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의 망덕포구, 윤동주와 정병욱
섬진강(蟾津江)은 전북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해 550리(216㎞)를 내달린다.
지리산을 감고 돌아 바다와 만나는 곳이 볕 좋은 광양(光陽)이다.
섬진강의 어원은 섬진강의 종착지 광양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 우왕(1385년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와 맞닿은 광양 바다를 침략했을 때 강 하구에서는 수만 마리의 두꺼비가 울었다고 한다.
당시 왜구의 침입은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만큼 고려 조정의 큰 걱정거리였다.
놀란 왜구는 강 하구의 마을을 지나쳐 상류인 지리산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남원 운봉에서 이성계에게 대패했는데, 이것이 이성계를 중앙정치 무대의 핵인싸로 만드는 황산대첩이다.
이후 왜구의 출몰이 잠잠해지자 사람들은 두꺼비를 왜구를 물리친 영험한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강 하구 마을을 '두꺼비가 사는 마을'이란 뜻의 섬거(蟾居)마을로, 강 이름을 섬진(두꺼비나루)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광양은 우리나라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다고 한다.
매화가 가장 먼저 향기를 피우는 곳이 광양이다.
광양매화마을에서 섬진강을 따라 죽 내려오다 망덕포구를 만난다.
망덕(望德)은 광양만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망을 보기에 알맞은 마을'이란 의미로 '망뎅이'라 불렸다.
한자음을 빌려 표기한 것이 '망덕'이다.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망덕포구는 바다굴 아닌 강굴로도 유명한 곳이다.
어른 손바닥만한 굵은 굴이 물 속에 핀 벚꽃 같아서 벚굴이라 부른다.
강과 바다, 벚굴이 있는 이 망덕포구에는 윤동주의 유고를 보존해 세상에 알린 정병욱의 집이 있다.
정병욱은 윤동주가 가장 아끼던 연희전문학교 후배이자 글벗이었다.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정병욱은 경남 남해에서 태어나 하동보통학교와 동래고보를 거쳐 1940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조선일보 학생란에 <빠꾸기의 전설>이라는 산문을 발표했는데, 그 글에 감동을 받은 윤동주가 정병욱을 찾아갔다.
윤동주는 1917년생, 정병욱은 1922년생, 정병욱이 나이는 5살 어리고 학교는 2년 후배였지만 두 사람은 붙어 다녔다.
남쪽 끝 바닷가에서 올라온 정병욱과 북간도 용정에서 내려온 윤동주가 마음을 나누게 된 것은 문학적 감성이 통해서였다.
두 사람은 종로구 누상동에서 함께 하숙하면서 더욱 깊은 교분을 나누었다.
1941년 12월 윤동주는 연희전문 졸업을 앞두고 시집 출간을 서둘렀다.
맨 마지막 시가 <별 헤는 밤>이었다.
지도교수 이양하는 출간을 말렸다.
우리 말과 글을 금지한 일제의 폭압에 제자가 다칠 수 있다고 봤다.
출간을 포기한 동주는 시집 3권을 제본해 한 권은 지도교수에게, 한 권은 후배 정병욱에게 건넸다.
윤동주는 일본으로 떠났고, 1944년 1월 정병욱도 강제징집, 학병으로 끌려갈 처지에 내몰렸다.
정병욱은 망덕포구의 집을 찾아 어머니에게 간곡하게 요청했다.
정병욱의 부모는 망덕리로 이사와 양조업과 정미업 등을 하고 있었다(정병욱 할머니가 망덕포구 출신이라고 한다).
"살아 돌아올 때까지 간직해 주시고, 두 사람이 다 죽어 돌아오지 않더라도 독립이 되거든 모교로 보내 세상에 알려지게 해주세요."
정병욱의 어머니는 윤동주의 원고를 명주 보자기에 곱게 싸서 술을 담는 항아리에 넣었다.
그리고 마루를 뜯어내고 아래에 항아리를 보관했다.
1943년 7월 10일 윤동주의 사촌 송몽규가 ‘재경도(京都, 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으로 특별고등경찰에게 붙잡혔다.
사흘 뒤 윤동주도 체포됐다.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됐다.
윤동주는 송몽규와 함께 알 수 없는 주사도 맞았다.
광복을 불과 반 년 앞둔 1945년 2월 16일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요절했다.
27세였다.
정병욱은 학병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리고 윤동주가 옥사했다는 사실을 1946년 가을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를 통해 알게 됐다.
정병욱은 자신이 윤동주 원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여기에 경향신문 기자였던 강처중이 보관하던 원고가 더해지고 윤일주의 보존 작품이 합해졌다.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1948년 세상에 나왔다.
지금도 원본은 광양 망덕포구 정병욱의 집에 보존돼 있다.
정병욱이 아니었다면, 정병욱 어머니가 아들이 보관하라던 시를 잃어버렸더라면, 우리는 '윤동주'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병욱은 윤동주의 이름을 명예나 이익의 수단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정병욱은 윤동주의 시 <흰 그림자>를 뜻하는 '백영'(白影)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망덕포구 앞에는 배알도라는 섬이 있는데, 그 섬을 연결하는 다리 이름이 윤동주의 시에서 가져온 '별 헤는 다리'다.
정병욱의 집 인근 '윤동주 시 정원'에는 서시, 별헤는 밤 등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31편 전편이 시비로 세워져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윤동주를 생각하는 사색의 바닷가이다.
캄캄한 시대에도 순결한 시어로 어둠을 밝힌 윤동주와 정병욱의 애틋한 우정이 흐르는 곳이다.
종로구 누상동의 윤동주 하숙집, 창의문 앞 청운동의 윤동주문학관, 연세대학교에서 만나는 윤동주의 시와 삶에는 정병욱이 있다.
2022년과 2023년, 국회의원과 최고위원을 할 때 전남 순천을 거쳐 광양을 3번 찾았다.
정인화 광양시장(20대 국회의원, 국민의당)은 당적을 떠나 행정가로서, 정치인으로서 훌륭한 분이다.
망덕포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밤, 비로드(벨벳) 같은 광양의 하늘엔 은빛 별들이 큐빅처럼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매화가 필 무렵, 광양에 가고 싶다.
#섬진강 #광양매화마을 #섬거마을 #망덕포구 #정병욱 #배알도