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始制文字(시제문자)하고 [22] 乃服衣裳(내복의상)이라(충남본부)
[21] 始制文字(시제문자)하고 : 비로소 문자를 지었고
[22] 乃服衣裳(내복의상)이라 : 이에 웃옷과 치마를 입었다.
始(비로서 시) 制(지을 제) 文(글월 문) 字(글자 자, 시집갈 자)
乃(이에 내) 服(입을 복, 옷 복, 따를 복) 衣(옷 의) 裳(치마 상)
[21] 始制文字(시제문자)하고 : 비로소 문자를 지었고
上古에 無文字하여 結繩爲治러니 伏羲始造書契하여 以代結繩하며 其臣蒼頡이 觀鳥跡而制字하니 爲文字之始라
상고시대에는 문자가 없었으므로 노끈을 묶어 표시하여 정치를 했었는데, 복희씨가 처음으로 서계(書契:글자)를 만들어서 노끈을 묶어 표시하던 것을 대신하게 하였으며, 그 신하 창힐이 새의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창제하니, 이것이 문자의 시초이다.
[22] 乃服衣裳(내복의상)이라 : 이에 웃옷과 치마를 입었다.
上古에 無衣裳하여 取木葉皮革以蔽體러니 黃帝爲冠冕衣裳하여 以肅觀瞻하고 以別等威하니 爲衣裳之始라.
상고시대에는 의상이 없었으므로 나뭇잎과 짐승의 가죽을 취하여 몸을 가렸었는데, 황제(黃帝)가 관면과 의상을 만들어 보기에 엄숙하게 하고 신분의 등위를 구별하였으니, 이것이 의상의 시초이다.
[해설]
앞 구절 龍師火帝와 鳥官人皇 당시만 하더라도 문자가 없었던 선사시대(先史時代)였으며, 풀을 엮거나 짐승의 가죽을 벗겨서 사람의 치부를 가리고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할 뿐이었다. 고대 인류의 문명은 문자를 사용하고 의복을 입으면서부터 급격히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으므로 여기서는 이러한 문자의 창제와 의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始制文字는 비로서 문자를 짓게 되었다는 뜻으로, 전해오는 말로는 黃帝 때 창힐(倉頡)이라는 신하가 새의 발자국을 보고서 글자를 지은 것에서 기원한다고 한다. 대개 고대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까지는 그림과 기호(부호)와 문자의 세 단계를 거치는데, 역의 음양과 팔괘는 인류 최초의 부호라 할 수 있다.
주역 계사전에도 '상고에는 노끈을 매어서 다스리더니, 후세에 성인이 서계로써 바꾸어 백관이 이로써 다스리고 만민이 이로써 살피니 대개 저 쾌괘(夬卦)에서 취하니라(上古앤 結繩而治러니 後世聖人이 易之而書契하야 百官이 以治하며 萬民이 以察하니 蓋取諸夬니라)'고 하였다.
결승이치(結繩而治)는 문자가 없을 당시에 노끈을 꼬아가면서 큰 사건은 크게 매듭짓고 작은 사건은 작게 매듭지으며, 기결(旣決)은 옭매고 미결(未決)은 헐겁게 하여 정치를 하였던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람의 기억력은 한계가 있고 사람과 사건이 점차 많아져 복잡다단한 사회가 되면서 문서로 기록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므로, 서계(書契, 문자의 시초로 나무에 새긴 글자를 말한다)를 만들게 된다. 주역의 택천쾌 夬卦는 다섯 양이 하나 남은 마지막 음마저 결단하는 괘인데, 곧 서계로서 법령을 제정하고 의사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문자를 살펴보면 文은 부모이고 字는 그 자녀에 해당한다. 즉 글자의 기본 바탕이 되는 것을 '글월(그림을 그리다는 뜻이 담겨 있다) 문'이라고 하고 文을 조합하여 만든 글자(그림이 낳은 자식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를 字라고 한다. 후한 때의 학자인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지어 한자의 구조체계를 육서(六書)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始制文字와 마찬가지로 주역의 계사전에서는 '황제와 요순이 의상을 드리워 천하를 다스렸으니, 대개 건괘와 곤괘에서 취한 것이다(黃帝堯舜이 垂衣裳而天下治하니 蓋取諸乾坤하고)'고 하였다. 황제와 요순 당시만 하여도 나뭇잎을 엮어서 앞을 가리다가, 짐승도 가죽이 있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마땅히 몸의 치부를 가려 예를 지켜야 한다고 해서 옷을 지어 입었다. 대개 하늘은 검은 색이며 양은 한 획이므로 윗도리는 검은 색으로 둥글게 한 통으로 해 입고, 땅은 누런색이며 두 획이므로 아랫도리는 누런색으로 갈라지게 해서 두 쪽으로 해 입었다고 한다.
※창힐 [蒼(倉)頡]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제왕인 황제(黃帝)의 사관(史官).
최초로 문자를 창제한 사람으로 전해진다. 태어날 때부터 성덕(聖德)이 있었는데, 자라서 새나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문자를 창안하여 그 때까지 새끼의 매듭으로 기호를 만들어 문자 대신 쓰던 것을 문자로 고쳤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전설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이고, 창힐도 실재의 인물은 아니나 새끼의 매듭을 이용한 데서 문자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는 전설은 주의할 만한 일이다. 이 전설은 한(漢)나라 때 이미 전해져 있었고, 창힐이란 이름이 붙은 서적명이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