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로 뿌연 밤거리를 달려 장례식장으로 향하는 내내 영도의 장례식 날 옥림리 산 위에 머물던 유난히 노랗고 컸던 반달이 기억났다. 그때 밤하늘은 참으로 맑았고 그렇게 짙은 노랑의 달이 낯설기만 해서 성급히 짐을 챙겨 장례식장으로 가면서도 나는 잠시 멈춰 멍하니 달을 보았었다.. 네가 그리로 갔구나. 그래서 한사람의 영혼이 덧입혀지니 저렇게 짙은 색으로 빛나는구나.. 그때 다시 차를 몰면서 나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는 표면적인 일정과 정신없는 그 와중에 드러내지도 못할 감정 사이의 공간이 다행히도 눈물샘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몇달이 지나 이제 내 친구 어머니 별세로 다시 장례식장을 찾는다.
저녁에야 들려온 상운씨 소식에 나는 부리나케 옷을 챙겨입고 준비를 했다. 코로나로 소란스러운 판국에 장례식장까지 가야겠냐고 엄마는 걱정하셨다.. (엄마, 기쁜 일이라면 나 하나쯤 안가도 되지만 슬픈 일에는 가는게 맞아요.. 그사람이 보여준 친절을 잊을 수가 없어..갔다와야 내 마음이 편해. 나도 상 치른지 얼마 안돼서 그 사람 마음이 어떨지 내가 아는데 어떻게 안 가..) 다행히 김포프랜 멤버중 홍이 데리러 와줘서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작년 시월의 나처럼 상운씨도 상복을 입고 있었고 조문 온 우리를 맞이했다. 나는 그때 그들이 했던 것처럼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며 어머님..전 상운씨 친구입니다. 아픈 몸 벗어두시고 이제 편히 쉬세요..그리 맘속으로 인사를 드렸다. 그의 어머니도 암투병 중에 가신거였고 끝자락엔 통증도 모르게 조용히 가셨다고 들었다. 간략히 얘기들어도 환히 알겠을 이 상황, 가족들의 눈물과 정신없이 조문객을 맞는 일정, 발인까지의 모습들이 어떠할지 환히 펼쳐졌다.. 그의 누님에게 고통없이 편히 계실 어머니만 생각하고 위안 삼으시라며 손을 잡았다. 나또한 그런 식으로 마음 다잡고 꾹꾹 슬픔을 눌러왔으니.
막상 상주인 그는 내 손을 잡고는 눈물이 조금 났는가 눈가를 쓱 스치고 마는데 조문을 갔던 나는 그리로 가면서도 그의 앞에서도 또 돌아와서도 어찌 그리 눈물이 나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