기 판단보다 먼저 들어온다. SNS도 비슷하다. 좋아요와 조회수가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이 된다.
취향조차 자기 것이 아닐 수 있다. 누군가 좋다고 하니까 좋아한다. 모두가 싫어하니까 싫어한다. 유명한 평론가가 명작이라고 하면 다시 본다. 인터넷에서 혹평이 쏟아지면 자신의 감상까지 의심한다. 취향이 아니라 취향의 확인이다. 신동엽의 산문시에 나오는 ‘뒷주머니에 하이데거를 넣은 광부’가 떠오른다. 지식이 삶과 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처럼 읽힌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것을 안다. 하이데거를 인용하고 타르코프스키를 설명한다. 미장센을 분석하고 평론가의 문장을 기억한다. 자기 삶으로 들어오지 않은 지식은 여전히 남의 것이다.
대중예술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영화가 나오면 예고편이 따라온다. 반응 영상이 나오고 해설이 쏟아진다. 관객의 반응은 실시간으로 측정된다. 무엇을 싫어할지 계산하고 논란이 될 장면을 피한다. 스스로 검열한다. 대중예술의 위험은 대중을 위한 예술에 있지 않다. 타인의 시선을 먼저 의식하는 데 있다.
대중의 언어로 말하는 것과 그들이 듣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은 다르다. 원효가 사람들의 언어로 불교를 이야기했다고 해서 사람들의 욕망에 자신을 맡긴 것은 아니다. 다가가는 것과 눈치를 보는 것은 다르다. 예술에는 낯선 것이 필요하다. 불편함도 필요하다. 당장 이해되지 않는 순간도 필요하다. ‘명징’이 낯설다면 그 말을 알아가면 된다. ‘직조’가 어렵다면 문장 속에서 뜻을 찾아보면 된다. 모르는 것을 만났을 때 밀어내지 않는 것.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 독해는 그런 데서 시작된다. 평론가에게도 책임이 있다.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좋은 평론은 대중에게 다가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 작품 앞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조르주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에서 말한다.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한 인간이라고, 배제당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판단을 조정한다. 다수의 취향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침묵한다. 디오게네스는 그 반대편에 선다. 타인의 시선을 없애려 한 것이 아니라 그 시선에 자신의 판단을 맡기지 않았다. 지금 필요한 디오게네스는 SNS를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평론을 읽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유튜브를 거부하는 사람도 아니다. 모두 보고, 모두 읽고, 모두 들은 뒤 잠시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이다. 원효처럼 어려운 것을 대중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동진처럼 전문적인 것을 대중에게 건넬 수도 있다. 그 말을 배운 뒤 자기 언어를 찾아야 한다. 평론을 읽은 뒤 자기 판단을 남겨야 한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생충>의 ‘명징과 직조’를 둘러싼 논란과 <호프>에 대한 이동진의 호평을 둘러싼 논란은 한 평론가의 말과 별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평론가의 권위가 달라진 시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누구나 말할 수 있게 됐다. 누구나 비평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모두가 말할 수 있게 된 시대에 우리는 과연 자기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콘텐츠가 많아질수록 아는 것도 많아진다. 더 많이 아는 것과 더 잘 판단하는 것은 다르다. 스스로 보고, 듣고, 좋아하고, 싫어해야 한다. 아무에게도 동의를 얻지 못한 채 자신의 판단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원효는 해골물을 마셨다. 물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자신이 달라졌다. 타인의 판단을 마시기 전에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묻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언어로 말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다.
첫댓글 많은 것을 함축한 영화라면 해석을 보고 지적 유희를 더 누리면 좋겠죠. 근데 그 해석을 볼 시간이 없어요. 분명 깊이 매설된 장점을 유려한 표현으로 짚어주는 좋은 분인데 너무 컨텐츠가 많고 내 시간은 한정이라. 내가 못보거나 이해가 안 간다고 이동진을 깔 건 없는뎁. 지적 열등감의 발로가 아니라면. 킁킁.
뭐 주저리주저리 씨부렸지만 결론은 각자 말이 다 맞다는 소립니다.
@소대가리 다 절대적 가치가 있죠. 그렇다고 해서 상대적 가치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현학적 레퍼런스 인용도 누군가에겐 꺼드럭이고 누군가에겐 무릎탁이고요.
@안경 선배 선배님의 통찰에 무릎 탁
@소대가리 누군가에겐 깊은 사고를 정제된 표현으로 길어내는게 참 즐거움인데 그걸 꺼드럭대려는 의도가 있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도 반지성주의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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