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회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 전영아
궤나 / 전영아
궤나가 되었으면 한다
호흡이 멈춘 내 몸을 天葬으로 뉘면
살갗은 독수리의 몸을 타고 바람에 흩어지고
오롯이 희디흰 정강이뼈만 남으리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내 정강이뼈를
아프게 품어 줄 사람하나 가졌으면 한다
그가 떨리는 손에 내 정강이뼈를 고쳐 잡고
사막에 남겨진 고적한 발자국
긴 속눈썹을 가진 낙타의 순한 눈빛
초원에 골고루 슬어놓은 어린 나귀의 울음소리
그것들을 궤나에 실어 추억해 주었으면 한다.
아! 나는 미어지는 것들을 어디에다 죄 잃어버리고 왔을까.
바람 불고 구름 흩어질 때
야윈 내 정강이뼈를 훑고 지나가는
저 살빛 낮달도 슬펐으면 한다
어쩌다 한 번 피는 연보라 적란운보다
스텝에만 산다는 바오밥 나무보다
먼 곳에 있지 않은
궤나가 되었으면 한다
[당선소감] 아! 저기 한 무더기 꽃
햇빛 찬란히 아름다운 날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상처 많은 진주조개가 더 영롱하고 아름다운 진주를 품는다고 들었습니다.
제게 삶은 저만치 혼자서 외롭고 슬픈 꽃이어서 이 오래되고 쓰라린 결핍이 아마도 제게 詩를 쓰게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돌이킬 수 없이 깊어진 詩病이 도처에 흐드러져 나는 때로 그 안에 들어가
울고
또 울고
그렇게 오래오래 울고 웁니다.
평생을 울어도 여기 이생을 넘어가지 못할 것 같은 슬픔은 가끔 명치끝을 후려치기도 해서 숨이 멎을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우주 만물에 존재하는 모든 빚진 인연들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대기만성하리라는 격려를 해주신 스승님과, 함께 어깨를 겯고 이 길을 걷는 시마(詩魔) 동인들과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오스트랄로 피데쿠스로부터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에까지 이어진 인류라는 존재의 실존적 고민을 동감하는 시인이 되도록 애쓰겠습니다.
마음의 뒷짐에 비린내 나는 생선 한 마리를 숨기고 삽니다.
몸에 흐르는 피처럼 떨쳐 낼 수 없는 죄, 혹은 부끄러움, 혹은 치욕의 기표인 이 생선을 기꺼이 짊어지고 갑니다.
나의 영혼이 간절히 갈망하는 먼 곳에 있는 한 무더기의 꽃을 향하여 또 한 손을 뻗습니다.
[심사평] 서사적 숨결·인간적 감각을 정서적으로
이번 신인문학상에 응모작품(651편)이 작년(427편)에 비해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해를 더 할수록 시가 모호해지고 난해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 마디로 추상과 관념의 유희에 빠져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작품들이 많지 않았다.
마지막 까지 선자의 손에 남았던 작품은
허윤종의 ‘산다는 것은’ 과,
강수화의 ‘아버지의 출항’
그리고, 원기자의 ‘소금꽃’이란 작품과 전영아의 ‘궤나’ 란 작품이다.
허윤종은 ‘산다는 것은’ 세월의 돌무덤을 넘고,
모래사막일망정 주저앉아가는 세월 바라 볼 수 없다며 고난의 땀방울과 고난의 파편을 내뱉는 것,
역류의 운명을 안고 자지러지게 울어보는 것으로 살아 바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란
자신의 존재를 내보이고 있다.
강수화는 ‘아버지의 출항’이란 시에서 어둠이 바다를 삼킬 때,
바다를 떠돌며, 인생의 전부를 어선의 한 귀퉁이에 싣고 휘몰아치는 파도에도 활어처럼 굽어진 등을 펴고,
힘차게 바다 길을 여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서 삶의 가치를 찾고 있다.
원기자는 ‘소금꽃’에서 어릴 적 무구를 흔들던 할머니,
신당에 오색 천을 두르고 억울한 혼령이 구천을 떠돈다는 당집을 돌던 기억,
밤나무 밑에 소금물을 퍼붓던 어머니가 이제는 신당 아랫목에 자리보전하고 누운,
모습을 보며 마음속의 아린 소금꽃을 확인하고 있다.
전영아는 ‘궤나’ 란 시에서 호흡 멈춘 내 몸을 천장天葬으로 뉘면,
살갗은 독수리의 몸을 타고 바람에 흩어지고 정강이뼈만 남고,
정강이뼈로 만든다는 악기 궤나를 꿈꾼다.
초원에서 어린나귀울음소리를 궤나에 담아 추억해주길 바란다.
옛 잉카들은 넋을 달래기 위해 사랑하던 사람이 죽으면 궤나를 만들어 그 사람을 그리워하며 궤나를 분다.
끝내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짐승들까지 울게 한다는 인디오들의 애절한 모습을
일깨우는 인간적인 감각을 정서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전영아의 ‘궤나’를 당선작으로 밀며 관념을 배제한 탈관념의 사물시 쓰기에 정진하기를 바란다.
- 심사위원 : 정연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