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러 있는 슬픈 계절 - 제65신
한 송이 꽃이 화려한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 꽃을 받치는 몇 개의 잎과 줄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눈에 드러나 보이는 것은 꽃과 잎과 줄기뿐입니다. 어린아이들이라면 줄기와 잎이 꽃을 피우는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그루의 나무가 서있는 땅속이나 화초가 심겨진 화분에는 크고 작은 수많은 뿌리가 얽혀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무나 꽃을 옮겨 심거나 분갈이를 해보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겠지요.
그리고 꽃다발을 만들거나 꽃꽂이를 할 때면 줄기 밑둥과 뿌리는 버려지고 맙니다. 뿌리가 제할 일을 다 한 것이라면 더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더 귀한 것인가, 생각하면 그 답은 달라집니다. 꽃도, 줄기도, 뿌리도 모두가 다 귀한 것이라면 수고를 많이 한 것을 더 소중한 자리에 올려놓아야 할 것입니다. 존재하는 힘은 모두가 그 뿌리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곱게 핀 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이처럼 많은 수고를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최선을 다해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그 꽃이 말없이 말하는 말을 듣기 보다는 그 화려한 모습에 빠져들며 기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오랜 세월 소쩍새가 울고,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통곡하고, 무서리가 내리기 까지 온 세상이 난리를 치는 것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도 역사는 말없이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엊그제 영화<연평해전>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오전 11시25분에 시작되는 영화를 보기위해 30분전에 집을 나섰고, 가다가 우체국에 들렸지만 도착하니 15분 전이었습니다. 컴컴한 200석의 영화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참 기다리니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여기저기 자리를 잡았습니다. 다시 한참이나 ‘광고’필름이 돌아가고 나서 본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날 나는 하얀 제복의 해군들을 보았을 때 그들은 배를 타고 먼 수평선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기며, 바다위에 펼쳐지는 일출과 낙조를 보며 감탄을 연발하는 일들이 참으로 낭만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논산 훈련소를 거쳐 병역을 마친 나는 해군이 육군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된 훈련을 받을 때도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월드컵 열기가 한반도를 달구던 2002년 6월 29일, 참수리 357호의 해군장병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에 국가 원수는 월드컵 결승전을 보기위해 일본에서 만면에 웃음을 띠우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 함정이 선제공격은 하지 말라’는 당국의 명령 때문에 우리의 자랑스런 아들들은 적군의 총탄을 맞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배우들과 제작진의 이름들이 지나가는 그 옆으로 생존자들의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습관처럼 사람들은 일어서서 더듬더듬 출구로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증언들이 끝나도 화면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화제작을 후원한 단체와 개인들의 이름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끊임없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들의 수는 수천, 수만에 이를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름들이 흘러가는 시간은 5분도 더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연평해전>영화를 꽃피운 뿌리들이었습니다. 몇 차례 촬영이 중단되었지만 이름없는 그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가 빛을 보게 되었다고 김학순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화면이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는 고작 다섯 명의 관객이 자리에 남아 있었습니다.
마침내 영화가 끝이 나도 끝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13년 동안이나 외면당했던 우리 해군 장병들의 명예회복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국가차원의 보상은 부끄럽기만 합니다. 보상보다 더 아득한 것이 있습니다. 그 것은 윤영하 함장을 비롯한 그들 여섯 용사의 부모님들이 겪고 있는 슬픔의 고통입니다. 그것은 어떤 보상과 명예로도 치유될 수 없는 아픔입니다. 6.25때 납북된 8만여 명, 미귀환 국군포로 생존자 500여명의 가족들, 1천만 이산가족들, 잊기도 전에 일어나는 대형사고 희생자 유가족들의 지워버릴 수 없는 슬픔의 앙금이 남아있습니다.
‘슬픔에는 규격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저들을 다시 만날 때 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의 슬픈 고통은 잡초보다 더 강하게 그때그때마다 되살아 날 것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습니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슬픈 계절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지구상의 인류는 모두가 슬픈 계절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L 교수님, 평안하시지요. 영화를 보고 무거운 이야기를 늘어놓아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나 울고 싶을 때는 실컷 울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슬픈 이들을 위해 함께 울어줄 수 있다면 그 자리에 기쁨이 싹이 돋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주님의 평강이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15년 7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