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帖訓讀-孫過庭書譜(4)
況云 積其點畫하여 乃成其字하고 曾不傍窺尺櫝(牘) 俯習寸陰하고 引班超以爲辭하고 援項籍而自滿하여 任筆爲體하고 聚墨成形하며 心昏擬效之方하고 手迷揮運之理하여 求其姸妙하면 不亦謬哉아 원본 12.6~13.6
하물며 말하건대 그 點劃을 쌓아서 글자를 이루고, 일찍이 尺牘(우수한 서간의 필적)을 가까이 두고 살펴보며 짧은 시간도 俯習하지 않고, 班超의 말을 引用하여 변명하고, 項羽의 말을 援用하여서 스스로 滿足하여 붓에 맡겨 體를 만들고, 먹물을 모아서 形을 이루며 마음은 習字의 효과적인 방법에 어둡고, 손은 運筆의 理致에 迷惑하고서 그 姸妙함을 구하는 것은 또한 그릇된 것이 아닌가!
* 반초(班超: 32-102) : 자는 仲升이고 扶風安陵사람이다. 後漢 사람으로 반표(班彪)의 작은아들이며 班固의 동생이 다. 중국 후한 초기의 무장. 흉노의 지배하에 있던 50여 나라를 한(漢)나라에 服從시겼고 중국과 서역(西域)간의 경제와 문화 교류를 促進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後漢書․班超傳》에 “班超가 일찍이 學業을 그치고 붓을 내던지며 말하기를 ‘대장부는 다른 智略이 없다. 오직 介子․張騫이 異域에서 공을 세워 써 封侯를 얻은 것을 스승으로 삼아 본받는 것이 마땅하니, 어찌 능히 오래도록 붓과 벼루를 섬기겠는가?”라고 하였다.
* 항적(項籍: 기원전 232-202): 秦나라 下相사람. 字는 羽. 陳涉이 起兵하자 叔父 項梁과 함께 起兵하여 秦軍과 싸우고 다시 劉邦과 天下를 다투다가 실패하였다. 힘이 무척 세었다.(史記 七) 《史記․項羽本紀》에 項羽가 少時에 書를 배우다 이루지 못하자 書를 버리고 劍術을 배웠으나 또 이루지 못하였다. 그로 인하여 項梁이 怒하자 項籍(項羽)이 말하기를 “書는 족히 姓名을 기록할 뿐이고, 劍은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니 배우기에 부족합니다. 萬人을 대적할 수 있는 것을 배울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然이나 君子立身은 務修其本이라 揚雄謂 詩賦는 小道라 壯夫不爲라하니 況復溺思毫釐하고 淪精翰墨者也리오 夫 潛神對奕하여도 猶標坐隱之名하고 樂志垂綸하여도 尙體行藏之趣하나니 詎若功宣禮樂하며 妙擬神仙이리요 猶挻(埏:선)埴之罔窮 與工鑢而並運이로다 원본 13.6~15.1
그러나 君子가 立身하려면 그 基本을 닦는 데 힘써야 한다. 揚雄이 말하기를 ‘詩賦는 小道라 壯夫는 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하물며 다시 생각이 붓끝에 빠지고 精神이 翰墨에 빠지는 것이겠는가! 대져 정신을 가라앉히어 바둑을 대하여도 오히려 坐隱이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뜻을 즐겁게 하여 낚싯대를 드리워도 오히려 行藏의 뜻을 체득하였다고 하는데, (바둑이나 낚시와 같은 것이) 어찌 書의 효용이 禮樂을 宣揚하며 奧妙한 경지는 神仙의 千變萬化하는 모양에 흡사함과 같겠는가? 마치 (書法은 도공이) 찰흙을 반죽하여 그릇을 빚는데 그 기교가 무궁한 것과 같고, (鐵工이) 줄질을 하며 技能을 運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 양웅(揚雄): 漢나라 사람. 字는 子雲.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많은 책을 涉獵하였다. 成帝때 나라의 부름을 받아 甘泉 河東 長陽등의 賦를 지었다. 왕망(王莽)에게 벼슬하였고 太玄經揚子法言을 지었다.(前漢書 八十七)
* 좌은(坐隱): 바둑을 두는 것의 별칭. 바둑을 두느라고 앉아있는 것이 隱居한 것과 같다는 뜻.
* 수륜(垂綸): 垂釣와 같음. 낚싯줄을 늘어뜨림. 낚시질을 함.
* 행장(行藏):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 곧 進退와 같음. 語源은 《論語․述而》“用之則行하고 舍之則藏이라”한데서 나왔음.
* 선식(埏埴): 진흙을 이김. 老子에 埏埴以爲器라 했다. (=挻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