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을 통해 우리는 미약한 잔영이 그 진정한 모습으로 신적 근원세계의 일부분이 되어 신적 근원세계에 합쳐져 있음을 지각하게 됩니다(철학 우주론 종교, 2018, 26)."
위 문장이 말하기를 직관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미약한 잔영이 신적 근원세계에 합쳐져 있음을 지각한다고 하였다. 살펴보면 미약한 잔영이란 신적 근원세계에 합쳐진 우리( 개개의 존재)의 모습이다. 즉 우리 모두는 신적 근원 세계에 합쳐져있는데, 그 잔영을 직관을 통해 파악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직관이 이루어 질려면, 먼저 자신이 신적 근원세계에 합쳐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직관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 신적 근원세계에 합쳐진 자신의 모습도 파악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이 직관이 일어나야 하는데, 직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직관이 일어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질문이다.
'다음 백과사전'에 따르면 '오랜 시간에 거쳐 관찰된 많은 사실들을 조직화하고 통합함으로써 빠르게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나와 있는데, 이 방법은 자연과학적인 방법이다. 오로지 인간 외부에서만 보는 시각이다. 반면 슈타이너는 인간의 내부 정신에서 직관을 파악한다. 두 방법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위 자연과학적 방법에는 오랜 시간에 거쳐 많은 사실들을 조직화하고 통합하는 존재가 누구인지 나와 있지 않다. 누가 이렇게 하는가. 이렇게 하는 존재는 개개인의 정신이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정신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직관은 일어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위와 같은 '정보'를 읽으면 이해는 하는데 , 문제는, 나는 그렇게 안된다는 것이다. 지식 정보화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인 창의 -인성교육이 안되는 이유도 같다. 이런 정보로는 인간 내부의 정신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요컨대 정신이 해야 하는데, 정신이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이것을 지적하고 정신의 중요성을 말한 사람이 '루돌프 슈타이너'이다.
돌이켜 보면 이것을 필자가 학교(초, 중,고)를 다니면서 항상 궁금해 했던 것이다. '그래, 네가 하는 말은 알겠어, 그런데 나는 안돼.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거의 모든 교과서 등에서 이런 상황을 겪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현장에서 초등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같은 경우를 수도 없이 겪었다. 슈타이너 공부를 하면서 그 이유가 정신을 배제했기 떄문이라는 것을 꺠달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정신을 배제하는 상황이 현 인류의 관점이다. 비약하면 이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정신이 보이지 않아서 드러내서 말할 수가 없어서 스스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필자가 경험한 여담이다. 필자의 아파트 현관 번호키를 누가 자꾸 눌러서 CCTV를 설치했다 우연히 CCTV를 봤는데, 그 날 배달받기 위해서 내놓은 한살림 물품 상자 3개가 없어졌다. 그리고 청소하는 아줌마가 가지고 가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 오래 전에 청소하는 아줌마가 한살림 물품 상자에 청소도구를 담은 것을 보았지만, 꼭 필요해서 가지고 간 듯해서 보고도 못 본 척했는데, 이번에는 청소 아줌마가 고의로 가져 간 것이다. 왜냐하면 한살림 물품 배달시간이 10시 경인데 배달 바로 전쯤에 상자를 가지고 갔기 떄문이다. 그러면 배달상자가 없는 것을 필자가 확인하지 못할 것이고, 또 배달하는 사람은 상자가 없나보다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청소 아줌마가 한 살림 배달시간을 파악하고 가지고 간 것이다. 그래서 배달이 오기 전에 빨리 찾아 놓기 위해서 청소아줌마를 찾아서 뛰어 내려 갔다. "아줌마 상자를가지고 가면 어떻게 해요. 아, 난 상자가 필요없는 줄 알고 가지고 왔는데." 필자가 "빨리 갖다놓으세요." 하고는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아줌마가 자세히 관찰되었다. 에테르체는 평범하게 흐르는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스트랄체였다. 아스트랄체가 발달하지 못한 듯, 마치 구름이 여기 저기 뭉친듯 흐릿하고 오리무중으로 정돈되지 않아 보였다. 아스트랄체가 흐릿하다는 말이다. 슈타이너가 한 말, '도벽이란 아스트랄체가 발달하지 못했기 떄문이다'라는 말이 순간 머리를 쳤다. 아스트랄체가 발달하지 못해서 다른 사람 물건과 자신의 물건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의 뜻을 구체적으로 경험하지는 못했는데, 이번에 경험한 것이다.
