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힘
누구라도 자신의 영혼이 있음은 파악한다. 하지만 자신의 영혼의 속성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현 인류가 영혼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기 떄문이고, 또 검증되는 것만을 진리라고 인정하는 과학적인 사고방식도 한 몫을 한다. 미리 말하지만 자신의 영혼의 속성을 파악한다면, 자신의 삶을 자신이 이끌 수가 있다. 즉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근래뿐만 아니라 늘 세계를 이끈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가진 사고방식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그 이유는 자신도 그들의 사고방식을 살펴서 성공을 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나, 그들이 가진 사고방식은 그들의 정신, 영혼을 활용한 결과일 뿐이다. 문제는 그런 사실은 보지 못하고, 그들의 정신이 드러난 물질부분만을 본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들의 이야기에는 그런 사실은 없다. 그것보다는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 파악해서 자신의 영혼을 할용하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 즉 영혼의 관점에서 파악하라는 말이다. 아니면 변방에서 뱅뱅 맴만 돌게 될 것이다.
여담으로 필자가 겪은 영혼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만히 보면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따르게 하기 위해서 심한 말을 한다. 그래서 듣는 사람이 말을 듣도록 하는데, 처음에 들을 때는 그 사람의 심한 말에 정신을 빼앗기고, 이어서 그 사람의 말에 사로잡혀 그 생각만 계속하게 된다. 그 사람의 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필자가 과거에 조금 했던 한국무용을 배우고 싶어서 문화센터를 찾았다. 초급반, 중급반이 있어서 초급반에 들어갔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서 고민이 되었다. 한 달쯤하다가 강사선생님인데 중급반에 가서 배우면 안되겠느냐고 여쭈었더니 '실력도 안되는데' 라고 생각한 듯 초급반 단원들에게 일른 모양이다. 초급반 단원들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였다. '중급반에 갈려면 우리 다 같이 가야한다'는 등. 다른 말도 있었는데 잘 알아듣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기분 나쁜 그 마음에 필자의 마음이 연결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기분 나쁜 마음을 필자가 계속 웅켜지고 있어서 다른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놓을려고 해도 놓아지지가 않고 그 마음이 필자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왜 그럴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 사람의 말(일종의 에너지이다)이 너무 심해서 그 에너지가 계속 필자를 감싸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이런 경우를 원하고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이럴 경우 말하는 사람의 영혼의 에너지가 점점 나빠진다. 자신의 영혼에 독이 점점 쌓이는 것이다 이것은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그 사람이 전신 마취를 네 번이나 한 큰 수술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런 일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을 듣게 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먼저 독을 품어야 한다. 이것을 어리석은 행위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필자가 벗어나야하는데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안절부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가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영혼이 그런 에너지를 벗어날 힘이 없기 때문이다. 영혼이 힘이 없는 이유는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할 때 자신을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먼저 말하면, 그 사람이 말할 때 필자의 마음이 모두 그 사람에게 가 있었다. 이를 인간의 본성에서 살펴보면, 영혼은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먼저 공감을 한다고 한다. 말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사람에게서 빠져나오는 반감을 한다. 반감은 자신에게 돌아온 상태이다. 이렇게 영혼은 공감과 반감을 계속 되풀이하는데, 이때 영혼이 공감에서 반감으로 확실히 돌아와야 하는데, 공감 상태에서 그 사람의 에너지에 휩싸이면서 반감을 확실하게 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빠져나오는 방법은, 이미 그 에너지에 휩싸인 영혼을 구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영혼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물어볼수도 없고, 또 영혼을 감지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평소 필자가 하던 일을 게속하면서 영혼을 놓치지 않고 살펴보았다. 사흘째 되는 날, 법륜스님의 명상 강의를 듣는데, 순간 법륜스님의 마음에 필자의 마음이 가 닿았다. 법륜스님의 마음이 참으로 흔들림없이 여여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 여여한 마음에 닿는 순간 거짓말 같이 그 에너지에서 벗어났다. 이렇듯 정신은 보이지 않지만 서로 연결되어서 전달된다. 옛 선사들의 이야기에서 순간 '깨달았다'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같은 경우일 것이다. 만약 법륜스님의 그 마음에 연결되지 않았다면 그 에너지를 벗어나는데 시간도 걸리고 힘도 더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것이 줄탁동시로, 줄(啐)과 탁(啄)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 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가장 이상적인 사제지간을 비유하거나, 서로 합심하여 일이 잘 이루어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다음 백과 사전 참조).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 사람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영혼을 점점 더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모르기 떄문에 그렇게 한다. 즉 영혼의 상태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의미이다. 정신은 에너지이다. 자신의 정신이 점점 더 탁한 에너지가 되어서, 결국에는 그것이 자신의 에테르체(동양에서의 기)의 흐름을 왜곡시킨다. 정신은 그 속성에 맞지 않으면, 언제나 독이 되어서 작용하기 떄문이다. 요컨대 다른 사람에게 간섭을 하는 것이 정신의 속성에 맞지 않는 것이다. 필자 역시 어느 순간에 있어서도 자신을 지켜야 한다. 물론 법륜스님처럼 항상 여여하면 좋겠지만, 법륜스님의 경지는 인간의 수준을 넘어선 듯하다. 이렇게 영혼의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그 방법, 첫째, 다른 사람을 간섭해서 자신의 말을 다른 사람이 듣게 할려고 하지 않는다. 둘째, 다른 사람의 에너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지킨다. 영혼의 공감과 반감에서 공감에 빠지지 말고 반감으로 확실히 돌아온다. 셋째, 그럴려면 언제나 자신의 영혼상태를 감지하고 있어야 한다. 넷째,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영혼의 상처, 나쁜 에너지를 정화하기 위해서 명상을 꾸준히 한다. 마지막, 법륜스님과 같은 여여한 분의 강의를 자주 듣는다. 이렇게 영혼이 정화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현실의 깨어있는 상태에서도 자아가 상속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혼은 늘 어려움에 직면한다. 인간이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자아가 상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현실의 삶에서 영혼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모든 존재는 다 같은 존재, 연기되어 있는데 현실에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영혼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불가에서 현실에서의 삶을 꿈과 같은 것이라고 하고 진실은 그렇지 않다고는 하지만, 상속에 들어간 우리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이 현실을 꿈이라고 인식하고 마음을 여여하게 가지라고 하지만, 그것 역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 분(법륜 스님)을 늘 가까이 하는 것이 나의 영혼을 구제하고 치료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문제는 나의 영혼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끝없이 자신의 영혼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요행히 자신의 정신이 온전하게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현실의 삶에서 만나는 암초가 무수히 많기 때문에 헤쳐나가기가 쉽지만은 않다. 세계를 선도하는 사람들의 기행을 기끔 듣는데, 만약 스티브 잡스가 이런 정신의 속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정신을 다스렸다면 그렇게 빨리 생을 마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자에게 심한 말을 한 사람의 경우에도 그렇다. 다른 사람에게 심한 말을 하는 그 독이 먼저 자신을 감싸기 때문에 병이 걸리는 것이다.
마지막 영혼이 정화되면 '어떻게 이상을 실현할까'를 살펴보면, 영혼이 정화되면 자아가 현실에서 점점 더 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상에서 벗어난 자아는 당연히 어떤 일을 해도 잘한다. 원래 자아는 상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신적인 존재이기 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