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영산성지
- 언 제 : '16.06.27 (월)
- 장 소 : 전남 영광군 백수읍 장산로
- 날 씨 : 맑음
소소한 가을에도 이곳을 찾아도 좋지만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해안 바람을 타고 가다보면 어느덧 영광의 오후엔 낮은 햇살을 업고 서쪽으로 붉게 물들어가는 해무리따라 바다길따라 산길따라 이미 한번 시들어 버린 해당화 꽃도 볼 수 있는 해안도로에서 나만의 꿈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영광은 "불갑사"와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부용루에서 석가모니의 일생을 조각한 걸작을 감상한 후 일몰을 시간에 따라 "백수 해안도로"를 향하여 가는길은 어느덧 평화로운 느낌이 감도는 "원불교 영산성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곳 "원불교"는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 영촌마을에서 태어난 소태산 박중빈(1891~1943)이 창시한 종교로 세계에 500여개의 교당과 100만 신도가 있다고 하며, 영산성지인 이곳에는 대종사의 생가, 기도터인 삼밭재, 마당바위, 대각을 이룬 노루목, 제자들과 함께 바다를 막아 이룬 정관평 방언답 등이 분포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영산성지를 한 바퀴 돌아보니 원불교의 발상지로서 소태산의 탄생가ㆍ옥녀봉ㆍ삼밭재 마당바위ㆍ구호동 집터ㆍ귀영바위 집터ㆍ선진포 입정터ㆍ노루목 대각터의 만고일월비ㆍ정관평 방언답ㆍ방언공사 . 제명바위ㆍ구간도실터ㆍ구인기도봉 . 영산원 대각전ㆍ영모전ㆍ영산선학대학교ㆍ범현동 이씨재각 등의 사적지가 있습니다.
"옥녀봉" 탄생가 바로 뒤편에 있는 산봉우리입니다. 소태산이 7세경 천지자연에 대해 의문을 품고 구름을 잡기 위해 옥녀봉에 올라 갔으며 산 아래 마을에서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보고 의심을 풀기도 했던 곳으로 특별한 사람은 누구나 어린시절부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랐나 봅니다. 참고로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봉우리 정면에 새겨진 원형의 "원불교 일원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잘 다듬어져 있는 파란 잔듸를 보며 골프채라도 들고 서있고 싶을 정도로 풀들이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으며 난 이런 따뜻한 햇볕아래 서있는 풀잎에 내 그리움을 보이며 춤을 추자고 해보니 어느새 풀잎은 따순 바람에 산들산들 예쁜 미소로 따스한 손길로 아름다운 웃음으로 나의 그리움을 녹여 주니 행복한 날이 되어가는 줄도 모르겠습니다.
이곳 "원불교 창립관"은 소태산대종사가 탄생하여 성장하고 구도과정 끝에 마침내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크게 깨친 후, 9인의 제자들과 함께 저축조합, 방언공사, 법인성사 등 교단의 초석을 다진 기록이 전시되어 있는 곳이라고 전해집니다.
"운수정"에 앉아 연못에서 잉어들의 춤사위를 보며 어찌보면 인생은 자기 자신을 찾아 가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삶이란 내일을 알 수가 없기에늘 낙엽처럼 흔들리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이들고 건강을 잃으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게될 터인데 왜 그렇게 열심히 어디를 향해 무엇 때문에 바쁘게 가는건지 모를 일입니다. 결국 인생은 내가 나를 찾아 갈 뿐인데 말입니다.
자유로이 춤추는 잉어지만 이 연못을 넘나 들 수 없는 한정된 공간안에 갖혀있는 잉어들의 모습을 보면은 결국 고통, 갈등 불안등은 모두 나를 찾기위한 과정에서 만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어집니다. 살아가면서 아무리 화려한 옷도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불편 하듯이 아무리 멋진 풍경도 마음이 다른데 있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내가 아닌 남의 삶을 살고 있으면 늘 불안합니다. 그러기에 앞만보고 걷기보다는 때론 주변도 보고 잠깐 쉬워가며 걷는것도 소중할 듯 한 생각을 해보게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가끔은 "나이로 살기보다 생각으로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게되는 것을 봅니다. 나는 오늘도 나이보다 생각으로 세상을 보며 삶을 살아가고 픈 마음뿐입니다. 흘러가는 세월속에 나이는 어쩔 수 없겠지만 늘 살아있는 "삶의 미소"로 "삶의 여유" 로 나를 아는 모든이에게 기쁨이고 사랑이면 좋겠습니다.
