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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후 전혀 새로운 상황에 의해 탄생한 ‘근대’는 그 이전의 문화에 이어지는 사회이자, 이른바 서구의 양식을 새롭게 받아들여 이전과는 다른 변화를 야기하는 전환기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전문학 전공자로서 ‘근대’와 ‘근대문학’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매우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기에, 18세기 이래 20세기 초반까지의 문화와 문학을 다룬 저자의 글에 관심이 기울어졌다. 저자는 원효의 글과 불교적 사유에 기대어 이른바 ‘화쟁기호학’이라는 이론을 제시하였고, 이 책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한국 문화와 문학을 해석하려고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 조선 후기에 해당하는 18세기 이후의 사회와 문학 작품들에 주목하여, 자신의 이론을 기반으로 그것을 ‘차이의 근대성’이라는 관점에서 논하고 있다.
유럽중심주의와 민족주의를 넘어‘라는 부제는 자못 저자 자신의 관점이 매우 특별하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 그 이론적 배경과 저자가 제시하는 논거는 기호학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저자가 야심차게 제시한 이른바 ’화쟁시학‘이 다른 이들에게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자신만의 글쓰기에 머물고 있다는 점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무엇보다 이론은 작품을 바라보는 수단임에도, 이론 자체를 내세워 작품의 의미를 한정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물론 저자가 안내하는 작품과 문화에 대한 관점은 때로는 매우 유익하며, 기존과는 다른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작품을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구분하여 해석하는 방법은 문학의 다양성을 온전히 감싸안지 못할 수 있다는 점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고 하겟다.
크게 두 개의 항목으로 구성된 목차에서 제1부는 ‘이론과 방법들’이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조선 후기 문학을 분석하는 도구로서 이론에 대한 정합성을 논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하여 ‘기존의 근대화론의 타당성과 한계’를 지적하고, ‘중세성.근대성,탈근대성의 동일성과 차이’와 저자가 주목한 ‘차이의 근대성, 그 이론과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저자의 ‘화쟁시학’을 중심에 두고 조선 후기 문학을 분석하고자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어지는 제2부 ‘18~19세기 한국문학에서 차이의 근대성과 재현’에 수록된 논문들은, 이러한 저자의 방법론에 입각한 문학작품과 문화에 대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잇다.
2부의 논문들은 사설시조를 비롯하여 가사와 판소리 등 조선 후기에 활발하게 향유되었던 문학 작품들을 저자의 관점에서 분류하여, 이른바 ‘화쟁시학’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여 해석하고 있다. 일단 저자의 논리에 따라 글을 읽다보면 매우 적절하고 유익한 해석과 접할 수 잇다고 이해된다. 하지만 저자가 선택한 자료가 매우 제한적이고, 때로는 자신의 논거에 유리한 자료만을 취해서 분석하고 잇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여기에서 다뤄지는 주제를 열거하면 ‘상품화폐의 발생과 문학적 재현’이나 ‘근대적 주체의 형성과 문화창조’ 그리고 새로운 세계관에 따른 표상체계/미학/담론의 변화‘ 등 조선 후기의 주요한 국면들이 전면에 드러나고 있다. 여기에 ’탈중세성‘과 ’근대적 시공간의 형성과 재현‘. 그리고 사설시조에서 전면적으로 부각되는 ’사랑과 욕망‘의 주제들이 당대의 문화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
그동안 조선 후기 문학사에서 주요한 논제로 거론되었던 ’문학의 대중화와 통속성‘이라는 주제 또한 저자의 관심사에 포작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 스스로 ’차이의 근대성 이론을 정립한 이후 14년에 걸쳐서 17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그 결과물들을 엮어서 이 책으로 출간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만큼 저자 자신의 논리 제시가 분명하게 확인된다는 점이 수록된 글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 미덕이라고 여겨진다. 더욱이 그동안 발표한 논문들을 단순히 엮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체를 검토하면서 더 많은 자료를 보며 대폭 수정하고 보완하고 새로운 것을 덧붙여‘ 펴냈다고 하니 저자의 성실성까지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하겠다.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분명 자료의 해석이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방법론이나 문학에 대한 관점의 차이일 뿐이라고 규정하고자 한다. 그것 또한 문학이 지닌 다양성의 한 측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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