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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야고보의 행적을 따라 걷는 이 길은 애초에 종교적인 의미를 띠고 있었지만, 지금은 딱히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전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가장 걷고 싶은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과거 TV프로그램에서 3명의 배우들이 순례길의 코스 중근에 게스트하우스를 차리고, 순례객을 위해 숙식을 제공하는 내용이 방영되어 더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나는 아직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본 적도 없고 앞으로 갈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코스와 그곳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기회가 된다면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에서 생활하는 저자가 다섯 번에 걸쳐 찾았던 순례길을 소개하면서, 그곳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함께 소개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르퓌 순례길에서 만난 생의 인문학’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단지 코스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소대들을 통해서 '인문학적 정보'를 함께 풀어내고 있다. 저자가 걸었던 르퓌 순례길은 프랑스 ‘리옹에서 남서쪽으로 110킬로미터쯤 떨어진 종교도시 르퓌에서 출발해 남서쪽으로 걷다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에 있는 작은 마을 생장피에드포르에서 끝나는 750킬로미터의 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서쪽 끝 산티아고까지 750킬로미터의 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한 코스인 르퓌 순례길은 프랑스에 속한 지역이다. 저자는 ‘어느 길을 걷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길을 나서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책에는 저자가 마주치는 장소와 관련된 역사와 문화는 물론, 그와 관련된 시와 영화 그리고 저자의 상념들이 적절하게 소개되고 있다. ‘인문학’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모네의 그림과 에밀 졸라의 소설을 통해서 화두를 이끌어내고, 그리고 보들레르의 시를 인용하면서 책의 서두를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르퓌, 순례의 시작’이라는 항목으로부터 생장드피에드포르에 이르는 순례길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 코스만 5차례에 걸쳐 주파했을 정도로, 이 길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깊은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주치는 장소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만큼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틈틈이 저자의 기억을 소환하면서 풀어내는 한국에서의 추억, 그리고 프랑스의 역사 혹은 문화에 견주어지는 한국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하겠다. 특히 각 항목의 끝부분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노트’라는 메모를 통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숙식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 역시 여러 번에 걸친 저자의 순례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라 하겠다.
이 지역의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저자가 소개하는 코스가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아직 프랑스나 스페인을 다녀온 적이 없기에, 그저 책의 앞부분에 소개된 지도를 염두에 두고 상상을 펼쳐야만 했다. 하지만 저자가 마주친 특정 장소에 대한 기억은 때로는 한국에서의 경험이나 역사와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어, 독자인 나에게도 적절하게 이해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콩크에서 리비냐크로우까지’라는 항목에서, 저자는 노천광산이 있었던 드카즈빌이라는 곳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석탄산업의 쇠퇴로 인한 광부들의 파업은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는데, 저자는 문득 1990년에 개봉된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의 줄거리를 소환하고 있다. 강원도 사북 탄광을 배경으로 문성근과 심혜진 그리고 박중훈 등이 등장하는 영화는 나 역시 인상적으로 보았던 작품이다.
그밖에도 저자는 시와 소설 그리고 영화와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들을 인용하면서, 순례길 곳곳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책의 성격이 ‘순례길에서 만난 생의 인문학’이라는 부제를 적절히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자신이 거쳤던 코스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문화와 역사를 섭렵하여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세심함이 충분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철저한 준비 과정에서부터 구체적인 장소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 역시 답사의 정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졌다. 혹시 나중에라도 이 코스를 걷게 된다면, 반드시 챙겨야할 목록에 이 책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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