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263) 우리 시의 높낮이와 창의적 서정 4-1/ 시인, 평론가 박태일
우리 시의 높낮이와 창의적 서정 4-1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hadbyh/ 밥/이문재
1.
낱말 가운데는 소리 같고 뜻 다른 말이 있다.
이른바 동음이의어다.
뜻 같고 소리 다른 말도 있다.
동의이음어다.
둘 다 재미있는 말놀이 방식을 마련해 준다.
수사법으로 동음이의어법이나 동의이음어법이 가능한 까닭이다.
말무리는 앞뒤 맥락을 빌려 그들을 쓰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런데 원론적으로만 보자면 생각이나 느낌의 부름켜를 키울 수 있음 직한 동음이의어에 견주어
동의이음어는 오히려 사회적 낭비요소가 아닌가.
왼/ 오른과 좌/ 우를 보기로 들어 보자.
둘 다 배워야 할 시간과 노력을 다른 것을 배우는 데 쏟는다면 어떨까.
오늘날 왼/ 오른과 좌/ 우 사이 말힘 관계는 좌/ 우가 훨씬 커 보인다.
토박이말과 한자말 사이 동의이음어의 경우,
한자말이 이겨 토박이말을 아예 사라지게 하거나 말 사이 위계를 굳힌다.
토박이 말은 품위가 떨어지는, 거친 말로 내려앉는 순서가 그것이다.
서양 외래어와 토박이말 사이 동의이음어 관계에서는 이 점이 더 크게 작용한다.
1970년대부터 국문학계에 쓰이기 시작했던 갈래란 낱말이 있다.
서양말 장르와 겨루며 힘을 받아 제법 잘 자라는가 싶었다.
그런데 어느새 다시 사라질 단계에 이르렀다.
말의 위계와 순위는 늘 토박이말에 대한 외래어의 승리와 특권화로 이어졌다.
그런 가운데서 입·눈·피·코·살·똥과 같은, 중요한 토박이말들은 살아 있다.
그나마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밥 또한 마찬가지다.
밥이라 웅얼거리면 마음에 한결같은 소름이 돋는다.
‘ㅏ’ 소리와 입술소리 ‘ㅂ’의 조합이 주는 따뜻함과 편안함,
그리고 낮고 긴 서글픔. 한 시인이 그런 느낌을 찬찬히 그려 주었다.
비록 밥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근대 기계적 시간을 힘들게 배우며 새기며 거듭했던 시계 밥 주기.
시계에 밥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그래도 못 미더워 시계가 가는지
귀에다 갖다 대고 째깍째깍 소리를 들어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궤종시계 바늘이 9시 근처에서
못 올라가는 기색이 보일라치면
서글픔에 먼저 본 사람이 얼른 일어나
까치발을 하고 태엽을 끝까지 감아주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문재, 「밥」 가운데서 (『시와시학』 겨울호, 시와시학사, 2012)
동의이음어를 배우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기껏해야 외래어가 지닌 특권 감각만 키우는 쪽이라면,
그래서 토박이말과 우리에 대한 열패감만 더하게 이끄는 학습이고 앎이라면 불행하다.
삶이란 더 달라지거나 더 나아가는 일이 되어야 할 터.
예술문화가 필요한 까닭 가운데 큰 하나는 바로 그러한 역할을 떠맡고자 한 데 있다.
사회 또한 그 점에 뜻을 같이하고 여러 길로 격려까지 아끼지 않는다.
삶의 고착과 지평 폐쇄에 맞서며 그 위험을 살펴 헤아리게 해 주는 힘,
오늘 이 자리 삶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키워 주는 힘.
시 쪽에서 보자면 타자와 차별화하려는 노력과 창의적 서정이 그런 역할의 최소 요건이다.
< ‘시의 조건, 시인의 조건, 박태일 평론집(박태일, 케포이북스, 2015)’에서 옮겨 적음. (2021. 9.13.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263) 우리 시의 높낮이와 창의적 서정 4-1/ 시인, 평론가 박태일|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