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비드가 그린 ‘소크라테스의 죽음’. /미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기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착각하는 반면, 나는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모르지만 내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착각하지는 않는 것을 보니, 내가 그 사람보다 지혜롭기는 하구나."
기원전 399년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섭니다. 국가의 신들을 부정했다는 불경죄와 아테네 청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이유였어요.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자신의 철학이 왜 죄가 되지 않는지 변호해요.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세 번에 걸친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그의 생애, 인격, 가르침을 제자인 플라톤이 기록한 책이에요. 서양 철학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이 응축돼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저작이라고 할 수 있죠.
사실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선 것은 주변의 시샘과 모함 때문이었어요.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궤변을 정설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몰아붙였어요. 이 비난에 대해 소크 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에서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신탁을 받았고,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을 만나 보니 실제로 그렇더라"고 해명해요. 이유는 간단해요.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언가를 잘 안다고 착각한다는 거예요. 반면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무엇인가를 안다고 착각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신이 지혜로운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보면 철학의 시작은 결국 '무언가를 안다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청년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에 대해서도 소크라테스는 논리정연하게 반박해요. 소크라테스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청년들과 대화하며 '너 자신을 알라'고 해요. 즉 '나를 아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한 거죠. 나를 아는 것은 곧 이성(理性)의 회복을 의미하는데, 당대 권력자들은 이 가르침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의 이성이 회복되면 권력자들의 지위가 위태롭기 때문이에요.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직감하면서도,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테네 시민에게 해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요. 델포이 신전의 신탁에 따르면 자신은 시민을 설득하고 책망해 이성을 회복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사형되면 그 역할을 맡을 사람이 없어지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이 구형됐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해요. 죽음은 편안한 잠과도 같고, 저승에 먼저 간 신과 영웅, 역사적 인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고 하죠.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세와, 심지어 죽음이 새로운 세계로 옮겨 가는 것이라는 통찰은 소크라테스 시대부터 철학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가르침인 셈이에요. 소크라테스가 진리를 탐구할 뿐 아니라 정의로움까지 겸비한 철학자였다는 사실을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잘 보여주고 있어요.
출처: 《조선일보》 2023.7. 4 <신문은 선생님>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