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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역사학을 전공한 것을 후회해 본 일은 없었다’고 단언하는, 원로 역사학자인 저자가 바라보는 역사에 대한 생각들을 담아 엮어낸 ‘역사 에세이집’이라 하겠다. 일찍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E. H. 카아는 ‘역사는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과의 대화이다’라고 정의했다. 이는 구체적인 역사에 대한 평가는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이 선택한 내용에 의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떠한 역사적 기록일지라도 역사가의 ‘주관적 관점’이 개입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며, 그것을 일컬어 개별 역사가의 인식 즉 ‘사관(史觀)’이라고 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역사 기록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의 문제는 결국 그것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20세기의 ‘어마어마한 역사적 사건들을 그것도 역사학 전공자로 살면서 겪은’ 사건들을 하나씩 거론하면서, 그동안 ‘객관성을 잃은 채 잘못 인식되고 있는 부분’에 대한 반성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언하고 있다. 그리하여 20세기의 현대사를 돌아보면서, 21세기의 역사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미 인터넷을 통하여 전세계가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21세기 우리 민족사는 세계사의 행방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를 포함한 ‘역사가들은 21세기 세계사가 민족 국가의 벽을 낮추는, 민족 국가의 권한이 약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전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예상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전망과는 달리, 최근 국제 정세를 보면 오히려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부분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분명 부분적이라고 여겨지지만 때로는 국가라는 단위를 통해서 결집되는 ‘민족주의적 성향’은 배타적인 성격을 표출하면서, 국가간의 갈등은 물론 종교와 이념적인 문제로까지 확산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 책에는 21세기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저자의 진지한 고민이 담겨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렸던 칼럼과 시론들, 그리고 보다 본격적인 역사 평론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수록된 글의 성격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그것을 관통하는 것은 바로 ‘역사’라는 주제이며, 수많은 글들에 저자의 일관된 역사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고 여겨진다.
이 책의 목차는 전체 4부로 이뤄져 있는데, 각각의 제목만을 보더라도 각각의 항목에 수록된 글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노예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제1부에서는,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90년대까지의 한국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 의미를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근대화’의 결정적 계기로 보는 ‘신친일파’들의 논리에 대해서 매서운 비판을 가하는가 하면, ‘박정희 정권의 역사적 평가’는 물론 지난 정권 시절에 시도되었던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문제’ 등 역사 현안에 대한 저자의 인식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저자는 역사를 왜곡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과거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러한 그릇된 인식을 정확하게 진단하게 새로운 시대를 맞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제2부에서는 ‘분단 50년을 되돌아보고 통일을 생각한다’라는 제목으로, 지구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한반도의 역사와 현실을 진단하면서 통일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어지는 ‘통일 시대 우리 역사학 연구의 나아갈 길’이라는 제3부의 내용도,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에 도달하기 위하여 역사학자로서 어떻게 고민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마지막 제4부는 ‘20세기를 넘기면서 역사를 생각한다’라는 제목으로, 21세기의 한국사회를 조망하는 저자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되고서 벌써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기에 수록된 글들에서 논하고 있는 역사에 대한 관점과 인식은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누군가 새로운 관점으로 ‘21세기의 역사’를 기술한다면, 저자가 고민했던 이러한 인식을 통찰하면서 그 방법론을 세울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하겠다. 물리적인 기술은 빠른 속도로 변해가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인식은 20세기의 그것에서 그다지 나아간 것 같지 않다고 판단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라도 새삼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인식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그러한 독자들의 고민에 원로 사학자인 저자의 제언은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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