아스트랄체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아스트랄체는 감정체이고 영혼의 바탕체이다. 아스트랄체는 영혼이 하는 일을 잘하도록 독려하는 존재이다. 예를 들어 내가 사랑하는 감정을 내면, 아스트랄체는 그런 감정에 놓여있다. 그러면 영혼은 자신이 하는 일에 적극적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이런 감정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인간은 3세까지 자아가 의식적이 되지 않는다. 이 말은 3세까지는 주위 모든 존재를 그대로 모방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주위 존재가 가진 감정을 그대로 자신에게 이식하게 된다. 예컨대 이 시기에 사랑을 받았다면, 아이의 무의식에 사랑의 감정이 내재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정신은 사랑, 경외심, 존경의 감정으로 문을 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 놓여있을 때 정신이 역할을 해 줘야 하는데, 아스트랄체의 감정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정신이 자신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반대의 생각도 가능하다. 정신이 역할을 하지 못하면 위의 경우처럼 다른 사람 물건과 자신의 물건을 구별하지 못한다. 구별하지 못한다는 말은 지식으로는 구별하는데, 그것을 자신의 의지로 관철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즉 아스트랄체가 발달하면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의지를 내어서 갖고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세 번째, 아스트랄체의 감정이 거의 무의식, 잠재의식의 감정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자신의 아스트랄체 감정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3 세까지의 주위 환경의 감정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 떄문에 현실에서 정신의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즉 청소아줌마가 한살림 상자를 가지고 가면 청소 아줌마의 정신이 발달하기는 어렵다. 도벽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이 발달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정신과학적 요소의 정도에 따른 삶을 살아가기 떄문에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직관이 나와 주어야 한다. 요컨대 현실에서 볼때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는 정신의 안내가 분명있어야 한다.
네 번째, 아스트랄체를 어떻게 발달시키는가? 정신은 존경, 사랑,경외심이 근간으로 아스트랄체가 그런 감정을 가지면 발달한다. 나아가 진, 선, 미와 같은 감정을 가지면 더욱 좋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에서 짜증나는 일과 힘든 일을 겪어서 그런 감정을 갖기가 쉽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가지면 자신만 손해이다. 현실에서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인데, 또 자신이 나락으로 떨어져도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정신과학적으로 말하면 아스트랄체가 사랑, 경외와 같은 감정, 진, 선, 미와 같은 감정에 놓이면, 아스트랄체는 정돈이 되고 환한 빛을 낸다.
따라서 청소아즘마가 그런 일을 하면 할수록 청소아줌마의 아스트랄체는 점점 더 어두워지고 빛을 잃는다. 자신의 정신이 망가지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만든다'. 또 '모든 일은 인연과보이다'란 말은 진리다. 그래서 매 순간 자신에게닥친 일을 받아들이고, 또 나아가 정신의 속성에 어긋나는 일은 멀리해야 한다.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다음은 정신이 발달하는 상황, 각 정신과학적 요소의 역할이다.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자아가 상호 협동해서 정신이 드러나는데, 이를 우리는 '지혜'라고 말한다. 먼저 에테르체가 활성화되면 에테르체는 이미지, 상으로 드러난다. 이때 아스트랄체가 에테르체를 독려하면 에테르체가 보여주는 상을 물질로서 이해할 수가 있다. 이것이 대상의 정서이다. 그리고 이것이 아스트랄체가 보여주는 영감인 것이다. 나아가 아스트랄체가 발달해서 의지를 내면 자아를 만난다. 이때 정신세계에 연결된 자아가 가져오는 것이 직관이다. 어떤 직관이든 우리가 의지를 내야만 가져온다. 이것이 소위 우리가 말하는 자발성이다. 모든 학습은 자발성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자아가 직관을 가져오기 떄문이다. 이를 우리가 '학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상에서 영감으로 영감에서 직관으로 나아가는 것이 정신의 발달이다. 창조는 직관이 아니고 직관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따라서 창조가 직관에서 나아가야 하므로 창조의 어려움을 우리는 다소 짐작할 수가 있다. 이 모든 작업이 정신이 발달해서 이루어지므로, 자신의 정신을 얼마나 발달시켜야 하는지 우리는 파악해야 한다. 먼저 에테르체의 발달을 위해서는 올바른 습관을 가져야 하고, 아스트랄체는 사랑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자아를 위해서는 스스로 의지를 내어야 한다.
' 오랜 시간에 거쳐 관찰된 많은 사실들을 조직화하고 통합함으로써 빠르게 이해하는 능력'은 이런 정보를 읽어서는 얻을 수가 없다. 오로지 자신의 정신과학적 요소를 발달시켜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정신을 늘 관찰해서 자신의 정신이 어떤 상태에 놓였는지 살펴야 한다. 다른 사람이 그런 감정을 전해준다고 해도 스스로 그 감정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해주는 그 사람의 정신이 그러므로 그 사람은 점점 더 어려움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늘 잘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