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의 꿈 - 셋
식사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 식사 시간은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고, 식사 시간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맨 처음에야 친한 친구, 보고 싶었던 친구와 자리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자리는 바뀌고 엉뚱한 사람들이 이야기 꽃을 피우는 걸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을 솟아오르는 에드벌룬을 보면서 지난날 잊혀졌던 일들이 하나하나 솟아오르고 있었다. 교사의 모습이 사라지고, 선생님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어도 이곳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6년동안의 시간을 보낸 곳임을 생각하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시간이었다. 풍기초등학교 관악부의 연주가 식전공개행사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어둠이 깔리려면 아직도 한참을 있어야 한다는 시간임에도 장내 정리는 잘 되고 있었다. 김하리 시인의 축시낭송이 시작되었다. 어쩌면 한복이 그렇게 아름다울까를 생각하게 했다. 그 옛날에 그리워하던 선녀가 바로 오늘 이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서 내려 온 것이 아닐까라는 착각을 하게 하였다. 시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분위기가 그렇게 좋았다는 것이 선배님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었다. 이어서 테너 가수인 황재균 동문이 오!솔레미오와 청산에 살리라 두 곡을 연속으로 노래했다. 졸업생 수가 18,385명이나 되다 보니 정말로 훌륭하게 자기 터를 마련한 분들이 적지 않았음을 보면서 기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초대가수 한수경이 나와서 애수와 사과꽃 향기 두 곡을 불렀다. 두 곡의 가사를 김하리 시인이 작사한 것임을 아는 사람은 몇 사람 없었다. 그야말로 감개무량 그것이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어릴 때, 성장기에는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생각이다. 통학거리가 8km나 되는 사람들도 있었고, 언제나 식사 시간이 정확하지를 못했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물을 마셔야 하는 시절이었다. 끼니 걱정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됐을까를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다. 어떤 친구가 농담을 하기를 그 당시 이를 닦지 않은 사람이 많았다는 이야기, 황금이빨의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그러나 그 당시는 거의가 그런 사람들이었다. 지금은 아닌 척 하지만 다 그랬다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는다. 양말을 벗으면 까만 발이 있었고, 9월 어느날 냇가에서 씻고 나면 그 다음 5월까지는 물맛을 볼 수가 없는 그런 시절이었다.
- 식당 안에서는 원로들의 식사가 정담 때문에 길어지고 있었다.
- 경북항공고등학교에서 제공한 에드벌룬
- 축시를 낭독하는 김하리 시인.
- 김하리 시인의 감정이 벅찼나보다, 낭독의 순간이 끊기고 있었다.
-축시 낭송에 이어 터진 불꽃놀이 - 폭죽이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계속되는 폭죽이 쉼없이 오르고, 터지고, 꽃이 되었다.
-전야제 행사를 진행하는 사회자들.
-김하리 시인이 작사한 노래를 가수 안수경 양이 열창하였다.
- 가수 안수경의 풍기 연가를 열창 - 작사자는 시인 김하리.
오늘 저녁 전야제의 하이라이트인 우리 모교의 변천사를 시인 김하리 동문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였다. 이 종목은 배규택 동문이 신경을 많이 썼다. 10여분동안 그 많은 사람들은 숙연한 분위기였다. 그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는 내일을 희망차게 펼치도록 했고, 다시 한번 애향심과 애교심을 확인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이런 행사가 필요하다고 했구나. 흐트러졌던 마음들을 다시 모을 수 있는 계기가 바로 개교 100주년 행사였다. 18,385명의 졸업생들은 우뚝솟은 사람은 없어도 호락호락하게 넘어 갈 사람 또한 없었다. 지난 달 개교 100주년을 맞았던 경북의 어느 학교처럼 졸업생들이 화려하지는 않아도 꿋꿋하게 모교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결코 흔들림이 없었으니 다행이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행사를 준비하면서 사무국은 고생을 많이 했다. 나는 옆방에서 이들의 모습을 9개월동안 확인했기 때문에 잘 안다. 그래도 조금의 실수도 용서치 않았고, 그들은 죄인처럼 잘못을 빌어야 했다. 사실은 우리 동문들 가운데는 별별 사람이 다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도 집행부에서는 당하고 있었다. 내가 화가 나서 왜 그러느냐고 나서면 큰일을 위해서라고 했다. 큰일, 그것은 오늘과 내일의 풍기초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초대가수의 순서가 되고 있었다. 초대가수 안수경양이 시인 김하리 동문이 작사한 '풍기연가'를 열창하고 있었다. 관객이면서 동문이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분위기 때문이었다. 오늘 저녁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지금 흥분하고 있었다. 자기가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체 그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그 흥분은 희망적인 흥분이었고, 자랑스런 흥분이었다.
