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40)
#하수오
심원나루터서 만난 붓장수와 과부
곰소행 배 타고 가며 신세타령
주막에 들어가선 부부행세하는데…
흑심 품은 붓장수
산삼보다 낫다는 하수오 받아먹고
다음날 정신차려보니.....
쪼그라진 갓을 삐딱하게 뒤꼭지에 걸치고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에흠 에흠”
헛기침을 하던 붓장수가 짧은 담뱃대에 연초를 이겨넣고
부싯돌을 치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여인이 다가와 묻는다.
“어르신, 곰소 가는 배가 언제쯤 떠나요?”
잘록한 허리에 두팔로 머리에 인 자루를 떠받들어
봉긋한 젖가슴이 반쯤 드러났다.
붓장수는 부싯돌을 놓고 얼른 일어나 자루를 받아 땅에
내려놓으며
“나도 곰소로 가는 길이요, 배는 곧 올거요.”
여인이 생긋이 웃는다.
“어르신 고마워요.”
“아 자꾸 어르신, 어르신 하지 마시요,
내 나이 댁보다 몇살 더 먹지 않았으니께.”
“호호호, 내 나이 얼만지나 알고 그러세요?”
심원나루터에서 곰소 가는 배를 기다리며
붓장수와 여인네는 말동무가 됐다
“곰소는 무슨 일로 가시오?”
“내일이 곰소장이잖아요, 이 자루 속의 하수오를 팔아서
시아버지 회갑상 차려드리려고요.”
“아니, 남편되는 양반은 뭘 하고….”
“남편이 있으면 내가 왜 이 고생 하겠습니까.”
붓장수가 안됐다는 듯이 끌끌 혀를 차며
멀쩡하게 살아있는 마누라를 두고
“나도 삼년 전에 상처하고 마누라 잊으려고
이렇게 떠돌이 장돌뱅이짓을 하지요.
문전옥답 백여마지기는 모두 소작을 주고….”
과부와 홀아비(?)는 죽이 맞아 배를 타고 가면서도 서로
신세타령을 하다가 곰소항에서 내려 주막을 찾았다.
붓장수가 하수오자루를 메고 과부를 데리고 들어가자 주모가
“아이고 오씨가 집사람을 장구경 시키려고 데려왔네”
하며 마지막 남은 객방 하나를 줬다.
붓장수가 나루터에서 만난 여인과 한방 쓰는 게 남보기
멋쩍어 부부행세를 했고, 여인은 할 수 없이 객방에 따라
들어와 하수오자루를 가운데 두고
“함부로 흑심은 품지 마시오”
못을 박았다.
“걱정 마시오. 마누라 죽고 나서 여자는 돌처럼 보입니다 그랴.”
둘이서 겸상 저녁을 먹고 붓장수 오가가 술 한 호리병을
마시고 나서 벽에 기대앉아 담배를 피우며
여자는 꾹꾹 눌러주고 하수오자루도 뺏을 궁리를 했다.
“말로만 들었소,
산삼하고 맞먹는다는 그 하수오 구경 한번 합시다.”
여인은 꼭꼭 묶어놓은 자루를 푸는 대신 품 속에서 하수오 편을 꺼내
“하나만 드시오.”
붓장수는 얼른 받아 입에 넣고 빠작빠작 씹어먹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오늘밤 죽여 달라고 하수오를 먹이는구나.’
여인은 빈 개다리 소반을 들고 부엌으로 가 설거지를 도왔다.
붙임성도 좋아 금방 주모와 형님동생이 되었다.
설거지를 마친 주모가 안방으로 들어가
“여보, 이거 좀 들어보시오,
하수오라고 힘 솟구치는데는 산삼보다 낫답니다.”
이튿날 아침,
해가 중천에 떠올랐는데도 주막 굴뚝엔 연기가 나지 않는다.
객방 손님들이 고함쳤다.
“주모, 국밥 한그릇 먹어야 장터에 가서 용을 쓸 것 아니오.”
안방에서 주모와 서방이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땐
머리가 도끼에 찍힌 듯이 아팠다.
다락문이 열려 있고 돈 항아리가 사라졌다.
붓장수 오씨도 머리가 뽀개지는 것처럼 아픈 것은 마찬가지.
다섯 장을 돌며 붓을 판 전대도 없어졌다.
주모와 그 서방이 붓장수 오씨의 멱살을 잡았다.
난감해졌다.
내 마누라가 아니라느니, 나도 전대가 털렸다느니
변명해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붓장수 오씨는 자기 전대
털린 것은 둘째 치고 주막집 돈항아리까지 물어줄 판이다.
꾀가 똑똑 흐르는 오가가 당하고만 있을리 없다.
“네 이 연놈들!”
큰소리에 주막 주인이 멱살 잡은 손을 놓았다.
“에흠 에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얼굴이 반반한 내 마누라를 너희 연놈들이 외딴섬 색줏집에 팔았지?
내 마누라가 너희 돈을 털어 도망갔다면 나도 함께 갔어야지.
당장 사또 앞으로 가자.”
주모와 남편이 곰곰이 생각하다가 펄펄 뛰는 붓장수를
새장가 가라고 돈을 줘서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