젊음은 그리 오래 머물지 않는듯 합니다.
그렇다고 젊음은 두 번 다시 오지 않기에
세월을 아껴야 할듯 합니다. 다만 세월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은
자고이래(自古以來)로 모은 재물을 지니고
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듯
먹고 입는 세상사에
항상 열심히 사는것도 때론 소중한일이라 생각해보면서 세상사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천천히 걸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언제부턴지 시골 장독대가 정겹고 그리워집니다. 저 안에 무얼 담을까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담아야 오래동안 변하지않는 구수한 맛을 낼 수 있는지 저에게 항아리는 늘 신비 그 자체입니다. 보름날이면 장독대위에 정한수 한사발을 떠올려 놓고 소원을빌던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해보니 장독대가 또 다른 모습으로 닥아옵니다.
이런 여름이오면 나는 활짝 피어난 풀잎처럼 가을 나기전에
조금씩 고운 열매를 맺기전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불을 지피고 싶습니다.
그건 내가
살아 있음의 향기로 열매로
온몸으로 맺혀지는 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열매속에서 조용히 맺혀지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도구대(절구통)도 용도가 다르게 쓰여지는 것을 봅니다. 빈 절구통에 담는 용도에 따라 사물이 달라 보이듯 사람의 마음도 마음에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기에 비우기 전에는 세상을 믿지 않았는데 비우고 나니 세상이 아름답고 향기롭다는걸 배워갑니다.
원불교 한 작품앞에서 나의 흔적을 남겨보면서 내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항상 내 자신을 낮추어라" 누군가 나를 늘 주시하고 있다고 높이있으면 떨어지기 쉬워도 낮은 곳에 있으면 최소한 더 떨어질 위험은 없다며 내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보면서 행복이란 내 스스로 만들어봅니다. 그건 내 삶을 아름답게 가꾸며 늘 삶을 뒤돌아 보는 것이 삶의 성취보다 더 아름다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노란 원추리꽃이 선명하고도 깨끗한 자태로 고고하게 멋을 잔뜩 부리고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이란 마음속에 존재 하는것을 느껴봅니다. 꽃처럼 행복은 스스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행복은 하루 한날의 생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부단히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삶의 아름다운 열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꽃은 한결같이 자기 자신의 독특한 멋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음을 다시한번 보게 됩니다. 꽃과 꽃의 만남에서 사람보다 더 소중한 존재는 없습니다. 아름다운 꽃이되기보다는 내가 먼저 예쁜 꽃이되어 향기를 내면 됩니다. 그러기에 꽃같은 만남이란 참으로 소중하고 귀합니다.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자기의 향기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붕숭화꽃 하면 어딘지 모르게 우리민족의 서러움을 딛고 일어선 꽃과 같이 생각되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세상이 존재하지 않고 꽃이 피고 지지 않는다고 해서 향기가 없어지진 않는듯 합니다. 가끔은 살아가면서
세상이 변하여도
봉숭화 꽃처럼 변하지않고 담장 울밑에서 그렇게 피고지는 것을 보듯
사랑으로
잊지않고 기다리고 있는듯 보였습니다.
하루 / 현산
어둠의
핏줄 타고
생명으로 부활하니
아침이다.
햇살로
이슬 걷어내고
씨앗을 뿌리니
한낮이다.
불타는
석양 빛 내리면
더 이상 잃을것도 없는
밤중이다.
영산성지를 돌아보고 밖에 나오니 백수해안 도로에서 해당화 꽃이 작별 인사를 합니다. 해당화 꽃도 시간과 계절에 밀려 어느새 꽃잎은 떨어지고 꽃씨만 열매를 맺고 간혹 한 두잎이 이렇게 피어있는걸 보면서 또 다시 찾아올 날을 기약하며 "염산 설도항"을 향하여 출발해봅니다. 아마 머지않아 이 길에도 코스모스가 많이 피어날 것 같습니다.
해안도로 쉼터에서 잠시 쉬면서 칠산 앞바다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담아보면서 수평선 저 멀리 하루해를 넘긴 삶을 후회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살아가는 것은 내일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오늘보다 내일이 행복해지는 미래를 보며 하루 한날 내가 살아온 날의 열매를 위해 꿈을 심어 가는줄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인생에서 석양이 비추는 아주 고운빛따라 물들어가는 내 삶을 더 다독이며 열심히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