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용품을 나누어 주는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
이 철 웅 (교육학박사 / 전 포천교육장) 학교 다닐 때 학교 앞 문방구의 추억이 많이 난다.
학습준비물도 사고, 좀 저질일진 몰라도 문방구 앞에서 사먹던 과자류는 우리 기성세대에게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즈음 학교 앞 문방구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는 현상을 보게 된다.
그 원인은 일선 학교에서 ‘학습 준비물 없는 학교’를 표방하면서, 더 이상 학교 앞 문방구에서 준비물을 사 갈 필요가 없이 일률적으로 나누어 주는 정책이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모든 학생들에게 같은 학용품을 나누어 주어 학습에서 오는 불평등을 없애 주겠다는 취지이다.
일단 현실을 직시하자면 이러한 무상교육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될 것이고, 이런 추세는 학교 앞 문방구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 정책은 학교 예산의 일정액을 할애하여 학습준비물을 일괄 구입하여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는 정책이다. 학부모들에게는 경제적 부담이 줄어들어서 좋고, 학생들에게는 준비물을 챙겨오니 않으니 편할 수밖에 없으니 이를 지지하는 층이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말 편하고 좋은 정책일까?
좀 생각을 깊이 해 보자.
우선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는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이다. 이는 다양성과 경제적 원리를 공부해야 적응할 수 있는 경제체제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일률적으로 나누어 주는 같은 질의 학용품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부모님에게서 일정 돈을 받아 학생들이 학용품을 고루는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장이다. 다양한 학용품을 사서 사용해 보고 스스로 시행착오를 경험해 보는 것이 참 삶의 교육이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부모님이 주신 용돈을 아끼려고 너무 싼 연필을 샀다가 자주 뿌러져서 다음에는 좀 비싸도 양질의 연필을 골라 샀던 기억이 난다. 이것이 살아있는 체험적 경제교육이 아니겠는가?
그 다음에 우리 사회의 경제체제를 알아보자.
좀 조잡하지만 처음 문구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처음 진입하는 것이 학교문방구였다. 여기서 생존하면 점차 더 큰 시장으로 진입해 가는 것이 우리나라 문구산업의 순서였다.
그러나 지금의 정책은 학교들은 조달청의 나라장터(G2B)나 교직원공제회가 운영하는 학교장터(S2B)에서 학습 교자재를 일괄 구매하고 있다. 최저가로 대량 입찰을 붙이다보니 동네 문방구나 영세 문구제작자들은 입찰에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이니 대형체인문구점이나 온라인 문구점을 제외한 소규모 문방구들은 대부분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갈 곳을 잃은 문방구는 도태되는 길을 걷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 문방구 숫자는 1999년 2만6천986개에서 2009년 1만7천893개로 10년 동안 34%(9천093개)가 줄었으며, 지금은 그 속도가 가속해 가는 상황이다.
준비물 없는 학교가 본격화된 2011년부터는 학교 앞 문방구의 폐업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대로 갈 경우 소수의 대형 업체들을 제외한 소규모 영세 문구점은 결국 사라지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전체 학교 앞 문방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대부분이 영세업이고 가족단위로 구성되어있다. 3만여 문구점이라고 계산하면 십만여 명이 종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의 일자라는 어떻게 할 것이며, 영세문구점에서 사업의 걸음마를 시작하던 영세 문구제조 창업자들의 진로는 어찌할 것인가?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대기업만 잘 나가면 된다는 사고체계는 미숙한 사고이다. 인간이 제대로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동맥뿐만 아니라 우리 몸 구석구석까지 연결된 실핏줄도 함께 건강해야 한다.
학교 앞 문구점의 쇠락은 우리나라 경제체제의 실핏줄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아니겠는가?
무상교육을 반대할 생각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정책이라도 다양성을 무시하는 교육정책은 바른 정책이 아닌 것이다.
무상만을 선호하는 국민은 스스로의 자생력을 갈아먹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소규모 문구점의 도산을 유발하고 학생들에게 다양성과 체험적 경제교육을 막고 있는 일률적으로 학용품을 나누어 주는 정책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정책은 국민에게 단맛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선도하고 일깨우는 정책이 진정한 국민을 위한 정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