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경 학생의 교우단상- 인도 단기선교 후기 ◈
인도에 다녀오다!!
7월의 어느 날 밤 엄마와 나 사이에서는 은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고 나서 일주일 후 나는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인도에 갔다. 생각 좀하고 갈걸....
인도에서의 첫날, 일단 그때는 인도고 뭐고 그냥 한국이랑 비슷하겠지 이렇게 생각해서 아무런 대비없이 그냥 맨몸으로 나갔다. 그것이 실수였다. 너무 더웠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에게서 흐르는 땀이라는 액체들과 그로인해 나에게서 나는 땀 냄새, 그것의 원인이 된 인도의 날씨는 찜질방도 더워서 안 들어가는 내게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첫날 우리가 했던 일은 인도 봉사지 지리 외우기였다. 버스만 타면 전주의 신세계를 경험하는 나인데, 인도 지리를 잘 기억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버스 번호 하나만 기억하면 되는 인도 체계 덕분에 별 문제없이 봉사지에 갈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버스만큼 좋은 교통수단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버스가 우리에게 그렇게 기분 나쁜 장소가 될 줄 몰랐다.
봉사처를 선택하는 날이 왔다. 나는 임종(臨終)의 집(깔리갓)을 지원했지만 자원봉사자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고 만성질환자 수용소(쁘렘단)에서 최연소 봉사자로 일하게 되었다.
봉사 첫째 날. 쁘렘단에 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쁘렘단 입구에 도착했는데... 이건...뭔 냄새?;; 이것은 나의 쁘렘단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그 냄새는 시작에 불과했다. 첫 날이라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나에게 어떤 스페인 여자가 빨래를 하면 된다고 나를 데리고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부러 나를 약올리려고 빨래를 시켰다고 생각될 정도로 빨래의 세계는 힘들었다. 빨래를 하다 보니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렸다. 비명소리는 드레싱룸에서 들렸다. 자세히 보니 발이 썩어 들어가고 있는 환자분이 소독을 받으시는데 얼마나 아프셨으면 저렇게 소리를 다 지르실까... 보는 내가 다 미안해졌다.
하루 2천벌 지옥의 빨래가 끝나고, 내가 사랑하는 티타임 시간이었다. 많은 외국인을 만났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은 Adam 이라는 40대 미국인이었다. 아담 아저씨는 1994년부터 군산의 한 대학에서 객원교수로 10년간 일하셨고 전주도 자주 오셨다고했다. 그래서 왠지 고향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원래 인도 방문의 제일 큰 목적은 영어 실력향상이었으나, 나는 미국인과 순수 한국말로 사투리도 섞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원래 이게 아닌데;;
한 시간의 꿀맛 같은 티타임이 끝나면 환자분들의 점심시간이 된다. 아시다시피 인도사람들은 거의 모든 식사를 카레로 해결한다. 쁘렘단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마시(수녀가 되기 위해 수련하시는 분)가 나를 아안~띠!!(자원봉사자라는 뜻)하고 부르더니 한 할머니 앞으로 데려다주고 숟가락과 음식이 담긴 접시를 쥐어주더니 빙긋 웃고는 가버리는 것이다.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조금 어이는 없었지만 그 할머니가 ‘나 배고파요’ 라는 눈길로 쳐다보셔서 음식을 먹여드렸다. 밥을 먹여드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굉장한 힘을 줄때 나는 끙 하는 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처음 쁘렘단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그 냄새와는 차원이 다른 리얼 똥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밥을 드시면서 밑으로는 배변활동... 장이 참 좋으신 분 인가보다^^.
봉사가 끝나고 버스를 타고 숙소에 가는데 버스풍경은 이랬다. 인도남자들은 좌석에 앉지 않고 천장에 달린 손잡이를 잡고 가고 여자들이 좌석에 앉아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 키는 작지...인도인 키는 크지... 버스는 덥지... 급정거를 하기만하면 얼굴이 인도인의 겨드랑이에 파묻힌다. 그때 내 코에 있는 모든 세포들은 인도인 겨내(겨드랑이냄새...)에 무차별 적으로 반응한다. 인도인 땀 냄새는 왜 카레향일까? 아무리 인도라지만 카레로 향수를 만들지는 않을텐데...;; 생각해보면 인도에서 제일 고생한건 다른 어느 것도 아닌 나의 코인 것 같다. 지옥의 버스에서 내려서 숨을 쉬면 내가 숨 쉬는 그곳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인도인의 땀 냄새에 적응 되어가고, 봉사에도 적응 되어가자 처음엔 더럽다고 생각했던 할머니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점점 귀여워(?)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귀여운 할머니들과의 한 달이 지나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한 할머니와 놀다가 문득 ‘나도 마더테레사 수녀님처럼 봉사하면서 일생을 보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 때문인지, 아쉬워서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결국 할머니 품에 안겨서 엉엉 울었다(울었다기 보단 찌질이 처럼 대성통곡을...)
아프신 할머니들을 두고 가려니 아쉬웠다. 나 없으면 누가 같이 노래를 불러주고, 손잡아 주고, 관심 가져줄지... 그 생각에 싱가포르에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내 마음은 착잡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시려면 병이란 것을 없게 만드시지... 병이란 걸 왜 만드셨을까?’ 라는 바보 같은 생각도 해봤다. 나도 참..억지스럽지;;
마지막 날, 언니들 없이 혼자 오후 봉사를 갔다. 나 외에도 다른 봉사자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오후 봉사자는 나 하나 뿐이었다. 혼자 외로이 봉사를 하면서 아직도 인도에는 많은 사랑의 손길이 필요한 것 같다고 느꼈고, 인도의 현실에 대해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도는 장기간 머물기에는 힘들겠지만(초심을 잃을 것 같다), 단기봉사를 하기에는 정말 좋은 장소인 것 같다.
하지만 난 인도에 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