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릭. 그는 미국 오리건 주에서 목재를 다듬는 일을 하며 지극히도 평범히 살던 남자였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시련이 닥쳤다. 여느 날처럼 목재를 다듬다 왼손 중지와 약지의 각 첫마디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는 잘려진 손가락을 가지고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중지 봉합에는 6만 달러(한화 6천 6백만 원), 약지 봉합에는 1만 2천 달러(한화 1천 3백만 원)가 든다고 했다. 이에 릭은 약지만 봉합하고서 병원을 나섰다. 그가 약지만 봉합한 데에는 그가 유달리 로맨틱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중지 봉합에 필요한 돈과 보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약지 봉합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중지에 골무를 끼고 다시 일을 나갔다. 열심히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중지도 봉합할 수 있으리라.
릭의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약 5천만 명의 인구가 의료보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마이클 무어의 ‘식코’에서는 의료보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5천만 명의 미국인중 절반은 의료보험에 가입을 할 수 없어 병든 사람이라고 했다. 나머지 절반은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만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병들었다. 한 아이의 부모는 아이의 양쪽 귀가 청력을 점차 잃어가자 이를 치료할 수 있도록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한쪽 귀로도 충분히 들을 수 있으니 한쪽 귀의 치료비만 보상하겠다고 했다. 18개월 딸을 가진 또 다른 부모는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자 급히 병원으로 갔지만 진료를 거부당했다. 그 이유는 해당 병원이 아이의 부모가 가입한 보험사와 다른 계열의 병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아이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반면 유럽 국가에서는 적어도 돈 때문에 병원을 가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아프면 병원에 갔고, 진료를 마치면 교통비를 병원에서 지급 받아 집에 돌아갔다. 아프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아픈데도 치료를 받지 않으려는 사람은 없다. 형편만 괜찮다면 아주 작은 생채기에도 국내에서 규모가 큰 Big 5 병원에서 치료받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따라서 시민 각자는 건강의 주체이며, 시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것은 국가에게 있다. 의료계 권익단체의 밥그릇 챙기기, 제약회사와 인명보험 회사들의 탐욕, 그리고 그들의 로비에 넘어간 정치권 이 삼자의 단합은 현재의 미국식 민영의료보험제도를 만들었다. 이는 메디케어(노년층 의료보험)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험)를 제외하고는 각자 알아서 의료보험을 해결하도록 했다. 결국 중산층 서민은 높은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했고, 의료보험사는 각종 질병에 취약한 계층의 가입을 기피하거나 지급률을 낮추면서 수익을 챙겼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 제도가 18개월의 아이를 죽였고, 릭의 중지 손가락을 잃게 만들었다.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17년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경감시키고, 정체돼 있는 보장률을 OECD 수준으로 향상하기 위한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케어’가 시행 2년을 맞았다. 이 제도의 보장성 강화 정책의 핵심 기조는 의학적 필수의료의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하고, 미흡한 공공의료를 확충하며, 재난적 의료비를 지원하는 목적에 있다. 그러나 여기엔 아직도 풀어야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 상급종합병원 쏠림현상 심화, 국민건강보험 재정 악화 및 의료 공공성 확대 미진, 불충분한 적정수가 등의 문제다. 남아있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건강의 주체인 우리는 남의 일 보듯 하면 안 된다. 국가가 책임을 진다고 해서 건강의 주체인 우리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절대 유럽을 따라갈 수 없다. 우리는 한 배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