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3일, 윤미향이 페북에 올린 글.
<쉼터에 계시는 김복동 할머니께서 넌지시 당신 방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봉투를 내미십니다. 돈입니다. 많은 돈... 제 눈이 둥그래지고, "이게 뭐예요?" 하고 묻습니다.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조건 '돈'이기에 이걸 왜 제가 받느냐고 강하게 거부하니, 긴 이야기 꺼내십니다.
"내가 하나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알지? 저게 아빠 감옥에 간 뒤에 아빠도 없이 태어나서 외롭게 자라서 늘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우리 일 하다가 너희 부부가 만나 결혼하고 하나를 낳았는데 내 가슴이 우째 안 아프겠노? 내가 등록금을 다 해주고 싶지만 사정이 넉넉치 못해 이것밖에 준비 못했다. 이거 안 받으면 내가 상처받는다.' 긴 침묵...
김복동 할머니의 장학금을 받아든 나... 오늘 밤, 앨범을 뒤적거리니 정말 우리 하나 어릴 때 사진에 아빠가 없네요. 엄마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김복동 할머니의 마음이 이거였나 싶네요. 할머니 감사합니다.>
2012년 3월 13일, 윤미향이 나비기금 계좌번호와 함께 페북에 올린 글.
<김복동 할머니 장학생으로 경희대학교 음악대학 피아노과에 입학한 김하나씨,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모은돈 682,785원을 나비기금 조성금으로 기탁하며 나비기금의 세번째 출연자가 되었습니다.>
한 달 간격으로 이어진 위의 두 글은 연결되어 있다.
윤미향 딸이 대학에 진학할 때, 태어날 때부터 성장과정을 잘 아는 김복동 할머니가 많이 못 줘 미안하다며 등록금에 보태라고 윤미향에게는 '많은 돈'을 주셨고 역시 할머니를 잘 아는 윤미향 딸은 기특하게도 입학 전에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나비기금에 기부했다는 짠하며 훈훈하고 아름다운 미담이다.
둘 다 듣는 이의 기분이 좋아지는 미담인데, 조선일보에겐 그렇지 않다.
긴 이야기 중에서 ‘장학금’이란 낱말 하나만을 떼어내 ‘윤미향이 자신의 딸 학비를 김복동 할머니 장학금으로 냈다고 과거 밝혔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기사를 쓴다. 마치 윤미향이 ‘김복동 장학금’을 빼돌리기라고 한 것처럼 몰아가는데, 기자가 확인한 게 아니고 윤미향이 페북에서 자백을 했다는 투다. 그렇게 지맘대로 해석해서 지맘대로 기사를 쓰면서 당사자에게 사실인지 확인도 않고 반론도 없다.
‘김복동 장학금’은 2016년 5월 김복동 할머니가 내놓은 5천만원으로 시작됐다. 김복동 할머니가 윤미향에게 딸의 대학 입학등록금에 쓰라고 돈을 준 건 2012년이니 그때는 ‘김복동 장학금’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조선일보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윤미향이 ‘어떤 방법을 통해 자신을 딸에게 김 할머니의 장학금이 지급됐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며 그 장학금이 그 장학금이고 윤미향이 자의적이고 불법적으로 자기 딸에게 장학금을 주기라도 한 것 같은 이미지를 뒤집어 씌운다.
이쯤되면 조선일보의 편집증은 중증이고 망상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도 중증인데 모든 것이 그렇게 보이면 망상이다. 윤미향 가족과 주변을 털고 과거에 쓴 페북 글을 뒤지다가 ‘주택 구입’ ’장학금’ 등 구미가 당기는 뭔가를 발견하면 전후사정과 맥락과 사실 관계를 확인도 않고 입맛에 맞게 추정하고 상상하여 없는 사실을 창조해내는데, 업계 용어로 그런 걸‘사실 조작’ 또는 '이미지 조작'이라 하고 그런 기사를 ‘조작 기사’라 한다.
2016년 5월, 윤미향은 정대협 활동가들과 워크숍을 했다고 페북에 글과 사진을 올렸는데, 신상털이의 지령을 받은 눈 밝은 조선일보의 기자가 사진에서 일본과자를 발견해냈다. 정대협 활동을 지지하는 일본의 후원자가 선물로 준 과자인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반일감정을 부추키는 활동을 하면서 일본과자를 먹다니, 이중적인 윤미향과 정대협 활동가들이라는 이미지 조작이 중요할 뿐이다. 사실 확인도 반론도 중요하지 않다. 일본 후원자의 선물이라는 걸 알게 되면 기사 조작이 어려지니까.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나는 그랬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오보라는 게 확인되면 즉각 정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언론의 윤리고 의무다. ‘김복동 장학금’ 오보에 대해 조선일보는 정정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김복동 장학금’을 ’김복동 장학생’으로 바꾸고, ‘페북에 자신을 딸을 ‘김복동 장학생’으로 적은 게시물이 논란이 되자 “김 할머니가 준 용돈이라는 의미”라고 해명했다’고 오보의 책임을 윤미향에게 떠넘기며 그래도 의혹은 있다고 깐죽거린다. 사과는 없다. 비열하고 야비하다.
인격살인도 살인이다. 선량한 시민을 펜으로 찔러 죽이고는 비난받을만한 사람으로 오인하게 만들었다고 죽은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미안하다는 말은 없다. 비난받을만한 의혹이 있는 사람이라고 깐죽거린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응징이 없으면 또 팔아먹는다. 펜으로 인격 살인을 해도 징벌이 없으니 부끄러움도 죄의식이 없다.
이 나라의 언론은 거리의 무법자다. 그 맨 앞에 조선일보가 있다. 자칭 민족정론지 조선일보는 지금 언론교과서를 거꾸로 쓰는 중이다. 언론의 업종을 선전 선동과 사실 조작, 이미지 조작으로 전환 중이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줏대 없는 기타 언론이 조선의 뒤를 따르며 하이에나 떼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