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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나무에서 맹렬하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는 우리에게 여름이 왔음을 알려주는 표지로 인식되고 있다. 여름철 한 달 남짓 지상에서 살다 가는 매미는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땅속에서 애벌레의 상태로 지낸다고 한다. 일단 땅속에 자리를 잡은 애벌레들은 그곳에 자신만의 안식처를 구축하고,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기나긴 삶의 여정이 이미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땅속에서 지내다가 대략 17년의 기간을 채운 후, 매미들은 천적으로부터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일제히 부화하여 지상에서의 짧은 삶을 영위하게 된다.
<매미>라는 제목의 이 책은 이러한 매미의 일생을 소재로 하여, 우리 주변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들을 비유하여 형상화한 그림책이다. ‘데이터를 입력’하면서 ‘고층 빌딩에서 일’하는 매미는 ‘십칠 년 동안 아파서 쉬는 날이 없’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기에서 ‘17년’은 매미가 땅속에서 애벌레의 상태에서 성체로 우화하기까지의 기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하겠다. 실수도 안 하며 열심히 일을 했지만, 매미는 ‘십칠 년 동안 승진도 없’고, 인사부장은 ‘매미는 인간이 아니’기에 관리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한 직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매미는 회사 화장실조차 쓰지 못하며, ‘열두 번 길을 건너 공중화장실로 가야’하고 ‘그때마다 회사는 임금을 깎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늘 늦게까지 남아서 일을’ 하지만, ‘아무도 매미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함께 일하는 인간 동료들은 그러한 매미를 무시하고 그저 ‘바보라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집을 빌릴 형편이 못’ 되어 ‘사무실 벽 틈에서’ 지내지만, ‘회사에서는 모른 체’할 뿐이다. ‘십칠 년 일한 매미가 은퇴’를 하지만, 축하의 파티는커녕 아무도 그에게 악수도 건네지 않고 ‘상사는 책상을 치우리고 말’할 뿐이다.
매미는 17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엄연히 땅속에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비유적인 의미라고 이해된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언제 해고될지 모른 체 불안하게 일하면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존재를 비유한 것이라 여겨진다. 17년의 기나긴 시간을 견뎌내고 마침내 껍질을 벗어던지고 매미로서 살아가듯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는 내용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기나긴 세월을 땅속에서 견뎌내야만 하는 매미의 일생이 현대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지내야만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와 절묘하게 겹쳐지고 있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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