폭죽이 터지지 시작했다.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의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서는 불꽃은 표현 할 수 없는 희망이었고, 자랑이었고, 사랑이었고, 행복이었고, 아픔이었고, 고통이었고, 그리움이었다. 우리 말이 지구상에서는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는 해도 이럴 경우엔 모자람이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서서히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운동장 분위기는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밤에 풍기에서는 뭔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설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오늘 이 저녁 풍기의 술집이란 술집, 그리고 노래방, 여관, 모텔, 찜질방은 물론, 펜션까지 빈틈이 없을 것이다. 엄청난 하루밤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밤이 흐트러지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을 했다. 그것이 바로 풍기인들의 자부심이고, 긍지라고 믿기 때문이다.
- 또 터지는 폭죽에 밤하늘은 놀라고 있었다.
- 전야제 행사가 끝나고 다시 기별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48회 동문들이 모인 권재순 회원의 팬션 식당.
-세월은 갔어도 사람들은 모두 예뻤다.
-모닥불이 타오르니 분위기는 점점 익어가고 있었다.
-사과나무 장작은 향기도 좋았다. 밤공기가 시원한 권재순 회장의 팬션에서.
우리 48회 동문들은 모두 권재순 회장이 마련해 준 펜션으로 자리를 옮겼다. 조용하고 한적한 그 곳, 백1리 입구인 이곳은 철길이 바로 보이는 곳이었다. 그 예날 우리는 이곳에서 기차를 탔고, 이곳에서 기차를 내렸다.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있음은 천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혼자서 웃음짓기도 했다. 45년여 전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자수고개를 넘어 바로 이곳, 펜션이 들어선 이곳에서 수박서리를 했었다. 힘들게 따서 들고가 당시 풍기중학교 운동장에서 수박을 깨면 허옇게 부서지는 수박 속을 보면서 안타까워했던 그 날 밤의 일들이 왜 오늘 이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일까?
준비된 음식을 먹었다. 산나물 부침개가 가장 인기 있었다. 맥주보다는 막걸리가 좋았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 이런 음식들이었다. 감자떡이 있었다. 쫄깃쫄깃한 그 맛, 그 맛을 이 자리에 모인 우리 동문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정기총회가 시작되었다. 밤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정기총회를 하는 것도 보기드문 현상이지만 한 사람도 반대하지 않은 것도 보기드문 일이라고 생각했다. 회장인사에 이어서 결산보고와 감사보고가 있었다. 회칙에 따라서 임원개선 순서가 되었고, 조경덕 동문이 회장으로 장석호 동문과 김영자 동문이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조경덕 동문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도 불통이었다. 난리가 났다. 그러나 나는 한참을 그냥 두었다. 그는 틀림없이 자기의 차안에서 이런 모습을 상상하며 즐기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밤하늘의 별들이 졸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경덕 동문의 차를 찾았다. 역시 그곳에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나가서 수락하라고 권했다. 동문들 모두가 환영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결국 총무는 내게 넘어왔다. 그러나 예상을 했던 일이기 때문에 당황스럽다거나 원망스럽다거나 창피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회칙 개정이 있었다. 제1조 은풍회 삽입, 정기총회는 7월 둘째 주 토요일로 하자는 것으로 통과되었다. 회의를 막 끝내려는 순간에 MBC취재진이 들이 닥쳤다.
- 좌로 부터 조경덕, 송재호, 김태연, 이용무 동문의 모습
- 이교인 회원의 지휘로 노래가 시작되자, 회원들은 모두 그 옛날의 어린이들이 되고 있었다.
서둘러 모닥불을 피웠다. 회원들이 분위기를 이렇게 잘 맞추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취재진은 김인순 회원과 권재순 회장과 인터뷰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불을 피웠고, 은박지에 싼 감자와 돼지고기를 모닥불에 묻었다. 이교인 동문이 서둘러 분위기를 잡기 시작했다. 손뼉에 맞춰서 고향의 봄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둠, 모닥불, 별, 둥그렇게 모습을 보이는 산, 지치지 않은 친구들의 모습이 한폭의 그림이었다. 취재는 계속 되었다. 30일 저녁 5시 30분에 10분동안 방영하기 위해서 네 사람이 1박 2일의 취재를 나선 것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수월한 것이 없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았는데도 그 속에는 엄청난 수고와 피로와 어려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교 100주년을 위해서 수천명의 동문들이 보낸 성원의 결과가 이들의 취재로 잘 나타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주최측과 취재측의 호흡이 맞을 때 결과는 좋아지게 된다는 사실을 PD에게 말했다. 그는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믿기로 했다.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분위기 띄우느라고 기차가 내려오고 있었다. 회원들은 숙연해 지기 시작했다. 감자와 고기가 잘 익었다는 누군가의 소리에 분위기는 다시 돌변했다. 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아침 준비를 위해 내려왔다. 잠을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모두의 마음은 즐거웠다. 모두의 마음은 사랑이었다. 모두의 마음은 희망이었고, 자랑이었다.
- MBC취재진이 인터뷰하는 동안 이용무 회원은 그쪽을 보고, 이해수 회원은 노래하고, 최남용과 장병욱은 정담을 나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