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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우리는 주위의 사물들을 통해서 다양한 문양들을 접하게 된다. 때로는 기묘한 문양을 보면서 신기해하기도 하고, 익숙한 모양이 거듭되면서 예상치 않은 문양으로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일단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나는 고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보았던 양주동의 수필을 먼저 떠올렸다. 일제 강점기에 한학(漢學)을 배우다가 속성과정으로 들어간 중학교에서 처음 ‘기하(幾何)’라는 과목을 배우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다룬 ‘몇 어찌’라는 제목의 글이다. 당시 근대의 학문 용어들이 일본에서 번역된 형태를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되었기에, 당시 사람들에게는 전통적인 한문의 조어법과는 전혀 이질적인 용어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당시 교과목 가운데 하나로 정해진 기하라는 과목은 도형이나 물체의 치수와 모양 그리고 상대적 위치 등에 대해 다루는 새로운 학문이었다. 따라서 ‘기하’라는 용어는 넓이와 길이가 ‘ 그 얼마인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로 번역되어, 일본을 통해서 새롭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중학교의 첫 시간에 기하 과목을 수업을 받으면서 양주동의 그 용어의 한자 의미인 ‘몇 어찌’에 대해서 교사에게 묻고, 그에 대한 문답을 중심으로 수필 형식으로 쓴 글이었다. 아마도 양주동은 어떤 용어이든 그 의미를 알고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갖오하고 싶었던 것이라 이해된다.
이 책에는 ‘완벽한 대칭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담은 기하학 패턴 그리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이것을 통해서 제목의 의미와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 하겠다. ‘지오메트릭 패턴’이란 대칭으로 구성되어 있는 기하학적 문양을 뜻하고, 저자는 이러한 문양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직접 그리게 하고자 하는 의도로 책을 만들었던 것이다. 저자는 우연히 서점에서 <아랍의 기하학적 패턴과 디자인>이란 책을 접하고, 이후 27년 동안 기하학적 문양에 대해서 연구를 진행했다고 한다. 이러한 문양이 ‘예술과 과학의 결합’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미 오래전부터 건축물 등에 사용되었지만 새롭고 현대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기하’라고 번역될 수 있는 ‘geometry’라는 단어는 토지(geo)와 측량하다(metry)가 합쳐진 것으로, 고대 이집트에서 토지를 측량하기 위하여 선과 면 그리고 도형을 활용해 공간의 수리적 성질을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이다. 저자는 그동안 접했던 이러한 문양들에서, 단순하지만 완벽한 대칭을 지닌 도형의 반복이 주는 규칙성과 균형감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문양들은 주로 옛 이슬람 예술과 건축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신의 단일성과 질서를 원과 선의 반복적인 문양을 통해서 규칙적으로 표현하였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일견 복잡해 보이는 기하학적 문양들은 컴퍼스와 자, 단 2가지 도구로 다양한 도형과 문양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정확성을 매우 중시하기에, 이슬람 예술과 건축의 기하학 디자인은 패턴의 반복에 기반하고 있다고 한다.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면서, 그것이 사면으로 확장되어 서로 연결되어 마침내 하나의 커다란 격자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정밀한 도형과 문양을 손쉽게 그릴 수 있지만, 간단한 도구로 전통적인 문양을 그리고 그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고대인들의 실용적인 지식을 몸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기학학적 문양의 기본이 되는 패턴을 그리는 방법으로부터, 고대의 유물을 통해서 발견한 총 19가지 문양을 3단계에 걸쳐 직접 그려볼 수 있도록 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먼저 첫 번째 장(part 1)에서는 ‘기본 템플릿 그리기’라는 제목으로, 패턴의 기본이 되는 도형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그려보고 이에 따라 기본 템플릿 6개를 그리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저자에 의하면 기본 템플릿(template)이란 기학학적 문양의 토대 혹은 시작점이 되는 도형으로, 시작 도형은 모두 6개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 기초부터 그 과정까지 방법이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어, 독자들이 이 책을 따라 쉽게 그릴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나처럼 미술에 그리 소질이 많지 않은 사람들도 자와 컴퍼스만을 가지고 따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매 단계마다 문양을 그리는 방법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두 번째 장(part 2)에서는 ‘지오메트릭 패턴 그리기’라는 제목으로, 초급(basic) 8개 문양과 중급(advance) 4개 문양 그리고 고급(extreme) 7개 문양 등 모두 19개의 문양을 그리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단순한 문양만 제시해 놓은 것이 아니라, 각 문양의 출처를 밝히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예컨대 초금의 첫 번째로 등장하는 ‘카펠라 팔라티나’는 시칠리아의 팔레르모에 있는 1132년에 건축된 건축물을 가리키고, 그곳에서 사용된 문양을 여기에 제시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직접 그려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고급 패턴은 일견 보기에도 매우 복잡하고 초보자들은 그리기가 쉽지 않다고 여겨지며, 아마도 초급 과정부터 충실하게 익히면서 도달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되었다.
다음 세 번째 장(part 3)에서는 ‘지오메트릭 패턴 더 알아보기’라는 제목으로, ‘패턴을 더 아름답게 그리는 팁’과 ‘패턴으로 즐기는 세계의 유물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단순한 패턴에 꽃과 나뭇잎을 형상화한 아라베스크 문양들을 더하면, 패턴의 더 풍부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정보를 제시하고 있다. 아라베스크 양식이 꽃과 나뭇잎 등 식물을 모티프로 한 이유는, 이슬람교에서는 신 이외의 살아있는 동물의 형상을 만들거나 그리는 것을 우상 숭배로 여겨 금기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이미 그려진 패턴의 기존선을 보완하거나 지우고 여백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통해서도, 문양을 더욱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아울러 이 책에 소개된 문양의 출처가 된 유적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부록으로 ‘기본 템플릿 5종’을 그리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모두 19개 문양의 기본 템플릿을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19개 패턴들은 모두 5개의 기본 템플릿으로 수렴되고 있다고 하는데, 부록에 제시된 문양들을 직접 그려봄으로써 그 원리를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답사를 다니면서 사찰이나 서원 등의 문에 달린 문살 문양을 떠올렸다. 어찌 보면 수직과 수평 그리고 사선만으로 매우 풍부하고 다양한 문양을 창출하는 전통 문살이야말로, 우리만의 기학학적 문양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전통 창살이나 문양 등에 대해서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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