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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은 역사를 연출한다’라는 부제를 지닌 이 책은, 결정적인 역사적 순간에 존재했던 인물들이 존재했던 현장을 찾아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모든 역사 기록이 그렇듯이, 책의 서술에서 한 인물의 행동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이 특징적으로 드러나 있다. 신문기자인 저자가 취재차 현장을 직접 답사하면서, 역사적 순간에 마주 섰던 이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그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이미 지면에 수록되었던 글들을 추리고, 그 가운데 리더십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 내용들만을 골라 엮어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주로 전쟁이라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당시의 리더들이 했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모두 4장으로 구성된 내용들 가운데, 마지막 4장은 한국의 역사와 직접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가 직접 발굴한 대한제국의 워싱턴 공사관을 둘러싼 근대 초기의 우리 역사의 현실을 돌아보면서, 2차대전이 종전으로 치달을 당시 강대국들의 회담장이었던 카이로와 테헤란 그리고 얄타를 찾아 당시의 상황을 재구해 보기도 한다. 분량은 가장 적지만 아마도 저자가 가장 역점을 두고 서술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역사에서 가정이란 무의미한 것이지만,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한 역사적 사실 앞에서는 늘 그렇게 '상황이 조금만 달라졌더라면' 하는 무의미한 생각을 떠올려보게 된다.
‘언어로 세상을 평정하다’라는 제목의 1장에서는 이른바 ‘연설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국의 처칠과 프랑스의 드골 그리고 미국의 링컨과 중국의 마오쩌둥에 이르기까지,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대중을 휘어잡는 연설력이 강점으로 꼽히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리더십은 역사의 결정적 장면을 생산한다’라는 2장에서는 <군주론>의 저자인 마키아벨리와 일본 명치유신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던 요시다 쇼인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대체로 1차와 2차 세계대전의 막전막후를 다룬 내용들이 차지하고 있다. 레닌과 스탈린의 통치술과 스탈린의 어두운 면모를 폭로했던 후루쇼프 등 과거 소련 지도자들의 행적을 좇아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이밖에도 1차대전을 촉발시킨 ‘사라예보 총소리’의 주인공과 히틀러의 관계를 그려내기도 하고, 스페인의 독재자로 군림했던 프랑코의 히틀러를 향한 기민한 술책 등에 대해서도 현장을 담사해 소개하고 잇다.
3장에서는 제목 그대로 ‘지도력의 경연 무대 ?전쟁과 평화’와 관련된 인물들의 사연을 담아내고 있다. 두 차례에 걸쳐 발생했던 세계대전의 무대들을 답사하여, 역사의 현장이 지닌 의미 등을 저자 나름의 시각으로 짚어내고 있었다. 저자가 찾은 현장은 유럽과 아시아 대륙 전역에 걸쳐 있으며,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배경이 되었던 내몽골의 ‘노몬한 전투’의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강대국에 대항하여 전쟁을 치르면서 유일하게 패배를 겪지 않았던 베트남의 디엔비엔푸 전투의 경과를 이번 기회에 상세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신문기자로서 취재차 답사를 진행했다고는 하지만, 전세계에 퍼져있는 역사의 현장을 찾아다녔던 저자의 노고에 우선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각각의 현장이 품은 내용들이 다소 소략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한정된 지면에 수록하기 위한 원고이기에 그 내용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이해된다. 아마도 전쟁의 흔적을 찾아다녔던 기획 탓이겠지만, 군사력을 강조하고 심지어 핵무장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용들에서는 나로서는 다소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예컨대 1장에서 드골의 핵전략을 소재로 한 내용의 말미에, 드골을 높이 평가한 요인 가운데 하나를 핵무기로 들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저자가 군사력을 강조하면서, 그것이 마치 국력인 것처럼 묘사하는 내용은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주제와 상관 없이 한국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뜬금없이 논하는 내용도 지적할 수 있겠다. 프랑스의 마지노선을 답사하고 그 의미를 기술하면서, 해당 글을 ‘무장평화론이 북한의 오판을 막는 버팀목이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짓고 있다. 또한 베트남의 디엔비엔푸 전투를 기술하는 내용 가운데에서도, ‘한국 사회의 안보 불감증은 심각하다. 사드 배치는 고육책이다’라는 등의 주제와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들을 단정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독자로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서 저자가 속한 언론사가 보수적이라 평가받고 있는데, 해당 언론사에서 오래 활동하면서 형성된 보수적 세계관이 글을 쓰면서 그대로 반영되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러한 저자의 보수적 이념은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저자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는 다소 거북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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