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집은 춥다.
영국 날씨가 늘 우중충 하고,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많진 않지만, 비가 오고, 습하고, 안개끼고... 아무튼 정신 질환자가 많은 이유도 아마 날씨 때문일 것이다. 영국신사가 늘 들고 다니던 긴우산은 영화에서는 운치가 있고 멋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언제 비가 올지 모르는 날씨, 햇빛의 부족한 환경 아래서 사는 것은 마냥 즐겁진 않다.
수술 후에 몸이 약해져 있으니, 추위를 많이 타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도 난방을 하면 가스세금이 많이 나오듯, 영국은 더 그랬다.
영국에서 유용하게 사용했던 것 중에 하나는 'hot bottle'(뜨거운 고무물병)이라고 하여, 끓는 물을 고무 물통에 넣고, 침대 안에 넣고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한국 같이 온돌 구들장이 없는 영국에서는 그나마 그 고무 물병이 으슬으슬한 추위를 이기게 하는 유일한 무기였다.
우리가 살았던 Flat은 추억이 있던 좋은 집이었다.
하지만 주택이었기에 난방비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아픈데 춥기까지 하면 너무 서글프니깐, 난방을 더 하려 하면 이내 비싼 난방비로 부담이 되었다.
아내는 나의 건강을 위해서 좀 더 따뜻한 집으로 이사가고 싶어 했다.
교회에 나오시는 분 중에 복지부 소속의 공무원 한 가정이 계셨다.
엄마가 공무원이었는데, 버밍엄에 국가 연수로 오신 분이었다.
그 분이 사시던 집은 아파트였는데, 넓기도 하지만 중앙난방 시스템에다 난방비가 렌트비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버밍엄에서 둘째로 따뜻한 집이라면 서러울 정도로, 그런 좋은 환경의 집이었고 더욱이 렌트비가 무척 저렴했다.
그 가정이 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어갈 때가 다가오자, 많은 이들이 그 집을 차지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살고 있는 그 주인 마음이었다. 누구를 선택하느냐?는 그녀의 결정이었다.
외국, 영국이란 곳을 살아본 분들을 알겠지만, 아이들 학교 픽업이 하루 일상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아침에 학교 데려다 주고, 데리고 오면 하루가 다 갈 정도로 초등 자녀가 있는 가정은 그 일에 매여 있다.
부모가 직접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도움을 받게 되는데, 대게 그럴 경우, 그에 따른 비용을 지불했다.
그 가정의 경우도,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엄마가 연수 중이다 보니 픽업을 대신 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했고, 이를 위해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 내게 그 일을 좀 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수술 전, 나는 시간이 많았고, 그곳에서 목회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학교가는 학부 학생도 아닌 상태였기에..) 나는 우리 아이들을 픽업하면서 그 집 아들 학교도 가서 픽업을 해 줬다.
그 날, 아이를 데리러 우리 집에 온 그녀가 픽업 비용이라면서 조심스레 돈을 주었다.
난 말했다.
"아이 학교서 데리고 오는 것이 뭐 돈 받을 일이라고, 이리 하세요. 괜찮습니다!" 그러며 사양했다.
그녀는 이를 마음에 두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아프고 따뜻한 집을 구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는 우리를 자신이 살던 집, 다음 세입자로 주인에게 추천을 해 주었고, 우리는 그 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추위에서 해방되고, 나아진 환경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분은 그 후부터 지금까지 연락을 하며 오랜 세월 서로를 위한 기도의 동역자가 되었다.
작은 일에 섬김이 이후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이 된 케이스다.
그런 분들이 있다.
생각나면 행복해지고, 생각나면 더 기도해 주고 싶고, 생각나면 그리운 자들...
나는 섬김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들의 섬김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것임을 알기에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섬김은 섬김을 낳고, 작은 섬김은 더 큰 섬김으로 이끈다.
(* 2005년부터 지금까지 늘 섬기는 분들이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변치 않고 섬기는 분들이 있다. 만날 수 없어 제대로 인사 한번도 못했지만, 그들의 섬김이 가슴 깊은 곳에서 진실로 우러나는 사랑인 것을 알기에, 난 그분들만 생각하면, 언제나 더 정신차려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