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66)
*장단에서 황진이(黃眞伊)를 회상하며..
녹수도 청산 못 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김삿갓이 임진나루를 건너, 얼마를 더가니 장단(長湍,) 땅에 이르렀다.
이곳은 송도의 삼절(三絶)로
불리는 기생 황진이(黃眞伊)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당시 송도 사람들은 황진이와 함께, 성리학자 서경덕과 박연폭포를
송도삼절로 불렀다.
김삿갓은 황진이는 비록 기생이기는 했을망정, 신사임당과는 또 다른 분야에서 여성 존재를 길이
역사에 남긴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황진이는 이처럼 뛰어난 여성이었기에, 김삿갓은 황진이의 무덤만은 꼭 참배하고 싶었다.
그러나 생전에 많은 남성들을 희롱해 온 일이 무척 후회가 된 임종 직전의 황진이가,
"내가 죽거든 많은 사람들이 나의 백골을 마음대로 밟고 다닐 수 있도록 길가에 묻어 달라."고 했던
황진이의 무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황진이는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고, 그림도 잘 그리는 "만능 여인" 이었다.
그중에서도 그녀의 시를 짓는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 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건곤 할 제 쉬어 간들 어떠리.
靑山은 내 뜻이오 綠水는 님의 情이
綠水 흘러간들 靑山이야 변할손가
綠水도 靑山 못 잊어 울어예어 가는고.
이렇듯 황진이는 언문 시조에도 능했지만, 한시에 있어서도 많은 명작을 남겼다.
가령 밤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을 보고선 ,
수단곤산옥 (誰斷崑山玉)
그 누가 곤륜산의 옥을 찍어 내어,
재성직녀소 (裁成織女梳)
직녀에게 얼레빗을 만들어 주었던고,
견우이별후 (牽牛離別後)
그리운 견우님 떠나가신 뒤,
수랑벽공허 (愁䱶碧空虛)
서러워 허공에 던져 버렸네.
김삿갓은 사흘간이나 장단(長湍) 땅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며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황진이의 무덤이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는 황진이가 누구인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김삿갓은 마침내 황진이 무덤을 찾는 것을 단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미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얼마후 산속에 있는 어느 주막에 들러 술을 마시며 주모에게 다시 물어 보았다.
"이 부근에 혹시 황진이라는 기생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 아시오?"
"아이참, 손님은 별 말씀을 다 물어 보시네. 내 조상의 무덤도 어디 있는지 모르는 판인데 그까짓 기생년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를 누가 알겠어요."
김삿갓은 황진이 무덤을 찾아 제사 지내 줄 것을 깨끗이 단념하고 혼자 술을 마시는 수 밖에 없었다.
혼자서 술을 마시자니 오늘따라 처량한 기분이었다.
황진이 무덤을 찾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이다.
술을 마시면서 고개를 들어 보니, 저 멀리 산골짜기에는 매화 꽃이 곱게 피어 있었다.
그리고 개울가의 버드나무 숲속에서 꾀꼴새가 영걸스럽게 울고 있었다.
김삿갓의 눈에는 이런 풍경 모두가 마치 황진이의 환상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게 황진이를 생각하는 시가 한수 읊조려 나왔다.
대주욕가무고인 (對酒欲歌無故人)
술을 들며 노래하고 싶어도 옛사람은 없고,
일성황조독상신 (一聲黃鳥獨傷神)
꾀꼴새 울음소리만 마음을 괴롭히네.
과강유서청독뇌 (過江柳絮晴獨雷)
강 건너 버들가지는 마냥 싱그럽고,
입협매화향시춘 (入峽梅花香如春)
산골짜기 매화만 봄 향기를 풍기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