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문인들은 정말 착하다. 서울 혹은 주변부 도시의 작가들이 찾아와 민폐를 끼쳐도 내치지 못한다. 술 사주고 밥 사주고 차표까지 끊어주는 시골 문인들, 그럴 양으로 서울에 오르면 감자탕에 소주 한잔을 겨우 얻어먹지만 어떤 경우에는 서울에서조차 술값을 덤태기쓰고 빈털터리로 하행한다.
변방의 문인들은 숲의 향기와 강의 푸르름, 세상을 뜨지 않는 새들과 어울려 산다. 특히 전남 순천작가회의 사람들의 마음씨는 순천만처럼 맑고 향기로워서 술자리도 정겹고 품평회도 진지하다.
도대체 싸울 줄 모르는 사람들, 아마도 밥그릇(지면〈紙面〉)과 밥상(문학상) 따위에 마음 뺏기지 않는 주변 환경과 청정한 생태계 탓이리라.
신경림, 민영 시인 등 키 작은 시인들이 몇 있다. 키만큼 조용한 성품의 시인들이지만 시는 결코 작지 않다. 백화점도 대형화 추세, 자동차도 대형 자동차, 냉장고도, 여자도 점점 큰 것만 찾는 추세이다. 탐욕의 대형 행렬에 밀린 소형의 행렬, 생태적으로도 작아야 오래 살며 작은 것의 소박한 정이 사람을 살리고 있음을 모르는 괘씸한 세상이다.
박두규 시인도 키가 작다. 키 작은 몸매에서 풍기는 온아함과 따뜻함 탓에 시인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이(시인이든 교사든 교육운동가든) 모인다. 현재 순천 작가회의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시인은 지난해 겨울 '영호남 문학인대회'의 실무책임을 맡아 작가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작가의 역량과 삶의 성실함이 결코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살면서 보여주고 있다.
박두규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당몰샘(실천문학사)'을 펴냈다. 시인은 후기(後記)에 이렇게 적었다.
"탐욕스러운 자본과 문명의 세월속에서, 이 훼절(毁節)한 세월 속에서 자꾸 삶이 낯설어지고, 사람이 낯설어져서 나는 그렇게 떠나간 것들을 붙들고 노래했나 보다."
시집을 펴낸 기쁨보다 착잡함에 허탈했다는 시인은 "이 허탈함은 지나가 버린 세월을 매듭지은 것보다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세월들에 대한 전망의 부재 때문이리라"고 했다.
시인의 역사적, 시대적 부채의식은 끝간 데를 모른다. 지리산과 무등산이 혹은 조계산이 그렇게 다가오고 자본의 칼날이 횡행하는 세상 안팎에서 사람다움을 주장하다 그렇게 쪼들리는 것...
죽음과 증오와 저주로 단풍지고 꽃피어나는 남녘 산을 시인은 오른다. 목젖까지 차 오르는 내면의 혼란을 씻기 위해 은적암을, 쌍계사 마애불을, 미황사를, 망해사를 찾는다.
산에 오르면 내면의 혼란보다 육신의 목마름이 다급하다. 하지만,
구례 장수 마을 당몰샘에 가면
대숲 푸른 바람도 서늘히 떠서
그 청정을 어서 퍼가라 하건만
샘 가의 바가지 하나
아무리 물을 퍼 담아도 담아도
물이 담아지지를 않는구나.
샘 가의 살구꽃 무더기도 우습다는 듯
꽃잎 몇 개 내리고서 새침을 떤다.
아흔셋 허연 할머니는
푸르딩딩한 어린 상추를 한 소쿠리 씻더니
당몰샘 한 모금 훌쩍 마시고
돌담길 돌아 총총 사라진다.
아무도 없는 샘에서 슬슬 눈치를 보다
다시금 물을 떠보건만
아, 끝내 물 한 바가지를 퍼올릴 수 없었다.
<박두규 시인의 '당몰샘' 전문>
아흔 셋 노인은 한 모금 훌쩍 마시고 사라졌지만 마흔 여섯의 시인은 빈 바가지만 퍼 올렸다. 생의 이력은 그렇게 편차를 보였다.
새 한 마리 날아왔다.
사람은 내 안에서조차 가버렸는데
버릇처럼 또 창문을 열었구나.
어리석음이여
속살이 아리도록 눈부신 햇살도
毁節한 세월도
이 아침을 맞아 그대로 살건만
내 어느 구석 탐욕처럼 살아 있는
케케묵은 그리움 하나
<시집 '당몰샘' 가운데 '그리움' 전제>
착한 시인은 훼절한 시대에 치여 괴로웠다. 이제 털어 버리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운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만 괴롭다고 했다. 어쩌지도 못하는 세상, 어쩔 수 없는 인생에 시인은 지쳤나보다. 매듭짓고 싶다는 시인의 간절함, 하지만 매듭은 지어도 엉키고 털어도 먼지는 난다.
우리 인생의 끝에는 죽음이 있고 후회가 있다. 혈기 넘치던 젊은 시절의 칼칼함이 얼마나 서툰 그리움이었는지, 허랑방탕(虛浪放蕩)의 행적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깨달으며 인생을 에돌아왔음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직경으로 오는 인생은 인생이 아니다. 그것은 노름이다.
시인들의 시가 자꾸 선승을 흉내내며 늙어버리고 있음을 본다. 자책도 깊으면 자학이 된다. 이제 침잠(沈潛)의 고요를 깨트리는 새의 비상이 그립다. 인생은 기필코 실패한다. 그리고 실패해야 인생이다. 시인이 자꾸 산으로 오르면 세상은 시정잡배가 독차지한다. 산은 스님들께 맡기고 이제 저자거리로 다시 하산해 실패를 거듭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